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근로기준법은 아직 70년 전 방식"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22.12.0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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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에 갇힌 대한민국]1-②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방향은...

편집자주 대한민국 산업현장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과 노동 구조의 변화, 해외 인력 수급, 고령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정해진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 틀에선 새로운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머니투데이가 실제 산업현장의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서울=뉴스1)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원산업 안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현장방문에서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을 위한 핵심 수단인 ‘위험성평가’ 현장 작동성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대원산업 안산공장은 ‘위험성평가’를 철저히 시행해 2021년 이후 작업 중 사고로 다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제공) 2022.1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원산업 안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현장방문에서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을 위한 핵심 수단인 ‘위험성평가’ 현장 작동성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대원산업 안산공장은 ‘위험성평가’를 철저히 시행해 2021년 이후 작업 중 사고로 다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제공) 2022.1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노동시장 개혁의 주요 축인 근로시간 개편을 위해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연구회)를 출범시켰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노동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연구회는 독립적 환경에서 노동계, 경영계 등 각계각층 국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에 제출할 권고안을 만들고 있다.

연구회는 '근로시간의 총량'이 더 이상 노동시장의 성장동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논의를 시작했다. 아울러 미래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의 핵심 키워드로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설정했다. 이런 바탕에서 '주52시간제' 개편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주 52시간제, 이제는 손봐야..."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근로시간과 관련한 법·제도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출근해 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전통적 공장형 노동과정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를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1, 2차 산업내에서 조차 산업 고도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하지만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화이트칼라'를 넘어 '골드칼라'가 등장하는 시대 변화는 노동생산성이 투입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시간과 성과의 분리'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율성'과 '다양화'가 노동시장의 화두인 지금도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제도는 하루 8시간, 일주일 40시간 등과 같은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규율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장근로의 산정 주기 또한 1주 단위로 정하고 있어 시장변화와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산업 경쟁력이 우려되는 우리나라에도 이제 획일적인 근로자 상에 기반한 근로시간 관리 체계는 바꿔야한다. 사업장에 머무는 시간과 성과를 분리하고, 노동의 성격과 직무의 속성에 상응하는 시간 관리 및 보수 결정의 방법을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연구회 소속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가 자유롭게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비효율적인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노동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해야한다"며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열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킥오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7.18.[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열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킥오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7.18.
어떻게 바꿀것인가?
연구회는 지난 5개월 간 논의한 권고안을 오는 13일 발표한다. 고용부는 이를 토대로 내년에 법 개정 등을 통해 근로시간 개편에 나선다. 연구회는 우선 노사가 연장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산업·업무의 특수성과 근로자 선호의 다양성을 반영해 일하는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 노사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외 '월', '분기' 단위 등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 노사의 자율적 결정과 선택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다만 관리단위가 길어질 경우 특정시기 장시간 연속근로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연장 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의 강제 등 건강권 보호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소득 근로자는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게하고, 52시간제를 지금처럼 '주' 단위가 아닌 '월'이나 '연' 단위로 적용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냈다. 경영계 역시 연장 근로시간 관리를 '주' 단위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영계는 최근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연' 단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근로기준법은 아직 70년 전 방식"
하지만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이 원하는 '월', '연' 단위로 바꾸면 다시 장시간 근로의 나라가 될 것"이란 입장이다. 결국 민주당을 설득해야 제도화 할 수 있다.

연구회는 또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 및 다양한 휴가 사용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휴가 사용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시간으로 저축했다가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임금 보상이 아닌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연장근로 등을 휴가로 저축하는 경우 법정 가산수당 기준보다 높은 할증을 적용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연구회는 이밖에 근로일과 출·퇴근 시간 등에 대한 근로자의 자율적 선택을 확대하는 방안도 권고할 것으로 보인다. 유연근로제를 활용하는 경우 일·가정 균형, 불필요한 초과근로 감소, 근로시간 운영의 자율성 확대, 일에 대한 몰입도 향상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근로일, 출퇴근 시간 등 근로 시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활용도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산기간 확대, 대상 확대 등 다양한 방안과 그 효과 등에 대해 검토 중이다.

이외에도 근로시간 기록·관리 체계 강화를 고민중이다.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성 확대는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가 전제돼야한다. 이를 위해, 연장·야간·휴일근로의 경우 일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실근로시간이 정확하게 기록돼야한다. 공짜노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저출산 고령화, 소득 양극화, 낮은 고용률의 악순환 구조를 개선하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선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일하는 방법과 시간을 선택하도록 개편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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