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아르헨티나 살타 리튬 생산공장 부지. 하단에 2024년 4월 준공될 상업생산 설비 골조가 보인다. 60m 높이 공장은 두 층으로 나뉘어 염수에서 리튬을 추출한다. 오른쪽에 늘어선 큰 사각형 구조물들이 염호에서 끌어올린 염수를 말리는 폰드, 사진 중단 왼쪽 사각형 건물이 데모플랜트다. 오른쪽 디귿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건물이 직원 숙소다. 왼쪽 위로 멀리까지 펼쳐진 염호가 보인다./사진제공=포스코
라마보다 체구가 작은 삐꾸냐(Vicuna)들만이 버티고 사는 삭막하고도 광활한 곳. 포스코에겐 그 땅이 지상 최고의 자원보고였다. 왜 이렇게 먼 곳에서, 왜 이렇게 높은 곳에서 리튬을 생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현장에서야 풀렸다. 살타는 아르헨티나와 한국이 상생할 수 있는, 약속의 땅 이었다.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오른쪽)이 취재진에게 현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포스코
원주민들이 염호를 부르던 이름은 옴브레 무에르토(죽은 남자). 말 그대로 죽음의 땅이었다. 구덩이를 파고 물을 길어 채워 소금을 만들고 산 아래에 내다 파는 정도의 가치였다. 마르고 빗물에 차기를 반복하는 야트막한 염호 600m 아래 웬만한 유전과 맞먹는 규모의 초대형 염호가 숨쉬고 있다는걸 미국과 호주기업이 발견했다. 물을 퍼내고 리튬을 만들면 그대로 돈이었지만 마중물을 퍼 넣는데 우선 돈이 필요했다.
먼저 광권을 확보했던 호주기업이 망설이는 사이 포스코가 공격적으로 딜에 들어갔다. 2018년 3000억원(2억8000만달러)를 들여 광권을 확보했고 이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1단계로 1조원 투자를 결정했다. 회장 취임 전 포스코케미칼에서 이미 리튬사업의 밑그림을 그려놓았던 터다. 데모플랜트를 돌려 확인된 염호의 리튬함유량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었다.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상무보)은 "염수 1리터에 리튬이 0.9g 정도 함유돼 있는데 3~4개월 가량 폰드에서 증발시키면 1리터 당 4g 정도로 농도가 높아지고 이후 공장설비를 통해 리튬을 추출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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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타 1~2단계 리튬투자의 숨은 키워드는 탄소중립이다. 포스코는 1단계 2만5000톤 규모 리튬공장 상공정 전원을 가스발전으로 충당한다. 한국의 현대중공업그룹과 협업한다. 설비를 한국에서 실어오는 중이다. 데모플랜트는 디젤엔진을 사용했었다. 2단계는 아예 태양광을 전원으로 쓴다. 안데스 고원은 연중 바람이 세차게 불고 춥지만 태양광은 세계 어느지역보다도 강렬하게 쏟아진다. 강한 바람은 태양광 판에 쌓이는 모래를 날려준다. 태양광발전에 최적 조건이다. 인근에서 이미 아르헨티나 기업이 태양광 발전사업을 하고 있다.
월드컵서 용기 얻은 아르헨티나, 포스코 통해 실리 찾는다
리튬이온배터리보다 효율이 높은 전고체배터리가 개발 및 상용화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전까지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리튬 시장에서 10~20년 간 '치고 빠진'다 해도 지금이 적기다. 만약 상용화 검증이 끝난 리튬이온배터리의 시대가 예상보다 더 길어진다면, 포스코의 살타 투자는 포스코그룹이 2030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매출 중 철강비중 40%, 친환경소재 40%' 달성의 첨병이 된다.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도 포스코의 투자는 가뭄의 단비다.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리오넬 메시 등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감격의 눈물을 보인건 우승의 기쁨 때문만이 아니다. 취약한 경제 펀더멘탈이 불러온 살인적 인플레이션, 라니냐(저수온현상) 등 기상이변에 따른 전략적 식량자원 생산·수출 급감 등 아르헨티나 경제는 말 그대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월드컵을 통해 조국에 힘을 주고 싶다는 메시의 각오가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준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르헨티나 경제에 기후와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내는 제조업 기반 구축은 숙원이다. 그 중에도 숙련된 인력을 키워주고 임금수준을 높여주는 포스코의 소재 개발 투자는 아르헨티나 정부로서도 반가울 수밖에 없다. 완성된 리튬을 반출하는데도 '수출세'를 내야 한다. 포스코는 세금을 내고도 이익이 남는다. 아르헨티나 정부로서는 세수를 늘릴 기회다.
더구나 배터리 생산 최대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은 리튬 생산 최대강국인 중국과 등을 돌렸다. IRA(인플레이션 방지법)로 미국 내 배터리 생산이 늘어난다. 포스코가 아르헨티나에서 쏟아낼 리튬을 향해 미국 내 배터리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들은 물론 미국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일제히 러브콜을 보낸다. 아르헨티나로서는 포스코를 통해 미국과 긴밀한 산업협력 루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포스코가 아르헨티나에서 채용한 현지 직원 13명은 취재진 방문 당시 한국에 와 있었다. 포스코 본사에서 기업문화와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서다. 특히 2025년 완공되는 2단계 투자는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만든 리튬원료를 광양으로 싣고와 제련(후공정)한다. 광양 리튬설비의 특성과 아르헨티나와의 합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현장에서 생산하고 한국에서 가공하는 구조가 완성된다. 이상룡 포스코아르헨티나 건설인프라개발실장(상무보)은 "2~3단계로 갈수록 한국인 직원 비율이 줄어들고 현지직원 비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보낸 13명은 이를 위한 특공대다.
원거리에서 본 테스트 목적의 데모플랜트용 리튬 폰드와 공장부지. 오른쪽 활주로와 비교하면 폰드의 엄청난 규모가 짐작이 된다. 상업생산 설비에서 사용할 폰드는 이보다 훨씬 큰 규모로 조성된다. 멀리 산기슭에 일부 물이 고인 염호가 보인다. 대부분의 염수는 지하 600m 깊이에 매장돼 있다./사진제공=포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