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220억달러의 대미 신규 투자를 발표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화상으로 면담을 하며 "역사적 발표"라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올 들어 잇따른 국내 대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를 두고 재계 한 인사가 27일 털어놓은 속내다.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속도가 붙은 바이든 행정부의 '신(新)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와 맞물려 국내 대기업들의 대미(對美) 투자 고민이 깊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국내 대기업들이 내놓은 대미 투자 계획은 벌써 300조원을 오간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20년 동안 2000억달러(약 250조원)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증설하는 잠정 계획안을 미국 현지정부에 제출했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55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2025년부터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만드는 공장을 세운다.
이런 급격한 대미투자 확대는 한국수출입은행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전이었던 2020년 151억6600만달러였던 국내 기업의 대미투자가 지난해 278억1900만달러로 늘었다. 올 1분기 대미투자액이 87억2900만달러로 집계된 점을 감안하면 연간 투자 규모는 지난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드러내고 얘기하진 못하지만 재계에는 자발적인 결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지배적이다. 정치·외교·경제 관계에서 한국과 미국의 특수성이 결합되면서 사실상 '등 떠밀린 투자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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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더 곤혹스러운 지점은 올 들어 글로벌 경영여건이 악화하면서 기존 투자계획마저 재검토하기 시작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2분기 착공할 계획이었던 미국 애리조나 원통형 배터리공장 건설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미국 현지투자 분야가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으로 쏠리는 것을 두고 국내 인재 육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첨단산업 분야에서 인재 양성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자칫 미국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20년 250조원 투자계획안을 두고 잠정계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SK가 29조원 투자안에서 반도체 분야를 '공란'으로 남겨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만큼 전략을 수정해야 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