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 드림이 레전드 HOT를 리스펙트하는 법, 'Candy'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2.12.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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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 DREAM,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NCT DREAM,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얼마 전 MBC '복면가왕'에 레드카펫이란 이름으로 나온 훤칠한 남성의 노래를 들었다. 그는 레드카드라는 다른 남성과 솔리드의 '천생연분'을 랩과 함께 부르더니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은 또 혼자 열창해 40대 시청자들을 아득한 학창 시절로 데려갔다. '어리진 않다' '아이돌 출신이 아닐까'라는 패널의 예측이 나왔고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3살 때 친척집 생일 파티에서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를 율동까지 섞어 보여 10만 원 용돈을 받은 레드카펫. 바른 행실을 곁들인 첫인상이 좋아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이수만에게 그대로 발탁된 1세대 보이밴드의 멤버. 그는 가면을 벗고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까지 부르며 래퍼로만 알려졌던 자신의 숨겨둔 가창력을 뽐냈다. 바로 H.O.T.(에이치오티)의 이재원이다.

에이치오티는 현진영에 이어 SM이 발굴한 대어였다. 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폭풍에 따른 충격을 대중이 채 추스리기도 전에 불어닥친 가요계의 후폭풍이었다. 한 가지 재밌는 건 현진영을 보며 무대 퍼포먼스 아이디어를 얻은 서태지를 이수만이 연구한 끝에 나온 팀이 에이치오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SM 체제, 나아가 한국 아이돌 시스템의 사실상 출발점이었다. 그 이유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라는 한 사람이 멤버를 모으고 음악을 비롯한 팀의 모든 걸 통제해나간 반면, 에이치오티는 이수만이라는 프로듀서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통제(프로듀싱) 안에는 작곡자와 안무가 섭외, 콘셉트 설정과 캐스팅이라는 지금 아이돌 시스템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과정이 모두 포함됐다. 차이라면 멤버가 본격 다국적 편성이 아니었다는 점, 팬들의 응원도 온라인 댓글보단 오프라인의 피켓과 함성이었다는 점 정도일까, 기획사의 기획 아래 활동한다는 본질에선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년 사이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보여줬듯 같은 40대여도 3~4살 차이를 두고 굳이 '서태지 세대'와 '에이치오티 세대'를 나누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 'H.O.T.'는 청소년 층을 공략하기 위해 이수만이 지은 프로젝트 이름 'High-Five Of Teenagers'의 줄임말이다. 당시 이수만의 머릿속엔 '고등학생 그룹, 춤과 노래, 그리고 여태껏 없던 새로운 무엇'이 맴돌고 있었고 그는 그걸 실현하기 위해 멤버가 될 '고등학생'들을 찾아 나선다. 가장 먼저 접촉한 이는 모친의 사업 부도 때 오디션에 응한 문희준이다. 문희준은 오디션에서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를 불러 이수만의 관심을 얻었다. 그 뒤 문희준의 소개로 오디션을 보러 온 문희준의 후배가 있었는데 정작 이수만은 그 오디션 생을 따라온 안칠현이라는 친구에게 더 눈이 갔고 이수만은 결국 그를 영입한다. 바로 강타다. 강타는 한때 무명 기타리스트였던 문희준의 부친이 좋아한 메탈리카에 빠져 지낸 메탈 키드였는데, 이후 힙합을 접한 뒤 음악 취향을 바꿔 한국 아이돌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HOT, 사진출처=스타뉴스 DBHOT, 사진출처=스타뉴스 DB


메인 보컬리스트 두 명을 맞아들인 에이치오티는 이후 이수만이 태평양을 건너가 캐스팅한 안승호(토니 안),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받은 "구미가 낳은 춤꾼" 장우혁, 앞서 언급한 이재원이 가세해 5인조 보이밴드로 정식 출범했다. 유영진이 보컬 트레이너를 맡은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 선언을 하고 8개월이 지난 1996년 9월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라는 앨범을 내고 데뷔했다. SM이 발매한 통산 16번째 결과물인 이 작품의 타이틀 곡은 서태지의 'Come Back Home'을 닮은 갱스터 랩 넘버 '전사의 후예'로, 운이 없게도 이 곡은 미국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거물인 사이프러스 힐의 'I Ain't Going Out Like That'이라는 곡과 표절 시비가 일며 SM을 긴장시켰다. 이수만은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발 빠르게 후속곡을 내놓았고 해당 후속곡은 에이치오티를 90년대 최고 국내 아이돌 그룹으로 우뚝 서게 했다. 바로 1996~97년 겨울을 장악한 노래 'Candy'다.

'Candy'는 장용진이라는 인물이 작사와 작곡, 편곡까지 모두 한 곡이다. 1978년생으로 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과 동갑내기인 그는 'Candy'를 고등학생 때 만들었다. 한때 에이치오티의 멤버로 영입될 뻔했다는 장용진은 유피의 '뿌요뿌요'와 '바다', 태사자의 '도', 사준의 '메모리즈' 등을 발표하며 90년대 후반 송라이터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에이치오티의 '행복'도 그의 곡이다). 장용진은 현재 영화음악 감독 및 교육자(경일대학교 K-방송예술학부) 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26년이 지났다. 그리고 세기말 한국 여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든 'Candy'는 같은 소속사의 까마득한 후배 보이밴드인 NCT 드림이 리메이크해 다시 대중 앞으로 왔다(이재원은 '복면가왕'에서 에이치오티 데뷔 26주년을 기념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NCT 드림 입장에선 이승환의 '덩크슛'에 이은 또 하나의 90년대 리메이크다. NCT 드림의 'Candy'는 에이치오티의 'Candy'와 같은 듯 다르다. 먼저 의상에서 그렇다. 애초 'Candy'의 의상 콘셉트는 다양한 맛과 색의 사탕 봉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문희준은 노랑과 유머, 강타는 초록과 외모(Handsome), 장우혁은 파랑과 거친(Tough) 매력, 토니 안은 빨강과 무드, 이재원은 주황과 샤이(Shy)한 이미지로 설정됐다. NCT 드림은 선배들의 콘셉트를 가져가면서도(해찬은 문희준, 천러는 강타, 제노는 장우혁, 재민은 토니 안, 런쥔은 이재원을 따랐다) 멤버가 두 사람 더 있는 만큼 마크는 아쿠아색, 지성은 흰색을 취하며 원조 콘셉트를 살짝 비틀었다. 옷도 아이스하키복을 연상시켰던 선배들의 오버핏 후드티보다 좀 더 자유분방한 모습이고, 그 시절 유행한 벙어리장갑은 양손이 아닌 한 손에만 끼는 것으로 반만 모방했다. 모자에선 장우혁의 버킷햇이 제노의 트래퍼 햇으로 대체됐고, 문희준의 선바이저는 천러의 머리 위에서 색깔만 달리해 재현됐다.


NCT DREAM,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NCT DREAM,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차이는 노래와 춤에서도 감지된다. 먼저 노래의 경우 강타와 문희준이 번갈아 부르던 소절(verse)을 해찬, 마크, 천러, 런쥔이 나누어 부른다. 이 역시 다섯이 아닌 일곱 명이라는 멤버 수에 따른 안배였을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단지 널 사랑해"로 시작하는 코러스 파트를 멤버 모두가 합창하는 부분인데, 원곡에선 토니 안이 소화한 지점이다. 비화에 따르면 곡을 만든 장용진이 에이치오티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코러스를 부르게 한 끝에 토니 안이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는 비교적 바리톤이 섞인 음색을 가졌던 토니 안이 코러스를 부르지 않으면 곡 자체를 줄 수 없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만큼 코러스 멜로디와 토니 안이 잘 어울렸다는 얘기일 텐데, 장우혁은 그래서 어느 방송에 나와 "'Candy'는 토니의 곡이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춤은 NCT 드림 쪽이 더 현란하고 절도 있는 군무 동선을 그려내는 한편, 과거 에이치오티 안무를 짠 박재준의 일명 망치춤과 파워레이서 춤도 간간이 곁들이며 원곡을 향한 오마주를 놓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We Go Up'의 힙합 바운스보단 'We Young'의 청량감 넘치는 댄스를 이들은 'Candy'에 응용한 셈이다. 이러한 노래와 춤의 미세한 차이는 뮤직비디오의 차이로까지 이어져 단순히 촬영 세트장 하나만으로도 NCT 드림의 것은 이미 선배들 것을 압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치오티의 뮤직비디오는 놀이공원에서의 춤(이 모습은 영상 막바지에 NCT 드림도 흉내낸다)과 서양 여성 사이 교차 편집 및 비디오카메라에 대기실, 공연장, 팬들 모습을 담는 선에서 영상의 서사를 매듭 지은 반면, NCT 드림은 동화 같은 세트와 노란 스크린,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채운 집 거실은 물론 90년대 오락실에 있던 DDR과 아케이드 게임, 느리고 불편했던 8비트 컴퓨터 감성까지 군데군데 새기면서 이 리메이크가 겨냥하고 있는 또 하나의 팬덤(30~40대)까지 치밀하게 배려했다.

이런 'Candy'를 편곡한 사람은 SM의 터주대감 켄지다. 켄지는 뉴 잭 스윙 풍 비트와 화창한 보컬 멜로디 등 원곡을 거의 손대지 않으면서도 원곡에 없던 펀치감과 구성상 입체감을 녹여 곡의 26주년을 기념했다. 구체적으론 신시사이저로 강한 당김음(싱커페이션)을 구사해 임팩트를 주거나 프리 코러스와 브리지에 느슨하고 세련된 긴장을 새기는 것이다. 뉴트로라는 말이 지나간 옛것(Retro)을 통해 그걸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새로운(New) 재미를 발견하는 현상임을 감안할 때 켄지는 뉴트로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한 편곡을 엮어냈다. 이렇게 2022년의 끝자락에서 지난 한 세대의 낭만적 추억이 또 다른 세대의 감성적 패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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