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론스타 판결, 선방 속 남는 아쉬움

머니투데이 박재범 증권부장 2022.09.0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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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졋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격려가 쏟아진다. 선방이라며 자찬한다.10년간 이어진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판결을 두고서다.

판결 직후 내놓은 정부는 '선방론'을 내세운다. 이른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가 먹힌다. 앵커링 효과(정박효과)는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그 이상 움직이지 못하듯 처음 제시된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는 행태다.



정부가 던진 닻은 소송가 6조1000억원(46억8000만달러)다. 론스타는 2800억원(2억1650만달러), 우리 정부는 5조8000억원(44억6000만달러)에서 이겼다며 금액을 비교한다. 정부는 청구 금액 대비 95.4% 승소, 4.6% 패소했다며 비율 계산까지 해준다.

숫자로 보면 선방 수준을 넘는다. 사실상 '압도적 승리'로 읽힌다. 조 단위로 물어줄 수 있던 사안을 3000억원에 막았다니. 잘 해도 이렇게 잘 할 수는 없다.



쟁점 대결에서도 완승이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HSBC 매각 승인 지연 △하나금융 매각 승인·매각가 산정 개입 △론스타 과세 정당 여부 등 3개 축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에서 론스타 주장이 기각됐고 두 번째 사안에서 50% 책임이 인정됐다고 정부는 강조한다. 내용적으로도 80% 가량 승리했다는 자찬이다.

# 속을 들여다보자. HSBC건과 과세건의 경우 판단 대상이 아니어서 제외됐다. 소송가 6조1000억원의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 문제는 하나금융 매각건이다.

정부는 50% 책임, 일부 인정 등으로 포장하지만 악마는 여기 숨어있다. 판결의 핵심인 매각 지연의 책임을 금융당국에 물었다. 절반이 아닌 100%다. "승인 지연 행위는 투자보장협정상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이라고 적시했다.


정부와 론스타의 반반 책임을 지적한 항목은 가격 하락 부분이다. 지연에 따른 가격 하락 50%, 주가 조작 판결에 따른 가격 하락 50%다.

정리하면 주가조작 수사로 매각 심사 지연을 유도했고 심사 지연으로 가격을 낮췄다는 얘기다.

그나마 주가 조작 판결 덕분에 배상 금액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홍보하지만 아이러니하다. 주가조작 수사가 없었다면 매각이 지연될 수도, 이 소송이 존재할 수도 없었다는 점이다.

# 보기 싫다고 판결에 담긴 무섭고, 묵직한 메시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각종 형사 재판이 진행중이서 심사 연기는 정당했다"는 정부의 합리적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가조작 판결로 금융당국의 심사가 지연됐고 이는 론스타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정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소수 의견을 보도자료에 담으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말 그대로 '소수' 의견일 뿐이다. 패배했다는 자인이다. 다수 의견을 만드는 데 실패해놓고 소수 의견에 들어갔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안타깝다.

주가 조작 수사를 하더라도 매각 심사 등은 진행했어야 한다는, 법과 주권마저 부정한 판결이 나온 것을 외면하면 안 된다.

금액, 숫자, 승소율이 중요할까. 공포는 대한민국에 대한 글로벌 인식이다. 판결의 근저엔 매각 지연을 위해 한국 정부가 수사와 소송 등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을 보는 시각이 이렇다. 관치(官治)가 일반화돼 있다는, 중국처럼 외국인이 투자하면 자금 회수가 어려운 나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느낌이나 생각이 아니라 판결로 적시했다는 것은 너무 무섭다.

2800억원의 돈을 지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짓밟힌 주권, 관치의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낼 수 있을까. 자찬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쉬운 점을 인정하고 와신상담할 때다.
[광화문]론스타 판결, 선방 속 남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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