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재세의 '횡재'는 windfall(낙과)로 번역된다. 말 그대로 우연히 앞에 사과가 떨어지는 게 횡재다. 산유국이나 글로벌 원유기업(오일메이저)들이야 원유를 땅속에서 캐내니까, 유가가 갑자기 오르는 게 횡재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정유사들이 본 수조원의 이익은 횡재가 아니다. 이들은 오일메이저들과는 가격 결정구조 자체가 다르다. 원유를 사다가 제품을 만든다. 원유값이 오르면 비싸게 사온다. 코로나19로 수요가 끊기며 긴 적자 터널을 지났고 수요가 회복되며 이익을 냈다. 이게 횡재라며 횡재세를 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석유제품 가격 결정 구조에 대해 무시했거나 무지한 것이다.
문제는 적자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새해 경제전망도 어둡다. 업계 신년행사서 만난 한 정유사 임원은 "상저하고(상반기 침체, 하반기 회복)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거는 중국 경제 회복과 러시아 전쟁 종전이라는 가정에 가정을 더한 것일 뿐"이라며 "실제로는 정유업계만이 아니라 산업계 전반이 연간 적자까지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계는 정부의 움직임도 우려한다. 정부는 최근 정유업계 도매가격 공개 법안을 발의했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한 기름값, 그러니까 원가를 공개하라는 거다.
이미 정부는 해외에서도 놀라는 규제인 '판매가(소매가) 주간 단위 공개'를 2009년부터 시행 중이다. 주유소 기름값을 일방적으로 올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데, 외려 '남들 올린 만큼 우리도 올리자'는 역효과를 낳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은 제도 시행 2년 후인 2011년, 정유사들이 정보공개를 적극 활용해 가격을 '상승 동조화'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공개된 정보로 경쟁사의 가격 설정 패턴을 분석해 가격을 올렸다는 거다.
한술 더 뜨는 도매가격 공개는 2011년에도 추진됐는데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제동을 걸었다. 정유사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규제라는 지적이었다. 그랬던 법을 '민간주도 혁신성장'을 외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추진한다는데 기업들은 아연실색한다.
법조인이자 정치인 출신인 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법규 위반이고 시장경제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며 "업계가 담합으로 몰릴 수도 있는데 정부가 실상을 파악하지 않거나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과 정부는 횡재세나 가격공개처럼 일부 계층의 지지를 위한 포퓰리즘적 정책 추진을 멈추고 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다른 에너지기업 임원은 "에너지 대란의 1차 피해자는 서민이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양의 에너지를 구입하는 건 기업"이라며 "위기감이 고조되는 기업에 규제 족쇄가 더해지는 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