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2 키플랫폼'(K.E.Y. PLATFORM 2022)에 참석한 아트 에스토피난 에스토피난그룹 대표는 미국 신약 허가에 도전하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후한 평가 이면에는 쓴소리도 있었다. 그는 "한국 바이오제품은 훌륭하지만 신약 평가와 승인에 연관된 상·하원 위원회 사람들에게 그 제품이 얼마나 훌륭하고 미국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 설득하는데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신약 가치를 신약 연구개발(R&D) 외의 문제 탓에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은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언급된다. 이장익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신약 후보물질과 데이터만 확실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데이터가 아무리 좋아도 말로 설명을 못하면 현지 심사관들은 이해를 못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약의 위험 대비 이익이 어떤지 설득하는 과정인데 국내 제약사들이 여기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블룸버그통신은 "한 캘리포니아 회사가 한국 제약사의 보툴리눔톡신 제제 미국 퇴출을 막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에 (합법적)로비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로비가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도 평가했다. 이와 관련, B 제약사 관계자는 "결국 파트너사를 통한 네트워킹은 단발성이어서 꾸준한 관계형성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합법적 방법을 통한 현지 네트워킹 형성에 힘을 쏟지 못한 까닭은 미국에서 기술수출이 아닌 직접 진출을 통해 신약을 안착시킨 '선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반응이다. C 제약사 관계자는 "파트너 없이 직접 진출해서 성공시킨 신약이 아직 없어 현지 네트워킹 확보에 활발하게 나설 사업적 근거가 없었다"며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일 수 있는데, 이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위상을 감안하면 나설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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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전문가들도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국 등 대형 시장에 도전할 만큼 성숙했다고 입을 모았다. 에스토피난 대표는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워싱턴D.C.의 주목을 끌었다"며 "한국이 의학·생명공학 분야에서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준 지금이야말로 바이오 산업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기회"라고 말했다. 마이크 리 헬로스마트바이오 대표는 "한국 바이오 제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질이 높은 것으로 평가돼 미국 FDA나 유럽 승인 접근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일부 제약·바이오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출신 인물들을 회사에 합류시킨다. 이는 미국 네트워킹 교두보 마련의 시작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녹십자가 대표적 사례다. FDA 심사관 출신 이지은 전(前) 녹십자 상무는 2019~2020년 녹십자에서 혁신 신약후보물질의 발굴부터 초기 임상까지를 담당하는 부서인 RED본부의 본부장을 맡았다. SK바이오팜은 한국인 최초 FDA 부국장을 역임한 안해영 박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로비 전문업체를 통한 네트워크 확보도 미국 신약 도전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아직 국내 업계는 현지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 어떤 사람이 적합한지를 잘 찾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우선 현지 컨설턴트를 고용하거나 로펌을 통해 적합한 사람을 찾고 네트워크역량을 쌓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