SVB 여파에 줄어든 美빅스텝 우려…한은, 4월 기준금리도 동결?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3.03.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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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본점 전경/사진=뉴스1한국은행 본점 전경/사진=뉴스1


다음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대형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다. SVB 파산 여파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기준금리 인상폭을 예상보다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다. 추가 금리 인상 '신중론'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 등을 이유로 SVB 전 지점을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총자산은 2090억달러(약 276조원), 총예금은 1754억달러(약 232조원)로 미국 내 16위 규모 은행이다.



SVB 파산 결정 이후 시장에선 오는 21~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의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것)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 들었다고 분석했다. SVB 파산 과정에 연준의 금리 결정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 SVB는 코로나19(COVID-19) 기간 연준의 통화완화 정책에 힘입어 호황을 누렸다. 스타트업과 가상자산(암호화폐) 가치가 뛰면서 주고객인 스타트업과 벤처자산가들이 맡긴 돈이 급증했다. 운용자금이 풍부해지자 SVB는 2021년 제로(0) 금리 수준의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지난해 3월부터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SVB는 손해를 감수하고 보유하고 있던 국채 등을 팔았다. 국채를 매입했을 때보다 채권금리가 크게 뛰면서(채권가격 하락) 세후 18억달러(2조40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

그럼에도 자금이 부족해 22억5000만달러(약 3조원) 규모의 증자까지 시도했다. SVB의 이같은 행보는 재무 건전성 우려를 낳았고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과 벤처자본가들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을 불러와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시장에선 연준이 당초 예상을 깨고 3월 FOMC에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물가 안정이 시급한 과제이긴 하지만 금리를 계속 빠르게 높였다간 제2, 제3의 SVB 사태가 발생해 미국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어서다.


나아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3월 기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았다. 골드만삭스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SVB 파산 사태로 미국 금융시장의 미래가 불안정해졌다"며 "연준이 3월 FOMC에서 금리인상을 건너 뛸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보고서 공개 이후인 12일 오후 10시(현지시간)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의 3월 빅스텝 가능성 전망은 '제로'가 됐다. 불과 지난주만해도 빅스텝 가능성은 70%대에 달했다. 대신 베이비스텝 가능성 전망은 95% 이상으로 올랐고 동결 가능성은 4%대로 제시됐다.

이런 이유로 한은이 다음달 11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서 다시 한번 금리동결을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국내 은행의 연체율 등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게 한은 분석이지만 계속된 금리 인상은 저축은행, 캐피탈사 등의 건전성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이에 연준이 실제 이달 금리 인상 보폭을 베이비스텝으로 줄이면 한은도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4월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로 묶을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통위가 다음달 기준금리를 추가 0.25%p 인상할 명분도 여전하다. 당장 연준이 베이비스텝을 밟는다고 해도 한미 기준금리 차이는 1.5%p까지 벌어진다. 지금까지 한미간 금리차가 가장 컸던 2000년 5~10월(1.5%p) 이후 약 23년 만에 다시 한번 역대 최대 격차가 된다.한미 간 금리차가 확대되면 외국인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은은 다음 기준금리 결정 때까지 1달가량 남은 만큼 그사이 발생할 여러 변수들을 보고 금리 방향을 신중히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이날 오전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현재로서는 SVB, 시그니처 뱅크 폐쇄 등이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 미 CPI(소비자물가지수) 발표 등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한은 통화정책 방향 윤곽은 △미국 CPI △연준 통화정책 방향 △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 방향 △SVB 사태 이후 금융안정 상황 △한국 3월 소비자물가 △환율 등 추이에 따라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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