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로 돌아간 검정치마식 예술론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2.09.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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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검정치마


비범한 존재들의 등장이 흔히 그렇듯 조휴일(=검정치마)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 어린 시절 스매싱 펌킨스의 'Bullet With Butterfly Wings' 뮤직비디오를 보고 처음 기타를 쳐보고 싶다 생각한 그는 랜시드(Rancid)와 빌트 투 스필(Built To Spill), 위저와 윌코, 나다 서프(Nada Surf)에게서 배운대로 거친 록에 달콤한 팝을 모범적으로 섞어내며 한국 대중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그 팝록 스타일은 "나는 개 나이로 3살 반"이나 "정을 주고 멍을 사온 나", "뼛속까지 다 젖었어", "나는 니가 건너올 수 없는 섬" 같은 참신한 가사와 뒤엉겨 끝내 검정치마의 예술적 인장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의 검정치마는 90년대 중반의 홍상수와 본질상 같은 것이었다. 강렬했고 전복적이었다.

찢어질 듯 한여름 매미 소리와 동화 풍 내레이션을 첨부한 첫 곡 'Flying Bobs'의 설정이 고백하듯 검정치마의 세 번째 앨범 마지막 3부는 그가 10대의 끝자락을 보낸 "99년도로 보내는 러브 레터"다. 1999년은 조휴일이 시애틀 그런지(Grunge)와 스카, 뉴메탈을 즐겨 들으며 평생을 모히칸 머리의 펑크 로커로 살고 싶어한 17살 때다. 신작에 실린 곡의 가사를 인용하자면 당시는 목줄 없이, 길을 잃은 들개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거라 외쳤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그 시절 "담담하게 녹슨 푸르른 순결함"을 돌아보는 자리로서 마련됐다. 조휴일은 당시 록 밴드를 하고 있었고, 곡이라기 보단 소음(Noise)에 가까운 무엇을 만들고 있었다. 신보 수록곡들 중 'Jeff And Alana'와 'John Fry', 'Electra'는 그때 어느 인물들과 순간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조휴일은 아직 미숙했다. 그가 검정치마라는 이름으로 '201'이라는 앨범을 들고 대한민국 인디 록의 문을 부수기까진 아직 9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실제 조휴일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작곡한 노래도 대학생이 된 뒤에야 완성한 'Fling; Fig From France'였다. 이 곡은 2010년도에 발매한 '201' 스페셜 에디션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됐다.



검정치마의 매력이자 유산은 남들이 뭐라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인 결과물로 옮겨낸 일이다.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듯한 그의 콘텐츠는 그래서 낯설었고 딱 그만큼 낯익게 되는 어떤 것이었다. 앨범 'Teen Troubles'도 그 연장선으로, 다만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음악을 정리한(무려 18곡으로!) 모음집 같은 느낌을 주는 것에서 새 앨범은 차별된다. 한마디로 신작에선 파워팝과 드림팝, 신스팝과 로큰롤, 포크와 슈게이징을 모두 즐길 수 있다. 구체적으론 'Antifreeze'와 '이별노래', 'Lester Burnham'과 'Everything'을 모두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타와 신시사이저의 신경전이 날카로운 가운데 저 음악 속 살가운 멜로딕 보컬들은 속도와 분위기를 달리 하며 때론 터벅터벅 때론 들떠하며 제 갈 길을 간다.

노랫말 역시 그답다. 상상과 회상에 기댄, 직역은 가능하되 의역은 힘든 말의 실타래가 군데군데 굴러다닌다. 상황적 묘사는 구체적이지만 지시적 대상은 모호한 가사. 해석을 거부하면서 해석을 종용하는 검정치마 노랫말의 저러한 이기적 보편성은 1집처럼 바싹 말렸거나('Friends In Bed') 3집의 1부였던 'Team Baby' 때 마냥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보컬 톤('Garden State Dreamers')의 공존 사이에서 대중없이 뒤척인다. 때로 아이인 듯 어른 같은 조휴일만의 그 독보적 음색은 '위험하고 중성적이면서 멋있는 펑크 밴드 이름'을 바라고 지은 프로젝트 이름(검정치마)의 유래와도 비슷하다.



사실 검정치마는 조휴일의 원맨팀에 가깝기에 이번에도 거의 모든 음악적 통제는 조휴일의 몫이었다. 가령 'Sunday Girl'과 'Our Own Summer'가 좋은 예다. 하지만 검정치마는 또한 엄연한 '밴드'여서 파트별 멤버 역시 존재하는데, 이는 2집 정도를 빼면 로커 조휴일이 늘 지향해온 편성이기도 했다. 신작에선 지난 미니 앨범에 이어 문샤이너스 출신 베이시스트 최창우와 갤럭시 익스프레스 출신 드러머 김희권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고, 'Team Baby'에서 함께 한 드러머 신동훈과 퍼커셔니스트 김진환, 색소포니스트 김명기의 이름도 보인다. 컨트리를 모던의 성채로 감싼 'Powder Blue'에서 인상적인 클라비넷&오르간 연주를 들려준 고경천 역시 조휴일과의 오랜 인연이 헛되지 않았음을 음악으로 증명하고 있다.

조휴일은 과거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란 감정을 확대해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그만 상처라도 그걸 헤집고 덧나게 만들어 남들에게 보여주고, 아주 작은 행복을 대할 때도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춤추"며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을 대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검정치마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음악보다 늘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하려 한다. 비록 파트별로 선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지난 5년간 조휴일은 정규 앨범 3장 분량으로 자신의 예술론과 창작론을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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