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쌀의 진화" 이젠 밥상 벗어나 산업현장 '정조준'

머니투데이 전주(전북)=정혁수 기자 2022.08.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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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 농업연구사가 지난 1일 연구실에서 분질미 내병성 강화를 위한 유용유전자 PCR검사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정혁수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 농업연구사가 지난 1일 연구실에서 분질미 내병성 강화를 위한 유용유전자 PCR검사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정혁수


"글로벌 현안과제인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식량자급률을 제고하기 위해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쌀 과잉 공급문제 해결과 쌀 가공산업 육성을 위해 가공전용품종인 분질미(粉質米·쌀가루 가공 전용쌀)를 활용한 쌀가공산업 활성화에 본격 나서겠다"(정황근 농식품부 장관, 지난 6월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 발표中)

윤석열정부의 농식품분야 핵심 국정과제중 하나는 '식량주권 강화'다. 정부는 그동안 매년 20만톤을 웃도는 쌀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쌀가공산업 지원방안을 마련해 왔다. 이에 힘입어 국내 쌀가공산업 규모는10년새 4조1000억원(2010년)에서 7조3000억원(2020년)으로 확대됐지만, 쌀 가공적합성 한계와 비싼 가공비용 등의 문제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6월 발표된 정부 대책이 '식량주권 강화'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실행방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질미' 품종개발은 정황근 장관이 2017년 농촌진흥청장으로 재직 당시 직접 연구를 독려한 프로젝트다. 연구를 수행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남일벼 품종에서 돌연변이 유전자(Flo7)을 탐색해 '수원542호' '가루미' '바로미2'와 같은 분질미 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정혁수 /사진=정혁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 농업연구사가  지난 1일 분질미 품종을 이용한 다양한 쌀가공식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혁수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 농업연구사가 지난 1일 분질미 품종을 이용한 다양한 쌀가공식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혁수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29) 농업연구사는 분질미 품종개발에 수 년째 매달려 온 연구자다. 기존 맵쌀과 달리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아 사용할 수 있는 '바로미2' 등과 같은 환경친화적 쌀가루 전용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분질미는 기존 쌀과 달리 주변 소규모 업체의 제분기로도 쉽게 빻을 수 있고, 밀 제분 설비에 현미를 넣어 대량 생산도 가능해 쌀가루 생산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하 연구사는 "쌀을 빵이나 떡의 원료로 쓰려면 먼저 가루로 만들어야 하는 데, 물성(物性)이 단단한 맵쌀은 물에 불린 후 빻는 '습식제분'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 가루생산 비용이 밀보다 2배 이상 높았다"며 "이 떄문에 산업현장에서는 상품 개발에 필요한 쌀가루를 보다 편하고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건식제분 전용 벼 품종 개발을 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식품산업체에서 원재료로 구매한 쌀은 한 해 58만6000톤(2017년 기준)에 달했지만 이중 쌀가루는 3만3000톤(5.6%)에 그칠 정도로 '습식제분'은 쌀가루 산업화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립식량과학원이 개발한 분질미 품종은 국내 모든 형태의 제분기로 현미 및 백미 즉석 제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밀가루 생산설비를 그대로 사용해도 쌀가루 생산이 가능하다. 또 건식제분만으로 손상전분 함량이 낮은 고운 쌀가루를 생산할 수 있어 건조·살균·오폐수 정화 등 습식제분의 고비용 요인을 모두 극복해 냈다. 특히 분질미 품종은 병에 강하고 생육기간이 짧아 다른 작물과 돌려짓기도 가능하다.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 농업연구사가 지난 1일 전북 전주 식량원내 분질미 재배 포장에서 벼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정혁수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하수경 농업연구사가 지난 1일 전북 전주 식량원내 분질미 재배 포장에서 벼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정혁수
"국산 쌀의 진화" 이젠 밥상 벗어나 산업현장 '정조준'
하 연구사는 "벼 농사 중심인 우리나라의 경우, 쌀은 재배면적 감소보다 소비가 더 감소하는 속도가 빨라 공급 과잉이지만, 식량중 쌀 다음으로 소비 비중이 높은 밀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삭량안보 측면에서도 취약한 측면이 있다"며 "분질미는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벼 품종이어서 쌀가루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제품을 대량으로 제조·유통시킬 수 있다"고 했다.

농식품부·농촌진흥청은 이같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2027년까지 분질미 재배면적을 4만2000ha로 확대, 수입 밀가루 대체를 위한 분질미 생산을 20만톤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바로미2' 등과 같이 생산성과 재배 안정성이 향상된 분질미 품종을 개발해 떡·빵·과자 제조에 활용함으로써 쌀가루 소비를 한층 더 확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농진청은 이를 위해 올해 100ha의 생산단지를 선정하고 현장 기술지원단을 꾸려 원료곡과 다음 연도에 종자가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기술지원을 본격화 한다. 이와 함께 분질미 보급면적 확대를 위해 '바로미2호' 기본식물 종자의 확대 생산에 힘쓰기로 했다. 아울러 수량 및 재배 안정성 개선을 위한 육묘와 표준재배법, 밀과 '바로미2' 이모작 재배에 적합한 이어짓기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윤종철 국립식량과학원장은 "매년 수입하는 밀이 200만톤이 넘고, 동시에 남아도는 쌀은 해마다 30만톤 가까이 된다"며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통해 국산 쌀의 수입 밀 대체(전체 10%)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고품질 분질미 품종개발에 매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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