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까다로운 '현행범 체포' 요건…패싸움 벌어져도 놓아주는 경찰 속사정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2.10.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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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부당성' 인정되면 증거 효력 상실...실제 '위법한 체포'로 무죄 선고받기도

지난 2일 밤 10시36분쯤 인천시 서구의 한 주점에서 손님들 간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업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패싸움을 벌인 40대 남성은 경찰이 돌아간 뒤 호프집에 돌아와 화분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렸다. 비난 여론이 경찰을 향했다. 남성이 패싸움을 했을 때 '현행범 체포'했다면 추가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거란 것이다.

하지만 경찰 내부망에는 '현장 경찰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현행범 체포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것이다. 또 체포를 했다가 재판 과정에 '부당한 체포'였다는 점이 인정되면 피의자 아예 무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어서 경찰로선 현행범 체포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9년 술집 난동범 현행범 체포했을 때...2심 "부당한 체포...무죄"
/사진=뉴시스/사진=뉴시스


2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의 호프집 사장은 패싸움이 벌어지자 처음에 '취한 남자 손님 한명이 다른 손님을 때린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코드0~4로 구분된 신고 체계 중 두번째로 높은 코드1으로 출동했다. 순찰차 두대, 경찰관 네명이 밤 10시43분에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호프집에 들어갔다. 나중에 순찰차 두대가 추가로 호프집에 출동했다.

싸움에 연루된 5명 중 A씨는 경찰이 도착하고도 한동안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5명을 호프집 밖으로 내보내려 했는데 A씨는 출구에서 소주병을 들고 B씨 일행에 돌진하려는 몸짓을 취했다. 하지만 경찰 제지에 막혀 소주병을 던지거나 B씨 일행에 덤벼들지는 못 했다.



이후 일행은 진정을 되찾았다. 서로 떨어져 경찰관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후 B씨 일행은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경찰은 A씨 일행에게 '지구대로 가서 사건 경위를 진술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A씨 일행은 거절했다. 현행법상 경찰의 지구대 임의동행 요청은 강제력이 없어서 거절할 수 있다.

경찰은 A씨 일행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1시간쯤 지난 이튿날 0시50분 호프집에 돌아왔다. 이어 계단에 있는 화분을 입구를 향해 던져 도어락을 파손시켰다. 경찰에 신고한 호프집 사장을 향한 보복심리로 풀이된다.

이후 경찰은 A씨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늦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은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거나 저지른 직후의 피의자를 말한다. 경찰은 현행범에게 도망,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등 '당장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급박한 사정'이 있어야 피의자를 현행범 체포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호프집)상황이 수사 규칙상 현행범 체포 요건에 맞지 않았다"며 "A씨가 소주병을 집어 들기는 했지만 던지는 등 추가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았고 이후에는 경찰 질문에 잘 답해서 상황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만일 경찰이 '위법한 체포'를 하면 체포 후 수집한 증거는 불법 증거로 효력을 잃는다. 피의자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 춘천지방법원은 2020년 6월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씨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출동한 경찰관에게 '음주운전을 했다'고 진술해 현행범으로 체포됐었다.

하지만 법원은 △C씨 음주운전과 체포 사이 시간 차가 있어 C씨를 현행범으로 보기 어려운 점 △도망,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피고인을 현행범 체포한 것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위법하고, 위법한 상태에서 이뤄진 음주 측정 요구도 위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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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현행범 체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호프집 사건 후 경찰 내부망에는 "어느 때부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현행범 체포하지 않고 귀가 조처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돼 가고 있다"며 "도주, 증거인멸 우려는 없지만 범죄 예방 필요성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보호조치 명목으로 지구대 동행이라도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글을 썼다.

현장 경찰관이 도주, 증거인멸 우려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내부망 글에는 "현장 경찰관이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법원에서 체포 필요성을 협소하게 봐 피의자를 처벌하지 못할까 걱정된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A씨가 소주병을 들었을 때 공동폭행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법원에서 현행범 체포 요건을 굉장히 좁게 판단한다. 현재로선 상황이 요건에 맞는지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 우수 인력을 일선 지구대·파출소에 보내거나 교육을 늘리는 등 수사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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