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말, 이 딜에 '균열'이 감지됐다. 9월 딜클로징(거래종결)이 예정됐는데 12월말로 연기됐다.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딜클로징을 피하기 위한 '핑계'라는 분석도 나왔다.
베어링PEA의 '변심'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SPA 체결 시점인 6월과 현재 12월, 상황이 급변했다. 약 8만원에 사기로 한 PI첨단소재의 주가는 당시 5만원대였는데 지금은 3만원 초반대다. 지분 54%를 약 1조3000억원에 사기로 했는데, 13일 종가로 지분 100% 기준 시가총액이 9001억원에 불과하다. 베어링PEA 입장에선 위약금 약 500억원을 물어주더라도 손을 떼는게 유리한 셈이다.
베어링PEA는 이번 인수 철회로 평판훼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국계 대형 하우스의 명성에 금이 갔다. 인수금융 파트너들과의 약속도 깨면서 다른 포트폴리오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정다툼 소지가 있지만 위약금 500억원도 놓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관계자는 "무리하게 금융비용을 감당하며 인수를 감행한 이후 주가가 오르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는 인수철회가 합리적인 결정이었을것"이라며 "인수를 마무리했다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공포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 하반기 시장의 관심이 쏠린 대형딜이 무산되는 사례가 수차례 발생했다. 고금리와 주식시장 침체 영향이다. 4조원 규모 메디트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던 GS그룹은 지난 10월 메디트 실적이 목표치를 밑돌면서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푸르밀 인수를 추진하던 LG생활건강은 지난 9월 인수철회를 공식화했다. 서울 여의도 IFC(국제금융센터)를 4조1000억원에 인수하려던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인수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