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설치만 10번" "쓰라고 만들었냐"…액티브X에 묶인 법원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3.03.07 04:25
글자크기

[MT리포트-'먹통 느림보' 사법서비스]②5점 만점에 2.7점 받은 법원 전자시스템

편집자주 법원 전산망 전체가 마비되면서 재판 일부가 연기되고 전자 소송, 사건 검색 등 대국민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는 초유 사태가 발생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안일한 전산행정과 자못 권위적인 서비스 인식이 빚어낸,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 직장인 A씨는 최근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열람하려고 대법원 등기소 사이트에 접속해 열람에 필요한 요금까지 지불했지만 필요한 서류를 열람할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MS(마이크로소프트) 엣지나 구글 크롬으로는 안 되고 옛날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가능하다"는 글이 보였다. A씨는 "지난해 이미 MS가 익스플로러 지원을 중단했는데도 아직 법원 시스템은 익스플로러를 쓴다는 것"이라며 "후진적인 시스템이 이용되고 있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법원의 '나의 사건검색' 서비스를 비롯해 공고·판결문 인터넷 열람 서비스 등이 지난 2~5일 두차례 먹통이 된 것을 계기로 법원 전산 시스템의 후진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법원 시스템을 수시로 이용하는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구시대적 법원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민국 법원' 앱을 검색하면 이용자들의 불만이 또렷하게 확인된다. 이 앱은 사건 검색에서부터 전자소송 진행 정보, 재판 진행내역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앱이다. 이 앱의 평점은 5점 만점에 2.7점이다. 최하점인 1점을 준 이용자가 가장 많다.

한 이용자는 "로그인 하면 공인인증서 비밀번호창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앱을) 업데이트한 뒤 창이 뜨지 않아 로그인 할 수 없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설치 후 실행이 안 된다"며 "재설치만 10회가 넘었다"고 호소했다. 이밖에서도 "충돌이 나서 앱이 켜지지 않는다" "이걸 쓰라고 만든 것이냐" 등의 불만이 올라왔다.



수시로 법원 시스템을 이용하는 변호사들도 고충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윤기 대표변호사(로펌고우)는 "원래대로라면 전자소송 앱을 통해 재판 기록을 제출, 열람하고 법정에서도 원활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전자소송 앱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재판 기록을 별도로 다운로드해 태블릿에 담아간다"고 전했다. 언제 전자소송 앱에서 오류가 생길지 모르니 미리 태블릿에 별도 파일 형태로 내려받아 재판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고 변호사는 "법원 전산 시스템을 통해 등기 업무를 하려면 컴퓨터를 몇 번이나 재부팅해야 한다"며 "아직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등기진행이 가능한데 보안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크롬이나 사파리 등 다른 브라우저의 경우에도 어떤 보안 설정은 기준보다 낮추고 어떤 건 추가하는 등 세세한 설정을 거쳐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재설치만 10번" "쓰라고 만들었냐"…액티브X에 묶인 법원
여전히 액티브X와 같은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조윤상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인평)는 "현재 사용하는 업무용 컴퓨터에는 전자소송 시스템을 아예 설치하지도 않았다"며 "전자소송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각종 액티브엑스 프로그램들을 설치하다보면 컴퓨터 전체가 먹통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의 전자소송 시스템은 2010년대 만들어진 시스템을 액티브엑스로 덕지덕지 덮어야만 겨우 돌아간다"며 "보안에도 큰 문제가 있을텐데도 이같은 구닥다리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가 뭔지 법원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변호사 A씨는 과거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재판기록을 사무실에서 종이로 인쇄할 수 없어 낭패를 봤다고 밝혔다. 법원 시스템에서 조회한 기록을 인쇄하려고 했지만 '해당 시스템이 지원하지 않는 프린터'라는 이유로 출력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A 변호사는 "법원에서 '프린터 기종을 추가하려면 모델 등록을 신청하라'고 안내해주기는 했지만 등록신청을 했는데 그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 프린터 등록이 안되더라"고 말했다.

법원 전산 시스템이 최근의 미디어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일례로 재판기록을 첨부할 때 문서파일의 크기는 20MB(메가바이트) 이하, 영상파일의 크기는 100MB 이하여야 한다. 그나마 예전 문서 제한 10MB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문서파일에 사진 등 파일을 첨부할 경우 20MB라는 기준을 맞추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교통사고 사건처럼 동영상 증거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동영상 파일 크기 100MB' 제한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점차 활용이 늘고 있는 'hwpx 확장자' 파일도 업로드(등록)가 불가능하다. hwpx는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신규 문서 포맷으로 정부부처 자료 등에도 쓰인다. 법원 재판시스템에 업로드할 수 있는 파일 확장자는 한컴의 hwp를 비롯해 doc, docx, pdf, txt 등 5개 문서파일 포맷과 bmp, jpg, jpeg, gif, tif, tiff, png 등 7종의 이미지 파일 포맷밖에 없다. hwpx 파일을 입력하려고 하면 '확장자 .hwpx 첨부할 수 없습니다'라는 팝업창이 뜬다.

법원 시스템의 낙후 문제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입법부에서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법안 발의부터 심의, 의결 등 과정이 세세하게 소개한다. 행정부에서도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해 민원인들이 각종 서류를 간편하게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법조계 한 인사는 "사법 시스템은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