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없는데 사이렌 켜고 난폭운전…사설구급차 기사 채용 조건 보니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김지성 기자 2023.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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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사설 구급차 운전자 모집 공고. 자격은 1종 보통 면허 소지자다. /사진=온라인 채용 사이트 갈무리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사설 구급차 운전자 모집 공고. 자격은 1종 보통 면허 소지자다. /사진=온라인 채용 사이트 갈무리


사설 구급차 운전자의 난폭 운전 등 위법 행위가 잇따르면서 채용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2019년 사설 구급차로 병원을 옮긴 환자 숫자는 61만명이다. 사설 구급차는 주로 첫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중증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 사용된다.

통상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할 일이 생기면 직접 사설 구급차를 불러 이용한다. 사고나 응급상황이 벌어진 현장에서 병원까지의 환자 이송은 소방당국 책임이지만 일단 병원에 도착해서 처치가 시작되면 개인이 직접 이동을 해야 한다. 이에 각 병원을 돌며 자신들의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라는 홍보를 하는 업체들도 많다.



관련법상 사설 구급차 운전자 채용 기준은 단순하다. 1종 보통 면허만 소지하면 된다. 추후 도로교통법에 따라 안전 교육은 받아야 하지만 온라인으로 3시간 이수하는 게 전부다. 119구급차 운전기사가 전문 구조교육을 받는 것과 대조된다.

서울 한 사설응급이송단에서 일하는 응급구조사 A씨는 "운전자 보수와 처우가 열악해 기사가 늘 부족하다"며 "음주운전 이력이 있어도 합격을 하는 등 지원만 하면 대부분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응급이송단이 140여개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속도위반 등 난폭 운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천의 한 사설응급이송단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B씨는 "환자가 타고 있지 않아도 속도를 높이거나 사이렌을 켜는 운전자가 많다"며 "난폭 운전으로 뒷자리 구조사가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응급 차량일지라도 긴급한 용도 이외 목적으로 과속이나 신호위반을 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구급차는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목적이 있어 단속이 어렵다"며 "특히 경광등을 울리며 가는 경우 위급하다고 생각해 단속을 지양한다"고 말했다.

일부 사설응급이송단은 환자 이송 시 미터기로 주행거리를 재 요금을 계산한다.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현금 결제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B씨는 "환자들이 요금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요금 부풀리기나 현금 결제 강요로 탈세가 발생하기 쉽다"고 말했다.


사설 구급차 운전자가 난폭 운전으로 시민과 시비에 휘달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30대 C씨는 지난 18일 사설 구급차 운전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운전 중이던 C씨가 어린이 보호구역에 진입해 속도를 늦추자 뒤따라오던 사설 구급차 운전자가 경적과 사이렌을 울리며 5분간 욕설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당시 구급차에는 응급환자가 없었다.

박시은 동강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설응급이송단의 경우 대부분 주식회사 형태"라며 "결국 이윤 추구가 목적이라 운전자들에게 공적 책임을 지우는 게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사설 구급차는 응급실처럼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지 않아 위험하고 시설이나 장비가 낙후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사설 구급차도 정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버스처럼 준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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