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훼손·위약금 감수, 딜깨는 IB…고금리 시대 '승자의저주' 공포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22.12.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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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베어링PEA가 PI첨단소재 (19,870원 ▲40 +0.20%)를 가져간다는 것은 지난 6월 이후 IB(투자은행) 업계에서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원매자인 글랜우드PE(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PI첨단소재 지분 54%를 1조2750억원에 인수하는 SPA(주식매매계약)를 체결 한 건 지난 6월7일이다.

1조원이 넘는 '메가딜'에 시장의 관심도가 높았다. 계약이 체결된 6월 이후 국내 M&A(인수·합병)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식으면서 글랜우드PE를 향한 부러움의 시선도 있었다. 글랜우드PE는 2020년 6000억원에 PI첨단소재를 사서 2년반만에 2배 이상에 팔기로 한 것이다.



9월 말, 이 딜에 '균열'이 감지됐다. 9월 딜클로징(거래종결)이 예정됐는데 12월말로 연기됐다.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딜클로징을 피하기 위한 '핑계'라는 분석도 나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베어링PEA는 지난 8일 글랜우드PE 측에 계약파기 의사를 전달했다. 기업결합심사 관련 중국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내린 결정이다. 중국 결과가 나온 이후에는 딜을 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결합심사는 '핑계'가 맞았던 것이다.



베어링PEA의 '변심'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SPA 체결 시점인 6월과 현재 12월, 상황이 급변했다. 약 8만원에 사기로 한 PI첨단소재의 주가는 당시 5만원대였는데 지금은 3만원 초반대다. 지분 54%를 약 1조3000억원에 사기로 했는데, 13일 종가로 지분 100% 기준 시가총액이 9001억원에 불과하다. 베어링PEA 입장에선 위약금 약 500억원을 물어주더라도 손을 떼는게 유리한 셈이다.

주가하락만 문제가 아니었다. 10%대로 치솟은 인수금융 금리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베어링PEA는 우리은행과 미래에셋증권을 주관사로 선정, 거래대금의 절반가량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하려는 딜구조를 짰다. 하지만 이후 금리가 급격히 오르며 인수금융 규모를 줄이는 등 방법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베어링PEA는 이번 인수 철회로 평판훼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국계 대형 하우스의 명성에 금이 갔다. 인수금융 파트너들과의 약속도 깨면서 다른 포트폴리오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정다툼 소지가 있지만 위약금 500억원도 놓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관계자는 "무리하게 금융비용을 감당하며 인수를 감행한 이후 주가가 오르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는 인수철회가 합리적인 결정이었을것"이라며 "인수를 마무리했다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공포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 하반기 시장의 관심이 쏠린 대형딜이 무산되는 사례가 수차례 발생했다. 고금리와 주식시장 침체 영향이다. 4조원 규모 메디트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던 GS그룹은 지난 10월 메디트 실적이 목표치를 밑돌면서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푸르밀 인수를 추진하던 LG생활건강은 지난 9월 인수철회를 공식화했다. 서울 여의도 IFC(국제금융센터)를 4조1000억원에 인수하려던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인수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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