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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이후 가장 한국적인 '원톱' 뮤지션은 이 가수뿐"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2.11.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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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정호 추모콘서트'에 나서는 김도향-채은옥 "살인미소에 구슬픈 한의 선율 깊이 전달"

올해 탄생 70주년을 맞은 '가장 한국적인 가수'로 평가받는 김정호. 구슬픈 한의 선율을 덤덤하지만 깊게 표현해 내는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유튜브 캡처올해 탄생 70주년을 맞은 '가장 한국적인 가수'로 평가받는 김정호. 구슬픈 한의 선율을 덤덤하지만 깊게 표현해 내는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유튜브 캡처




그가 자신의 생애 첫 라이브로 알려진 '운복희쇼'에서 '하얀 나비'를 부를 때, 우리는 크게 두 가지에 매료되거나 놀란다. 일반적인 마이크 착용법을 모르는지, 옆으로 직각으로 세워 힘들게(?) 부르는 어색한 모습이 첫 번째고 노래 첫 소절에 읊는 '음~'하는 구음(口音)이 시린 듯 아픈 듯, 감춘 듯 삭인 듯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실타래로 묶여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휘어잡는 장면이 나머지 하나다.

가수 윤복희(76)는 유튜브에 공개된 이 영상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구음을 잘했어요. 우리 창을 잘한 친구예요. 노래에 깊이가 있죠. 몸이 참 약해서 늘 걱정했죠. 그리운 친구. 잘 있지?"

윤복희에 따르면 이 공연은 1976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고 김정호(1952-1985)의 첫 라이브 무대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마이크 잡고 하는 게 힘들었대요. 참 순수한 청년이고 수줍음이 많은 애였어요.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왜 그냥 두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우리나라에서 가수를 뽑으라면 전 김정호예요."



개성과 가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윤복희조차도 '원톱'으로 꼽는 김정호는 10년 남짓 활동하다 33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 단명 뮤지션이다. 삶은 짧았지만, 작품은 강렬했다. 그의 또 다른 노래 '님'에서 그는 자신이 어떤 가수였는지 부지불식간 증명한다. 세상의 모든 한과 서러움, 애절의 밑바닥을 아주 느린 박자와 아주 긴 호흡으로 훑는 기량은 천재의 감각이 아니고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고 김정호의 선배인 김도향과 후배인 채은옥이 25일 열리는 '김정호 추모콘서트'에 함께 출연한다. 두 사람은 김정호와 각별한 인연으로 그의 음악세계와 삶에 대한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고 김정호의 선배인 김도향과 후배인 채은옥이 25일 열리는 '김정호 추모콘서트'에 함께 출연한다. 두 사람은 김정호와 각별한 인연으로 그의 음악세계와 삶에 대한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안타까운 뮤지션의 아까운 재능 때문이었을까. 그를 잊지 못하는 선후배들이 모여 '그'를 다시 부른다. 25일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이 무대는 '하얀나비, 김정호를 기억하다'는 제목의 헌정 콘서트다. 김도향, 채은옥, 이봉근, 배다해, 빈센트블루, 제이유나 등이 출연해 포크를 넘은 다양한 음악적 장르에 도전한다.

1974년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한 김정호는 유작앨범이 된 '님'(1983)까지 싱어송라이터로서 샘솟는 창작력과 가창력을 겸비하며 소위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사실상 음악적 사형선고를 받았고 급기야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활동한 기간에 곁에서 함께 한 두 사람을 만나 '김정호 스토리'를 들었다. 데뷔곡 '빗물'부터 신선한 충격을 안긴 '여자 김정호' 채은옥(62)과 3000개 이상의 광고음악을 만든 'CM송의 대부' 김도향(77)이 그 주인공.

채은옥은 데뷔 시절부터 떠올렸다. "'빗물'을 데뷔곡으로 내기 위해 '애플레코드'에 들어갔더니, 글쎄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가수들이 다 소속 가수로 모여있는 거예요. 어니언스(이수영, 임창제), 하남석, 홍민, 유익종…. 모두 형이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녔죠. 제가 데뷔하기 전 TBC '청평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제 창법이라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정호형이랑 업소도 같이 다니고 공연도 같이 하다보니, 그 음색과 창법이 주는 매력에 저도 모르게 빠져있더라고요. 그리고 어느새 그걸 따라하고 있고요. 그래서 '여자 김정호'라는 수식이 그때부터 붙었죠."

김정호는 고향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어니언스의 임창제와 친해지면서 우이동에 터전을 마련했다. 김도향의 기억에 김정호는 굉장히 수줍어해서 말을 잘 안 하던 친구였다.

'삼립호빵' '맛동산' '월드콘' 등 지금까지 3000개 이상의 국내 CM송을 만든 'CM송의 대부' 김도향. /사진=김고금평 기자'삼립호빵' '맛동산' '월드콘' 등 지금까지 3000개 이상의 국내 CM송을 만든 'CM송의 대부' 김도향. /사진=김고금평 기자
"노래할 때는 넋이 나갈 정도로 빠져있는데, 평소에는 그리 순할 수가 없어요. 제가 '투코리안스'할 때 우리 사무실에 라면 먹으러 자주 왔는데, 제가 술을 안 해서 낮에 주로 모였어요. 74년쯤인가. 같이 음악을 만들어보자고 한 적이 있었어요. 우이동 산 계곡에 방 하나 얻어서 노래를 만드는데, 스타일이 저랑 완전 반대더라고요. 정호는 달빛을 보면서 '너무 슬프지 않아요?'하면서 울어요. 그런데 저는 '달빛이 너무 아름답지 않니?'하면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고요. 정호는 그렇게 모든 대상을 슬프게 보고 거기에 또 푹 빠져있었죠. 돌이켜보니, 아마 곡을 쓸 무렵부터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해요. 노래 가사에도 '나그네' '님' 등 죽음을 달관하는 소재를 많이 썼으니까요."

대마초 파동으로 그들의 관계는 멀어지는가 싶었는데, 80년 이후 대마초가 풀리면서 끈질긴 인연은 계속됐다. 82년 즈음, 김정호는 김도향을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음반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폐결핵으로 몸도 좋지 않는데, 무슨 음반이냐고 했는데도 '그래도 해야한다'며 고집을 피워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죠. 제가 노래 코치를 하는데, '님'의 한 소절을 부르고 '헉헉'대고 또 한 소절하고 기절하듯 쓰러지길 반복했어요. 그렇게 하면서도 결국 음반을 완성하더라고요."

김정호의 음악적 재능은 모계에서 물려받았다. 모친은 명창 박숙자이고 외조부 박동실도 판소리 명창이다. 그런 유전으로 그의 가창에는 창의 구슬픔이 어딘가 모르게 배어있지만, 그것이 국악 가락이라고 정의할 만큼 또렷하지 않고, 살짝 포크에 걸쳐있으면서 깊은 음이 깔린 아주 묘한 조합으로 꿈틀거린다. 마치 백인의 록처럼 직선으로 꽃히지 않지만, 나름 날이 서 있고 그러면서도 깊은 울림이 서린 흑인의 창법처럼 말이다. 강약 조절도 예리해 힘을 주고 빼는 세기의 강도가 예술로 읽힐 만하다. 김도향은 이 모든 역량의 소유자를 '가장 한국적인 가수'로 정의했다.

데뷔곡 '빗물'로 혜성처럼 나타난 '여자 김정호' 채은옥. 그의 허스키한 음색과 깊고 굵은 창법은 자연스럽게 김정호의 그것을 따라한 결과물이다. /사진=김고금평 기자데뷔곡 '빗물'로 혜성처럼 나타난 '여자 김정호' 채은옥. 그의 허스키한 음색과 깊고 굵은 창법은 자연스럽게 김정호의 그것을 따라한 결과물이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BTS(방탄소년단)를 포함해 지금 세계적인 한국 그룹들은 인기가 많지만, 한국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김광석도 유재하도 외국의 음악을 우리화한 것일 뿐이죠.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다시 보게 됐어요. 김정호 노래가 진짜 한국적인 노래 같다는 평가를 버릴 수가 없어요. 당시 음악을 들었던 사람으로서 한국적인 정서가 깊게 들어간 음악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BTS 이후의 성공적인 한국 음악은 이런 음악이어야 그 가치가 살아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가수의 음악이 한국의 음악이다'라는 사실을 젊은이에게 알려주는 방법을 찾으려고 이런 추모 콘서트도 기획하는 겁니다."

채은옥도 "지금 들어도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가사와 그런 멜로디, 그런 표현력을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을까가 궁금하다"며 "대한민국에 이런 가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5일 무대에서 채은옥은 '인생'이라는 노래로 김정호를 소환한다. 김도향은 MC를 맡고 피날레로 '하얀나비'를 지휘하면서 청중과 함께 호흡할 예정이다.

두 사람이 함께 기억하는 김정호의 유일한 '밝은' 모습은 존재했을까. "말이 별로 없었지만, 항상 웃었죠. 그 웃는 모습이 굉장히 해맑고 심플해서 '백만불짜리 웃음'이라고 했어요. 눈동자가 살아있어서 미소를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채은옥) "눈이 커서 노루를 보는 듯했어요.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김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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