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땡큐 삼성" 숨은 의미…"기술 우위 잃으면 끝"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3.01.02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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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맞선 K-기업들]1-반도체 ④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구축 나선 미국

편집자주 새해가 밝았지만 경제 상황은 어느때보다 어둡다. 퍼펙트스톰(복합 경제 위기) 앞에 소비, 투자, 생산, 수출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대한민국이다. 그 선봉에 기업들이 있다. 희망의 2023년, 산업 현장을 찾아 위기 극복의 해법을 모색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시찰하고 있다./사진=뉴시스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시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반도체 칩에 자랑스럽게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찍힐 수 있습니다."(These chips can be proudly stamped Made in America)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TSMC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식을 주목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 리사 쑤 AMD CEO 등 미국 반도체 시장의 거물들이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입에서 발언의 핵심은 투자를 결정해준 TSMC에 대한 감사 인사도, 공장 증설의 의미에 대한 설명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미국 반도체 산업의 부흥이었다. 팀 쿡 CEO는 "미국이 첨단 제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다"라며 "애플과 같은 회사가 미국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는 위대한 국가에 보답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업계 한 인사는 "정보통신과 의료, 항공우주 등 모든 전략산업의 토대인 반도체를 중국이 갖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미국에 내재화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이라며 "기저에는 자국 우선주의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지속하는 한국에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당장에는 중국보다는 미국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패권전쟁 포문을 연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대중 제재를 확대하거나 자국 내로 반도체 기업을 끌어들일 때면 중국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는 방식으로 형국이 흐르고 있어서다. 미국의 움직임과 속내가 향후 일어날 변화의 실마리란 얘기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을 어떤 존재로 볼까. 칩4(미국·한국·대만·일본) 협력 결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 등 겉면을 보면 견고한 동맹 체계를 구축한듯하지만 마냥 안전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의 한미동맹과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 등이 갖는 의미도 잇겠으나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 덕분에 칩4 동맹에 들어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칩4 동맹은 메모리 1위이자 파운드리 2위인 한국, 파운드리 1위 대만, 소재·장비 강자 일본을 모아 자체적 공급망을 형성한 것"이라 말했다.

기술에서 밀린다면 한국과 삼성의 자리는 다른 이들의 차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국가 근간인 시장경제 체제를 깰 정도로 저돌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국 기업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는 메모리시장 강자인 마이크론과 최근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이 있다. 이 관계자는 "미국 기업 간 기술 제휴나 보조금을 통한 수주 물량 확보 등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핵심 의존성을 유지·확보하는 것이라 조언한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시장은 철저한 글로벌 분업 아래 세계 최고의 기업들만 참여하는 비즈니스"라며 "어느 국가든 자국 기업이 잘했으면 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지만 기술력 우위인 기업을 철저히 우선하는 분야"라 말했다.

이는 국내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반도체 기업들은 치열한 기술 경쟁 탓에 최첨단 공정 개발과 라인 신설을 모두 본토에서 하기 때문이다. TSMC가 미국 기업들의 첨단 공정을 애리조나에 지어달라는 끝없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2024년 4nm(나노), 2026년 3나노 라인 도입 계획을 확정한 배경이다. 이는 대만 내 공장의 2022년 4나노, 2023년 3나노 계획 대비 2~3년 늦다. 이광만 제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경쟁국 대비 낮은 세액공제율 등이 우리 경쟁력을 떨어뜨릴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육성 역시 숙제다. 한 삼성 고위 관계자는 "과거 10년 전부터 반도체 십만양병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내부에 많았다"면서 "정부에 요청도 많이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최근에야 바이든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어 올리고 반도체를 강조하면서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 규모나 추진력은 부족한 수준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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