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좀 쉬웠으면..." 소비자가 원하니 기업들이 나섰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2.09.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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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오염의 종결자 'K-순환경제' (5회): 재활용상식④

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선 매일 50만톤의 쓰레기가 쏟아진다. 국민 한 명이 1년 간 버리는 페트병만 100개에 달한다. 이런 걸 새로 만들 때마다 굴뚝은 탄소를 뿜어낸다. 폐기물 재활용 없이 '탄소중립'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오염 없는 세상, 저탄소의 미래를 향한 'K-순환경제'의 길을 찾아본다.

(왼쪽부터)SK지오센트릭이 개발·생산한 단일재질 포장재가 적용된 애경산업 '스파크' 제품, 실리콘파우치가 적용된 이너보틀 용기/사진=각사(왼쪽부터)SK지오센트릭이 개발·생산한 단일재질 포장재가 적용된 애경산업 '스파크' 제품, 실리콘파우치가 적용된 이너보틀 용기/사진=각사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6%가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과정에서 '라벨 제거'가 가장 불편하다고 답했다. '절취선은 라벨 분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벨이 잘 안 떨어져 그대로 플라스틱 수거함에 버린다'는 답변들이 나왔다. 분리수거 방법을 세세히 알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그 방법을 알아도 방식이 상당히 까다로워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뒷받침했다.

이같은 고충을 해결, 폐플라스틱량을 좀 더 줄이기 위한 화학업계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수축라벨'을 개발해 페트(PET)에 부착된 라벨이 쉽게 분리되도록 했다. 재질 강도가 낮아 절취선 분리가 쉽도록 했고 병에 라벨이 붙은 채 폐기돼도 폐페트병 분쇄 후 세척과정에서 페트병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라벨은 물 위로 뜨도록 만든 것이다. 현재 상용화를 위해 테스트 중이다.



아예 페트와 라벨을 같은 재질로 만들어 분리 없이 버려도 되도록 한 기업도 있다. SKC는 '에코라벨'을 개발해 2016년 일찌감치 미국 플라스틱재활용업체협회(APR)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았다. 라벨상 잉크는 재활용 과정에서 씻기도록 만들어져 친환경적이다.

복합재질로 만들어져 분리수거,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것은 페트병 뿐만이 아니다. 뚜껑과 몸체 재질이 다른 세제 용기, 복합재질로 이뤄진 포장재 등은 모두 재활용률을 낮추는 고충들이다.



SK지오센트릭은 애경의 대표 세제 '스파크'에 단일 포장재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를 공급한다. 그동안 포장재는 방수 기능, 인쇄 용이성, 내구성 등을 감안해 복합필름들로 이뤄졌지만 이같은 재질은 사용후 재활용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단일 소재를 적용하되 기존 제품 성능을 유지하는 게 연구개발 관건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포장재, 용기 개발에 비용이 더 들겠지만 친환경성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국제 분위기도 달라지면서 식품업체, 생활용품 업체 등에서 단일 포장재에 대한 문의도 잇따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핸드워시 '아이! 깨끗해'를 만드는 라이온코리아는 SK지오센트릭과 손잡고 재활용 소재를 적용해 포장용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PET 용기를 대체하는 친환경 소재 개발, 제품 펌프에 금속 스프링을 뺀 '메탈 프리' 소재 개발 등을 진행중이다.

플라스틱 내 잔여물 제거를 쉽게 해주는 기업도 있다. LG화학은 스타트업 '이너보틀'과 손잡고 재활용이 용이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너보틀은 투명한 플라스틱 병 안에 풍선 모양 '실리콘파우치'를 넣은 화장품 용기를 만들어 외부 플라스틱 용기를 버릴 때 사용자가 별도로 세척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다 쓴 용기는 다시 CJ대한통운을 통해 회수돼 LG화학으로 돌아와 원료로 재탄생된다.


그런가 하면 수 백년 썪지 않고 해양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대신 일정 조건하에서 썪는 플라스틱(생분해 플라스틱)을 개발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플라스틱 사용의 일종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기업도 있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특정 분해환경에서 일정 기간동안 90% 이상 생분해 되도록 설계된 플라스틱이다.

LG화학은 티케이케미칼과 손잡고 자연에서 산소와 열, 빛과 효소 반응으로 빠르게 분해되는 석유 기반 합성 플라스틱 PBAT(리부틸렌 아디페이트 코 테레프탈레이트)를 개발중이다. 농업용 비닐과 일회용 봉투 등 다양한 소재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LG화학은 대산공장에 연간 생산량 5만톤 규모 PBAT 공장을 착공, 2024년부터 본격 양산에 나선다.

LG화학은 또 최근 미국 기업 ADM(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와 손잡고 미국 현지에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PLA(폴리젖산) 공장도 짓는다고 밝혔다. PLA는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젖산으로 인체에 무해하고 식품용기, 빨대, 생수병, 식기류, 티백 등에 쓰인다. 일정 조건에서 미생물에 의해 수개월 내 자연분해되며 생산과정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기존 플라스틱의 4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같은 노력에 대해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 친환경 제품으로 분류됐던 1회용품 PLA 제품이 올해부터 환경표지 인증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화학업계는 이를 다시 포함시켜야 한단 목소리가 높다. 환경부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일반 플라스틱과 물성이 달라 재활용 어려움이 있단 점, 특정 조건에서 분해되므로 별도 수거 관리가 필요하단 점, 우리나라는 단순 매립이 아닌 순환자원 재활용을 역점으로 정책 추진중이란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국내 화학업계는 생분해 플라스틱도 자원순환 중요축으로 여겨 투자를 확대중이었지만 중소기업 중에는 제도 변화로 경영이 어려워지거나 물건을 해외에서만 팔 수 밖에 없는 제약이 생겼다"며 "해외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이 커지는 분위기, 국내도 별도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등을 건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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