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죽인다" 발 묶인 마트…"우린 24시간" 웃고있는 편의점

머니투데이 김은령 기자, 임찬영 기자, 이재은 기자 2022.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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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바뀐 유통판, 안 바뀐 규제(上)

편집자주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형마트가 주2회 휴무, 10~24시 영업시간 규제를 받는 동안 e커머스와 식자재마트, 편의점 등이 파이를 챙겼다. 규제에 따른 반사이익은 전통시장의 몫이 아니었다. 규제가 바꾼 유통산업의 지형도는 규제완화가 이뤄지면 다시 한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마트 안 열면 온라인으로 시키지 뭐"…시장은 여전히 안 간다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정기휴무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2022.8.1/뉴스1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정기휴무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2022.8.1/뉴스1


정부가 규제심판회의 첫 안건으로 '대형마트 영업제한'을 선정하면서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 논의가 시작됐다. 이는 전통시장을 성장시키고 지역 상인을 보호한다는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소비자 편익을 저해하고 오히려 시장 왜곡을 초래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에서 57만명의 선택을 받아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2012년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유통산업발전법에 반영됐다. 매월 2회 의무휴업,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대부분의 지역의 대형마트와 대기업 계열 SSM(기업형슈퍼마켓)은 매월 두번째, 네번째 일요일은 문을 닫았고 밤 12시 이후에는 어떤 영업활동도 할 수 없어 온라인 주문을 받아 배송을 하지도 못했다. 전통상업보존구역에는 출점이 어렵고 출점 과정에서도 상권영향평가 등을 받아야 하는 등 제한을 받았다.



이런 규제에 발이 묶인 대형마트는 지난 10년간 매장 수가 급감했고 매출이 정체됐다. 규제가 도입된 2012년 383개였던 대형마트 점포 수는 2017년 423개까지 늘었다가 지난해 408개로 감소했다. 매출액은 2017년 33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34조6000억원으로 제자리 걸음했다.

보호하려던 전통시장이 성장한 것도 아니다. 2010년 전국 1517개였던 전통시장은 2020년 1401개로 쪼그라 들었다. 대형마트가 폐점한 지역 상권의 소매점 등은 매출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만 나왔다. 대형마트 규제의 수혜는 전통시장보다는 온라인 쇼핑 채널과 식자재마트의 차지였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17년 94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187조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영업규제를 받지 않는 식자재마트도 마찬가지다. 국내 빅3 식자재마트인 푸디스트, 장보고식자재마트 세계로마트 등은 최근 3년간 매출액이 각각 176%, 74%, 50%씩 늘었다. 소비자들이 대형마트가 문 닫는 일요일에 전통시장이 아니라 식자재마트나 온라인 배송을 찾았다는 의미다. 편의성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 결과 소비자 10명 중 7명은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규제 효과가 없다는 답이 49%,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답이 57%였다.

이 때문에 거대해진 온라인 쇼핑 공룡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형평성에 맞도록 규제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마트 대표교섭노조인 전국이마트노동조합(한국노총)은 "시대에 뒤떨어진 유통 규제를 강화하기 보다 국민 편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규제 완화를 지지한다"고 성명서를 냈다. 김종민 전국이마트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쿠팡은 2019년 2만5307명에서 지난해 6만5772명으로 고용 규모가 160% 뛰었다"며 "규제를 받지 않는 온라인 유통강자 쿠팡과 이마트가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실제 규제 완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 의지만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통산업발전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므로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의 반대도 극복해야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10년가량 유지됐던 이유는 이해 당사자들의 대립이 극명했기 때문"이라며 "소비자들이 폐지를 원하고 있다는 의사가 명확한 만큼 정치권에서도 규제 완화라는 흐름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린 24시간인데"…대형마트 닫는 동안 웃은 곳 따로있었다
대형마트 규제가 10여년 간 지속된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유통산업의 지형이 빠르게 변했다. e커머스, 편의점, 식자재 마트 등 대형마트를 제외한 모든 유통 업태는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세를 구가한 것이다.

이는 수치로 확인된다. 규제가 도입된 2012년 383개였던 대형마트 점포 수는 2017년 423개까지 늘었다가 지난해 408개로 감소했다. 매출액은 2017년 33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34조6000억원으로 제자리 걸음했다.

올 상반기도 추세는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9.3% 늘었는데 대형마트는 물론 그와 유사한 수준의 규제를 받는 SSM(기업형슈퍼마켓) 업태의 매출만 각각 1.5%, 1.9% 감소했다. 반면 명품과 고가품 수요 확대로 백화점의 매출 증가율이 18.4%로 가장 컸고 편의점은 10.1% 늘었다. 온라인 유통업체의 경우 10.3% 증가했다.

"전통시장 죽인다" 발 묶인 마트…"우린 24시간" 웃고있는 편의점
대형마트와 SSM은 골목상권·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2010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라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보호구역에 3000㎡ 규모 이상의 대형마트와 SSM을 추가 출점할 수 없다. '월 2회 휴무'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등은 오프라인 규제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배송도 못하게 하는 이중의 족쇄다. 그런 규제의 결과가 앞에서 열거한 숫자다.

매출만 역성장한 게 아니라 이익은 편의점만도 못한 수준이 됐다. 온·오프라인 전체 유통업계 매출액에서 대형마트 3사(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편의점 3사(GS25, CU, 세븐일레븐)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적다. 지난해에 각각 15.7%, 15.9%로 처음으로 밀렸고 올 상반기에도 14.6%, 15.9%로 역전현상이 이어졌다. 편의점은 영업시간 제한이 없이 24시간 영업을 기본으로 하고 매년 수천개의 점포를 낸다. 코로나19로 근거리 장보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기, 채소 등을 구비해 팔면서 대형마트와 SSM을 대체하고 있다. 초저가를 콘셉트로 PB(자체브랜드) 상품을 연달아 출시해 대형마트와 SSM 고객을 빼앗았다. 올 상반기에만 편의점은 700여개 점포가 늘었다. 한 SSM 관계자는 "근거리 유통채널의 역할을 SSM 대신 편의점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마트가 유통법 규제로 발목잡힌 사이 규제 밖에 있는 전국 6만개 식자재마트 상위 3사가 연매출 1조를 웃돌며 실질적인 골목상권 위협이 되고 있다. 식자재마트는 대형마트와 파는 상품도, 가격도, 매장 규모도 비슷하지만 3000㎡ 이하 면적에 대기업이 아닌 사업자가 운영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 코로나19 때는 중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로 분류돼 긴급재난지원금 등 사용처로 선정돼 수혜를 입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가 몰락한 건 쿠팡 등 e커머스의 폭발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점, 1~2인 가구 증가라는 인구 구성 변화 등에 더해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 출점제한' 등 다양한 규제가 얽힌 결과"라면서 "대형마트는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내는 만큼 이제라도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모두 풀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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