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부르랴…걸음마 뗀 MZ노조, 첫 과제는?

머니투데이 김진석 기자, 김도균 기자, 우경희 기자, 이강준 기자 2023.02.26 06:30
글자크기

[MT리포트] 새로운 바람 MZ노조 (下)

편집자주 MZ세대가 노동운동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공정성을 기치로 내건 이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기성 노조의 행보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MZ노조, 등장 자체로 유의미…'공정성·정의' 확보에 성패 달려"
전문가들이 말하는 MZ노조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유준환 의장(오른쪽 두번째)를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유준환 의장(오른쪽 두번째)를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투쟁과 무차별 파업 대신 대화와 타협을 기치로 내건 MZ세대 노조가 노동운동의 새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노동 전문가들은 MZ세대 노조가 과거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제3노조'의 길을 걷지 않고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으려면 기성 노조와 차별된 '투명성'과 '민주성', '공정성' 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MZ세대 노조의 역할에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아직은 많은 게 사실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3노조의 흐름이 있었던 만큼 아직까지는 MZ노조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것.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보수 정부가 등장하면 (제3노조의) 모습은 항상 등장했다"며 "(MZ세대 노조도) 그런 것의 유사 형태로 등장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노동법 전문 김남석 변호사도 "아직 주류 노조가 될 것이라는 판단은 이르다"며 "오래 지켜 보면서 판단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성 노조들의 불법, 폭력 시위 등에 대한 누적된 비판과 불만이 배경이 돼 탄생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유의미한 현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도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시위의 본질은 단체행동권을 이용해 부당함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인데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시위는) 정치구호와 일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로 대중적 인식이 좋지 않았다"고 노조 창립 이유를 설명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성 노조가 기득권에 안주해서 어떻게 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행동하는 식의 사고방식이 이제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MZ노조와 경쟁해야 하는 기존 노조들도 변화를 요구하는 압박이 심해지게 됐다. 박 교수는 "MZ노조가 등장한 만큼 민노총 등 기성 노조들도 더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노조를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MZ노조의 성패는 기성노조와 차별성을 얼마나 유지할지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남석 변호사는 "MZ세대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나서겠다는 것에 대해 환영한다"며 "기존 노조들과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명히 노동 현장에서의 유의미한 현상으로 이해가 된다"며 "이 같은 흐름이 노동운동의 큰 주류로 부각될지 아니면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성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움직임이 유지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엄청난 표로 정치판에 입김…구태에 질린 MZ, 노동시장 흔든다
"기업 내부서 다양한 변화와 시도 이뤄져야 할 것" 목소리도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유준환 의장(오른쪽 두번째)를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유준환 의장(오른쪽 두번째)를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신경쓰는것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다. 현대차노조가 한국의 협동로봇 시장이 커질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만난 한 외국계 협동로봇 기업 대표의 말이다. 협동로봇을 사 주는 고객인 기업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로봇 시장의 성패를 결정할거라는 말은 우리 기업계에서 노조가 갖는 위상과, 그에 따라 기업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동시에 보여준다.

공장자동화율은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비용, 시간당 생산성 등에 따라 경영의 측면에서 결정돼야 할 일이다. 여기에 노동조합이 개입한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공장자동화를 거부하고 생산효율을 억지로 낮춘다. 더 많은 시간 공장을 돌려 더 적은 제품을 생산한다면 당연히 제품가격이 오른다. 이 부담은 기업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돌아간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주도하는 대안노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출범에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건 이 때문이다. 기업도 정부도 소비자도 어쩌지 못하는 노동시장 구조를 안에서부터 혁신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쏘아올린 신호탄이다.

기업들은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다.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유지하던 노사관계는 노동계의 영향력이 커지고 정치세력과 노동계가 서로를 상호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불균형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노동계 이슈들이 새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 지위에 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일부 정치세력과 노동계의 결탁은 사실상 품앗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지역에서 엄청난 표를 보유한 노조의 조력이 필요한 정치세력은 노동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정치적 비호를 받는 노조는 정치구호를 외친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노조는 더욱 정치세력화하고 그런 노조를 보유한 기업의 기업활동 역시 시나브로 기형적 구조가 된다.

새로고침 노동협의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출범식에서 "이석기 석방이나 한미연합훈련 반대 등 기존 노동조합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데 공감하지 못한다"며 "노동자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 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치구호와 폭력시위로 노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다"며 "미래 노동시장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꾀하겠다"고 덧붙였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노사관계 불균형과 경직된 노동문화는 어지간한 외부 충격으로는 흔들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해 있다"며 "근로자들 내부에서 변화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재계는 비록 느리지만 노동시장 개혁이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글로벌 시장에서 다투는 우리 기업 중 강성노조를 보유한 경우는 일부에 국한된다. 과거 강성노조의 쟁의에 몸살을 앓았던 정유업계 대표기업 SK이노베이션 등은 노사관계 대표 우수기업으로 꼽힌다. 철강업계에선 포스코 노조가 비록 구성원은 소수지만 최근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하는 등 변화의 바람에 동참했다.

대안노조의 탄생이 노사관계 변화의 속도를 더 높여주기를 기업들은 기대한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이번 사례를 따라 기업 내부에서 보다 다양한 변화와 시도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 없이 사장님 만나기 어렵다…닻 올린 MZ노조, 순항하려면
"거대 노조가 독점하는 현 상황에선 한계점 많아, 교섭권 획득이 중요"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유준환 의장(오른쪽 여섯번째)을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유준환 의장(오른쪽 여섯번째)을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2.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첫발을 뗀 MZ세대 노동조합 모임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곳 노조 대부분 교섭권이 없어 동력을 잃기가 쉽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사무직 노조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기 위해선 교섭권 확보가 가장 중요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새로고침 협의회는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LG에너지솔루션 연구기술사무직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LS일렉트릭 사무노조 등으로 구성됐다. 주로 국내 대기업, 공기업에 근무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모였다.

한국·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주도하는 생산·현장직 노조에 반발해 등장한 사무직 노조 연합체다. 사무직 노조는 2년전 현대차와 LG전자에서 만들어지면서 산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MZ세대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대립적인 노사 관계 풍토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도 받았다.

다만 현대차 사무직 노조는 동력을 잃은 상태다. 사측과 협상에 나설 수 있는 교섭권을 획득하지 못하면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에도 수차례 면담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는 민주노총 산하로 편입되자며 사무직 노조 내에서도 내홍을 겪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는 조주완 LG전자 사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만나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마찬가지로 교섭권을 얻지 못했다. 지난해 생산직과는 별도로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 나서겠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노동계는 새로고침 협의회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한국은 복수 노조를 허용하지만, 교섭권은 과반수 노조에게만 허용하기 때문에 소수 노조는 사실상 협상력이 전무하다.

◆노동계 "교섭권 획득이 중요…가능성 낮지만 금호타이어 사례 참고해야"

27일 금호타이어 공장 모습 /사진=김남이 기자27일 금호타이어 공장 모습 /사진=김남이 기자
전문가들은 양대 노총이 자리잡은만큼 최근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가 교섭권을 획득한 방식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지난해 8월 생산직 노조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며 교섭단위분리를 신청했다. 복수 노조가 아닌, 민주노총 생산직 노조와 완전히 다른 노조로 인정해달라는 것.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모두 교섭단위를 분리하라고 판정했다. 법원에서도 금호타이어가 중노위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금호타이어 내 생산직과 사무직의 근로조건이 현격하게 달라 분리해서 교섭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문제는 금호타이어의 사례가 매우 특수하다는 점이다. 금호타이어는 생산직과 사무직의 근무지가 명확히 다를 뿐더러 두 직종 사이 인사이동도 드물다.

국내 대기업 사업장은 대규모 생산직 노조에 사무직 직원도 가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새로 사무직 노조가 출범해도 이미 생산직 노조에 속한 직원이 많아 교섭권 분리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민현기 공공운수노동조합법률원 공인노무사는 "이미 한 사업장 내에서 과반수 노조에 현장직과 사무직이 같이 가입돼있는 경우가 많다"며 "정확하게 사무직 노조가 양분돼야 하는데 이런 사례는 적다"고 설명했다.

새로고침 협의회는 현 노동법제 하에선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만큼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송시영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부의장은 "거대 노조가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에선 한계점이 많다"며 "각 노조별로 교섭권 획득을 노리면서도 국회에 지속적으로 법·제도 개선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