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기업가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머니투데이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2022.09.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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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얼마전 GRaND-K 창업경진대회가 있었다. 홍릉강소특구가 주최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경희대, 고려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창업경진대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개 넘는 팀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창업자에게 허락된 5분 발표, 5분 질의응답은 그들의 열정과 포부를 전달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치열하고도 잔인한 10분이었다.

GRaND-K는 우리 고유의 창업교육 및 지원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의기투합으로 시작했다. 창업과 비즈니스 현장을 중심으로 기획했다. 주요 교육과 평가를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 전문가가 맡는다. 초기단계에서 짧은 강의실 수업 기간이 끝나면 멘토로 지정받은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에서 개별 창업교육을 받는다. 창업 예비팀과 초기 창업팀의 아이템, 현황에 최적화된 사업계획을 준비한다. 천편일률적인 발표를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참여한 팀들의 공통된 특징을 3D로 표현할 수 있었다. 첫 번째 D는 난제(Difficulty) 창업이다. 암, 치매, 자폐증과 같은 인류의 숙원에 도전했다. 다수의 창업자가 교수, 연구원, 의사로서 10년, 20년 난제와 씨름해온 전문가였다. 겸직제도, 기술투자 등 대학과 연구소가 창업을 권장하는 제도를 도입한 결과다. 두 번째 D는 첨단기술(Deep Tech)이다. 창업에 적용된 기술이 세계 최초거나 최고라고 자부했다. 재기발랄한 대학생의 아이디어 창업도 중요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창업이 생존율과 파급효과에서 유리한 것 또한 사실이다.

마지막 D는 온 힘을 다하는(Devotion) 창업이다. 일부 창업아이템은 첨단기술로 볼 수 없었지만 큰 박수를 받았다. 수십 번 재설계하는 노력으로 완성도를 높여 잠재가치를 끌어냈다. 또 미래고객을 수백 번 만나 니즈를 반영해 시장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가장 높은 진입장벽을 보유한 창업일 수 있다. 이런 창업기업을 발굴해 맘껏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제공해야 하는 곳이 혁신클러스터다.



1980년대 세운상가는 창업의 메카였다. 창업이 넘쳐나고 구하지 못할 제품이 없었다. 세상에 없는 제품마저 솜씨 좋은 기술자의 손에서 뚝딱 만들어졌다. 2000년대 혁신의 중심은 테헤란로였다. 스타 창업기업을 연이어 배출했다. 2010년 이후 모범사례는 중국 중관춘이다. 바이두, 레노버와 같은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을 길러내 중국 경제의 한 축을 차지했다. 미국은 불변의 창업과 혁신의 아이콘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급성장한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가 있다.

세운상가와 테헤란로의 분주함을 재현하고 중관춘과 보스턴의 역동성을 국내로 가져오려는 시도가 있었다. 원스톱 창업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관춘의 이노웨이(Innoway)와 보스턴의 랩센트럴(LabCentral)을 벤치마킹했다. 유사한 창업지원센터도 여럿 세웠다. 안타깝게도 큰 성공을 거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시장이다. 세운상가와 테헤란로는 당시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 경제의 팽창과 맞닿아 있었다. 중관춘의 힘은 세계의 공장 '메이드인 차이나'와 14억 내수시장에서 나온다. 보스턴의 경쟁력 또한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바이오시장에 직접 연결된 파이프라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재와 기술도 시장이 있어야 힘을 발휘한다.


GRaND-K의 창업기업은 홍릉강소특구를 모판 삼아 싹을 틔울 것이다. 그리고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지를 찾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혁신클러스터가 준비해야 할 것은 축소사회로 접어든 한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연결하는 웜홀을 마련하는 일이다.

"생명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명대사다. 창업기업도 생명이다.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면 갓 알에서 깨어난 우리 공룡들도 번영의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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