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교중퇴 후 뒤늦은 공부→필즈상 수상..."목표에 조급해 말라"

머니투데이 김인한 기자 2022.07.05 17:24
글자크기

[인터뷰]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세계수학자대회 126년사 한국계 최초 수상
시인 꿈꾸며 고교 자퇴, 검정고시로 서울대
"목표 조급말라, 아이 키우듯 자신을 돌보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 사진=국제수학연맹(IMU)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 사진=국제수학연맹(IMU)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39, June Huh)가 한국 수학사를 새로 썼다. 한인 최초로 세계수학자대회 126년 역사에서 필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수학계 난제를 푼 40세 미만 젊은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노벨상'이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초중고 대학 교육을 모두 한국에서 받은 국내파다. 유수의 수학 천재들이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것과 달리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고교를 자퇴한 뒤 문학서적 읽기에 탐닉했다. 그러나 다시금 학업에 집중해 검정고시로 서울대에 진학했고, 서울대에서 물리천문학과 수학을 복수 전공했다. 대학을 6년 다녔는데, 5년째부터 수학에 관심을 뒀다. 서울대에서 초청한 필즈상 수상자 헤이스케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가 계기였다. 남들보다 속도는 더뎠지만, 자신만의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 온 끝에 필즈상을 거머쥐었다.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 직전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저는 먼 길을 돌아서 제 일과 적성을 찾았지만, 돌아보니 그 길이 제게 가장 알맞은 길이었다"며 "목표를 미리 정해두고 생각대로 삶이 풀리지 않더라도, 너무 조급하거나 집착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조금씩 돕는 게 최선"이라며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자신을 친절하게 돌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래는 머니투데이와의 일문일답.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 사진=기초과학연구원(IBS)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 사진=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 역사상 최초 필즈상 수상 소감은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의 조용한 삶이 흔들릴까 걱정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학계 동료들이 제 기여를 알아주는 일은 언제나 큰 격려가 되지만, 수상하더라도 저의 삶과 공부는 이전과 아주 다르지 않을 거예요.

-수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수학은 과감하면서도 정확하고 깨끗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훈련이에요. 다른 어떤 동물에게서도 관찰할 수 없는 놀이의 형태지요. 원인인지 결과인지, 그 중간의 무엇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리의 이런 독특한 '취향'과 인간 사회의 놀라운 발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수학에 빠져든 계기는
▶20대 중반에 헤이스케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요. 실시간으로 수학을 '하는' 사람을 처음 본 느낌을 받았습니다. 악보만 읽던 사람이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헤이스케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고, 헤이스케 교수는 특별히 정돈하려 하지 않고 이런저런 수학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한국에 수학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수학의 세계에선 어떤 두 사람이 만나더라도 충분한 시간만 들이면 서로 한 치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언제든지 설득할 준비가 되어 있고, 언제든지 설득될 준비가 되어 있지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팩트'가 무엇인지 불분명해지는 시대에 폭넓고 깊이 있는 수학 교육이 신뢰의 재구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속도는 늦었지만 꾸준히 자신만의 방향대로 걷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저는 먼 길을 돌아서 제 일과 적성을 찾았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니 그 길이 저에게 가장 알맞은 길이었던 듯해요. 목표를 미리 정해두면 마음이 경직되니 생각대로 삶이 풀리지 않더라도 조급해하거나 집착하지 않았으면 해요.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니까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되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주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