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학대 제보가 들어와 구조한 강아지. 견주는 1살도 안 된 걸로 추정되는, 이 강아지의 앞발을 '비닐봉지' 쥐듯이 손에 쥐고 걸었다. 8일, 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와 캣치독팀에 의해 구조된 뒤 평온을 찾은 강아지의 모습./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공
여기서 학대당한단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견주는, 자그마한 강아지의 한쪽 앞발을 비닐봉지처럼 손에 쥔 채 동네를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본 설채현 수의사는 "강아지 관절이 걱정된다"고 했다. 게다가 제보자가 찍은 사진 속 강아지는 얼굴·털 상태도 안 좋아 보였다. '애착 인형'처럼 늘 그렇게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부산 아파트 단지 주민이 찍은 '강아지 학대 제보 사진'. 견주가 작은 강아지의 앞발 하나를 손에 쥔 채 걸어가고 있다./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공
그리고, 다시 부산에 간 거였다. 강아지를 아직 구하지 못했기에. 쉽진 않을 거란 걸, 취재 현장에 갔었던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학사모 활동가들이 구조하려 하자, 견주는 "내 인형이야"라고 외쳤단다. 마침내, 어렵게 구조해 품에 안았다./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공
그런데 견주가 사는 아파트 앞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강아지를 학대한다는, 그 견주였다. 그날도 강아지를 안고 태연히 앉아 있었다. '지금 놓치면 언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조심스레 행동해야 했다.
우선 정 팀장이 지자체 당직실에 전화해, 동물보호법 제14조에 따른 '긴급 격리조치' 권한을 부여받았다. 학대 동물은 재발 방지를 위해 시군구청장이 격리할 수 있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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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 현진 학사모 활동가가 견주에게 다가갔다. 의심하지 않게 하려 "OOO동이 어디에 있어요?"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견주가 옷으로 강아지를 황급히 감싸며 감췄다. 그러더니 활동가에게 이렇게 소리쳤단다.
"내 인형이야!"
견주가 꽉 잡은 강아지…손가락을 하나씩 풀어 구했다
부산의 한 24시 동물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있는 강아지./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공
차 대표가 합세해 강아지를 붙잡은 견주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냈다. 그렇게, 견주가 집착하던 강아지를 어렵사리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차 대표는 "막상 자기 몸에서 떨어지니 (견주가) 너무 태연했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견주를 경찰에 신고했다. 견주 역시 그들을 경찰에 신고했단다.
경찰관이 출동해, 차 대표와 현진 활동가, 정 팀장이 '긴급 격리 권한'을 받은 걸 지자체에 확인했다. 동물 학대 고발이 견주에게 들어간 것도 함께 확인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강아지를 데리고 가시면 된다"고 활동가들에게 말했다.
그 길로 강아지를 24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종합검진을 마쳤다. 병원에선 1살도 안 된 걸로 추정했다. 태어난지 1년도 안 된, 고작 2.5킬로짜리 자그마한 강아지가 '유선 종양'이 있었다. 통상 중성화하지 않은 7~8세 암컷에게 발생하는 거였다. 또 왼쪽 뒷다리는 슬개골 탈구 3기, 오른쪽 뒷다리는 슬개골 탈구 4기(가장 심한 단계)가 나왔다. 차 대표는 "다리는 바로 수술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두 번째' 학대견 구조가 끝났다
견주가 처음 키운 뒤 48도 넘는 차 안에 방치한 강아지(왼쪽 사진)와 또 다시 데려와 키운 강아지(오른쪽)./사진=동물권단체 케어, 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공
그때 구조 현장에 있었던 차 대표가 견주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줘버려. (강아지) 하나 또 사줄게"라고.
그리고 두 번째 학대견이 또 생긴 거였다. 그러니 다시 강아지를 구했으나 과제가 남았다. 견주가 강아지를 또 데려와 재차 학대하는 걸 막는 거다.
차 대표는 관할 지자체인 해운대구청에 "이렇게 끝나선 안 되고, 견주를 근본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반복되는 학대를 막기 위해선 견주를 바꿔야한단 거였다. 해운대구청 역시 이 뜻에 공감해, 견주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단다.
근본적으론 학대했던 이가, 강아지를 못 키우는 걸 막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걸 막을 시스템이 없다. 차 대표는 "처음에 강아지를 키우려 할 때 그 사람이 학대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번 부산 학대 사례 역시 그랬다. 그러니 입양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든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가 필요하단 얘기였다.
학대자 소유 막는 법안, 단 한 번도 통과되지 못해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러나 그마저도 국회에서 단 한 차례도 통과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한 의원이 동물학대자 소유권을 박탈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내었으나, 상임위원회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막혔다. 검토보고서엔 '동물에 대한 소유권 상실, 제한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재산권 제한에 해당할 소지가 없는지 사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학대의 범위와 수위를 폭넓게 규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학대 범위 및 처벌 규정./사진=미국 몽고메리주 홈페이지
미국 뉴저지주에선 혹한과 혹서에 동물을 바깥에 두는 것도 학대로 보고, 벌금을 물리고 있다. 온도 규정까지 명확하게 다 정해두었다./사진=BBC뉴스
또 김 교수는 "동물학대자가 실제 키우지 않는지, 정기적으로 가서 확인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동물학대 처벌에선 '소유금지' 뿐 아니라 반려동물과 아동대상 직종에 '취업 제한'을 하고, 성범죄자처럼 '신상공개'도 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동물학대자에 대한 사회봉사, 치료(상담) 명령도 가능하다고 했다.
부산에서 학대 구조한 뒤 평온하게 잠든 강아지./사진=학사모(학대견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 인스타그램@hac_sa_mo)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