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만 하면 3000만원…'그 전관'은 이미 도장을 팠을까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2.11.3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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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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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 디케.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약자에 강하지 않고 강자에 약하지 않은 형평성과 공정함'을, 칼은 '실행돼야 하는 정의와 엄격한 형벌'을 상징한다. /사진=게티이미지'정의의 여신' 디케.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약자에 강하지 않고 강자에 약하지 않은 형평성과 공정함'을, 칼은 '실행돼야 하는 정의와 엄격한 형벌'을 상징한다. /사진=게티이미지


법조계엔 도장값이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느낌으로 전화변론이라는 말도 있다. 모두 이른바 '전관예우'와 관련된 은어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사건의 서면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이 찍혀있지 않으면 재판연구관 선에서 상고가 기각된다는 속설이 도장값의 어원이다. 이런 도장값이 실제 변론이나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판결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통행료로 평균 3000만원, 때론 수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담당 검사에게 전화 한 통 넣을 수 있는, '약발' 좋은 검찰 출신 변호사의 수임료가 이에 못지 않다는 것도 법조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법원과 검찰은 지나친 오해이자 일부의 일탈이라고 펄쩍 뛰지만 서초동에서 보고 듣는 현실이 대체로 그렇다.



얼마 전 만난 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나와 막 개업했을 때 자격증만 변호사지 너무 힘들었다"며 "검사가 만나주질 않으니 의뢰인에게 얼굴을 못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변호사는 "전관이 아니면 법조인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컸다"며 "전관 문제는 예우가 아니라 비리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만이 아니다. 현직 검찰 수사관은 "사건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오는 전화에 수사를 접기 일쑤"라고 전했다.

어쩌면 '그들만의 리그'인 것 같은 전관 문제가 법조계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 이유는 삶의 가장 위태로운 벼랑 끝에 선 불특정 다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피해자는 고액의 전관 변호사를 수임할 형편이 안 되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이다.

반대로 말하면 돈만 많이 주면 판사, 검사와 친분이 있는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얼마든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전관예우의 또다른 부산물이다. '법 앞에 평등'이 무시되는, 법치의 붕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뻔하다. 법치의 중심에 선 이들이 오히려 법치를 위협하는 현실은 그래서 더 역설적이고 위태롭다.


물론 법원과 검찰에서 근무하고 변호사로 개업한 전관을 싸잡아 비난할 순 없다. 이들은 어떤 면에서 적어도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다. 전관이 스스로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는 지점도 여기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지탄받았던 박상옥 전 대법관이 검찰 퇴임 후 한때 변호사 개업 포기 서약을 해 달라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요청을 거부했던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대장동 특혜 의혹과 맞물려 구설수에 올랐던 권순일 전 대법관 역시 최근 변호사 등록을 두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너희의 의심은 편견일 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식으로 옳다.' 세간의 시선을 향한 이런 엘리트주의가 전관 문제를 포함한 법조 위기의 근원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10월 변협을 방문해 전관예우 근절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총장 시절 변협을 찾은 자리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되풀이되는 전관 문제를 두고 이젠 좀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법조인이라는 명예가 직업 선택의 자유, 어쩌면 그 바탕에 있을 물욕을 압도하길 개인에게 무작정 기대하는 식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천원짜리 변호사. 올 들어 잇따라 터진 법정 드라마의 홍수에서 TV 속 판타지를 위안 삼기도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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