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장기집권 3가지 이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3.03.0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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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데뷔 6개월간 '순위 고정'…뉴진스 음악에 어떤 성공 법칙 있나

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


이들의 기록을 복기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지난해 7월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로 데뷔한 뉴진스(New Jeans)는 이후 6개월간 차트 1~3위를 줄지어 세우는 건 물론이고, 정지화면을 보듯 순위에 변동도 거의 없다. 자신의 또 다른 음반 수록곡이 순위에 변동을 준 적은 있어도 타인의 곡이 이들의 순위에 침범하거나 훼방을 놓는 걸 이들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뉴진스의 인기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미성년으로 구성된 풋풋하고 씩씩한 힙합 베이스의 역동적인 걸그룹으로 시작해 극찬 릴레이가 한두 개가 아닐 테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음악 부문만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조금 더 독특한 면모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아주 독특하거나 특별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면모들이 앞으로 탄생할 수많은 그룹의 교과서적인 성공 법칙으로 애용될 이유는 충분해 보일 것 같다.



아무리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아무리 탁월한 춤솜씨를 발휘하고, 아무리 트렌드에 부합하는 스타일을 자랑해도 음악, 그 자체가 도드라지지 않거나 친화력을 상실하면 말짱 도루묵일 수밖에 없다. 뉴진스의 장기집권에는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곡이 가진 힘과 매력을 빼놓기 어렵다. 그 이유를 3가지로 정리했다.

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
① 3~4개 재즈코드의 단순 반복=뉴진스가 데뷔곡으로 내세운 '어텐션'(Attention)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하입 보이'(Hype boy)와 '디토'(Ditto)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수록곡들은 대개 귀에 착 감긴다. 귀를 집중시키는 힘은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재즈의 기운을 빌린다. 2010년대부터 유행처럼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지금은 거의 누구나 예외없이 '재즈 코드'를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장년의 애창곡으로 흔히 알려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젊은 연인들' 같은 80년대식 3화음(C-Am-Dm-Dm/C-F-G)은 철 지난 유행처럼 다시 보기 힘들어졌다. 이 자리를 대신 차지한 화음은 5, 7, 9처럼 화음이 더 늘어난 재즈 코드들이다. 쉽게 말해, C코드는 CM7으로 Am는 Am7으로 1, 3, 5도의 3화음이 1, 3, 5, 7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확장 화음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단선적인 음의 느낌을 세련되고 입체적인 음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입보이'에선 Am7-Bm7-Em7으로 확장 코드를 이용하고 '디토'는 DM7-C#m7(F#m7)-Bm7(Bb7#11)-AM7으로 가장 정석적인 '2-5-1 재즈코드'를 동원한다. '어텐션' 역시 Cm7-GbM7-AbM7-BbM7으로 '2-5-1 재즈코드'를 쓴다. 참고로 2-5-1은 곡 진행에서 4도에서 5도로 갔다가 다시 1도로 진행하는 곡 구조에서 4도를 대리코드인 2도로 바꿔 연주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갖게 하는 재즈에서 아주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코드 진행 방식이다.(아이유, 십센치 등 수많은 인기가수들이 2-5-1 작법으로 노래한다)

두 번째는 코드 수를 대폭 줄인 것이다. 뉴진스의 곡들은 대개 코드가 3, 4개로 제한된다. '디토'에서 C#m7(F#m7)-Bm7(Bb7#11) 식의 대리코드(괄호 안의 코드, 약간의 느낌 변화를 준다)를 쓰긴 하지만, 사실상 4코드로 '절약'해 사용한다. 복잡한 코드 대신 단순하게 사용함으로써 귀에 쉽게 각인되는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혁오밴드의 '위잉위잉'이나 '와리가리' 같은 곡을 떠올리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단순한 재즈코드를 계속 반복한다. 4마디가 지나가서 그 선율을 잊어버리면 다음 프레이즈에서 똑같은 마디가 계속 반복되기에 잊어버릴 수가 없다. 최신 녹음 방식은 수많은 악기를 복잡한 코드로 빵빵하게 만드는 게 유행이지만, 뉴진스는 이런 흐름에서 철저하게 빗겨간 '비주류의 새로운 주류' 형성의 첫 주자로 나선 셈이다. 위 3개 방식이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은 아니지만, 있는 방식을 더 간단하고 한꺼번에 조합해 창조적으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철학과도 상통한다. 민 대표는 기존의 전형적인 방식을 깨고 싶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는데, 뉴진스의 음악들은 그런 '공식을 깬' 흔적들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
② '레트로+뉴트로' 사운드와 리듬=하지만 반복적인 선율은 되레 지루해지기 쉽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독특한 리듬을 구현하는 것이다. '디토' 같은 4개 코드의 무한 반복 선율은 4마디, 8마디마다 빠르고 느린, 강하고 약한 리듬을 수수께끼처럼 놓아 지루한 음악의 함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하입보이'의 선율은 '디토'보다 덜 재즈적인 3개 코드의 반복으로 지겹지만, '~재미없어 어쩌지'를 중심으로 앞뒤 리듬이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도입부가 4박자의 정박자로 움직인다면 후렴구에선 싱코페이션(당김음) 등 그루브(리듬감)가 강조된 리듬으로 변한다. '어텐션'에서 보는 끈적거리는 R&B(리듬앤블루스) 리듬은 발라드와 댄스의 어느 교합점에 놓인 듯한 신비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들 곡이 가진 사운드는 10대나 50대 모두에게 '보편적 친근성'을 부여한다. 이는 전적으로 이 곡들을 만든 작곡자이자 메인프로듀서인 이오공(250, 본명 이호형)의 역할이 컸다. 이오공의 사운드는 10~20대 젊은층에겐 '뉴트로'(새로운 과거), 40~50대 중년에겐 '레트로'(과거의 재현)의 경험을 안긴다. 기성세대에게 신서사이저의 피아노 소리는 90년대 자주 듣던 댄스 음악의 향수를, 드럼 소리 역시 오락실 게임기에서 맛보던 짜릿한 기억을 되살리지만, 신세대에겐 하나의 새로운 사운드로 수용되고 있다.

이 동시적 음악 콘텐츠의 기발한 발굴은 이미 예견됐다. 지난해 3월 이오공은 자신의 앨범 '뽕'을 통해 소위 B급 사운드의 향연을 펼쳤다. 이박사도 울고 갈 질펀한 뽕짝 사운드에 끈적이는 리듬은 한편으로는 가볍고 즐겁지만, 한편으론 애잔했다. 역동적인 춤을 추며 화사한 웃음으로 시종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뉴진스의 곡 사이로 우수와 비애가 느껴졌다면, 이오공의 숨겨진 슬픈 서사가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걸그룹 뉴진스. /사진=하이브
③ 기교 아닌 감각으로 가창=뉴진스에겐 초절정 기교나 소름 끼치는 고음이 없다. 무엇보다 곡에 기승전결이 없다. 어떤 곡은 기나 기승만 있다. 힙합을 주요 무기로 내세우는데도, 랩 파트를 의무적으로 넣는 배분의 몫도 없다. 그런데도 모든 곡들이 귀를 쫑긋 세우게 하면서 집중하게 하는 힘의 마지막 장치는 그들의 '가창'이다.

소리 내어 부르지 않지만, 어떤 말보다 정확하고 날카롭게 들린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이들의 말이 더 멋있고 귀에 박히는 것은 말투 때문이듯, 뉴진스의 가창은 노래 투 때문이다. 그들의 가창은 한 마디가 끝나고 다음 마디로 넘어가는 첫 음에 희노애락의 감정을 온전히 실어 듣는 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낱낱이 전달한다. 기교로 설명하지 않고 감각으로 알리고 고음으로 설득하지 않고 호흡으로 표현한다.

10대라고 보기 어려운 성숙한 노래 투가 감각적인 가창 위아래로 알차게 배어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집중의 노래로 탄생한 셈이다. 이들의 장기집권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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