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기한 연장에 반독점 소송…대한항공 '빅딜' 앞두고 거세진 규제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23.03.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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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 기한을 한 달 더 연장했다. 대한항공이 인수·합병을 신고한 지 2년을 넘긴 가운데 미국도 최근 자국 내 항공사간 인수합병을 사실상 불허하면서 각국 경쟁당국이 반독점 심사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EU 경쟁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2단계 심사 기한을 오는 8월 3일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17일 경쟁력 제한을 이유로 대한항공 인수건에 대한 심층조사에 착수했고, 그 기한은 오는 7월 5일이라고 발표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충분한 심사 기한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경쟁당국과 심사기한 20일 연장을 합의했다"며 "충분한 심사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절차로, 조속한 승인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최근 영국 경쟁당국의 승인 결정이 EU 등 남은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이 2021년 1월 총 14개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한 이래 영국을 포함한 11개국에서 결합을 승인하거나 심사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를 종료했다.



미국과 EU, 일본 경쟁당국의 승인이 남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본과는 여전히 사전협의 중이며, 심층 조사에 돌입한 EU도 깐깐한 건 매한가지다. EU 집행위가 1990년 이래 33년간 심사한 기업결합 8764건 중 심층조사에 착수한 사례는 전체의 3.3%인 296건이다. 296건 중 32건에 대해 불승인 판단을 내렸는데, 심층조사 착수 후 합병을 포기한 사례만 53건에 달한다.

2021년 캐나다 1위 항공사 에어캐나다도 3위 항공사인 에어트랜젯 인수를 추진할 때 EU 반독점당국의 심층조사 중 합병을 포기했다. 당시 에어캐나다는 슬롯 반납안을 제시했음에도 EU 집행위가 반대 의사를 밝히자 "추가 시정안은 에어캐나다의 국제경쟁력을 낮출 것"이라며 "제출하더라도 EU 집행위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합병을 포기했다.

미국의 경우 대한항공 건에 대해 시간을 좀 더 두고 검토하기로 했으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7월 미 교통부·법무부에 "항공교통 경쟁을 활성화하고 신규 진입이 용이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협의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최근에는 미국 1위 저비용항공사(LCC)인 제트블루의 미국 스피리트항공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미 법무부는 반독점소송을 제기했으며, 미 교통부도 1978년 이래 처음으로 운수권 이전 중단 절차에 착수했다. 양사는 보스톤·뉴욕 등 주요 공항에서 슬롯(이·착륙 횟수)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결국 소송을 피하지는 못했다.

슬롯 반납을 통해 주요국 반독점당국의 허가를 받아온 대한항공도 이번에는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미국과 EU 경쟁당국을 만족시킨다고 보다 많은 슬롯을 반납하면, 오히려 합병 효과가 반감되면서 에어캐나다 사례처럼 그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은 이미 인수 조건으로 영국 슬롯 17개 중 약 41%에 해당하는 7개 슬롯을 영국 버진아틀랜틱에 반납하기로 했으며, 중국 당국에게도 9개 슬롯의 반납을 약속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각국 경쟁 당국이 대한항공의 인수·합병에는 보다 느슨한 기준을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국내선 규모도 엄청난데 제트블루와 스피리트는 미국 1·2위 LCC로 합병시 점유율이 매우 커진다"며 "미국 경쟁당국이 까다로운 것은 맞지만 제트블루는 대한항공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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