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100%' 기부한다는…이상하고 따뜻한 회사[인류애 충전소]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2.07.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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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브랜드 '리플래닛', 운영비 제외한 이윤 100% 전액 기부…"내가 낸 기부금 잘 쓰일까" 의문 품던 '기부 불편러' 직접 회사 차려, 사회에서 도움·응원 필요한 이들에 '현금 아닌 물품'만 전해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올해 1~2월 리플래닛이 진행한 첫번째 기부 프로젝트는, 조손 및 장애인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옷 선물이었다. 정갈한 포장에 손편지도 함께 담겼다. 약 600만원 상당의 의류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게 했다./사진=리플래닛 제공.올해 1~2월 리플래닛이 진행한 첫번째 기부 프로젝트는, 조손 및 장애인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옷 선물이었다. 정갈한 포장에 손편지도 함께 담겼다. 약 600만원 상당의 의류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게 했다./사진=리플래닛 제공.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여행을 안 좋아하던 남자가 여행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다. 까칠했던 남자는 착한 여자를 오래 만나며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던 여행지에서 우연히 이런 대화가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행복의 정점에서 시작된 '물음표'는 기부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리 그럼 기부도 많이 하자", "근데 기부금은 오롯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갈까", "사업비론 얼마나 제하고 얼마나 가는 걸까." 기존 기부 단체를 비판하자는 게 아녔다. 이런 분들이라도 없으면 돕는 일 자체가 사라질 걸 알기에. 다만 기부하려는 이들의 의문 또한 응당히 가질 수 있는 거라 여겼다.

"그럼 우리가 시작해볼까?" 그날 별이 너무 많아서인지, 두 사람은 그런 결심을 했다.



그 계획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랬다.

1. '공정한 기업'을 만들어서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한다(사업 운영비 제외하고).

2. 그 기업이 안정화 되면 '기부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3. 기부 플랫폼 '운영 비용(홍보, 운영, 진행비)'도 기업 이윤에서 전액 부담한다. 그럼 운영비를 제외하지 않고, 기부한 금액 100% 그대로 전할 수 있다.

'이윤 100%' 기부한다는…이상하고 따뜻한 회사[인류애 충전소]
그리고 그 남자는 이걸 실행에 옮겼다. "진짜 왜 하냐"고 주변에서 말렸다. 하지만 꼭 해보고 싶은 건 부딪혀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시작했다. 이름은 '리플래닛(RE:Planet)'으로 지었다.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최소 3~4년) 입는 친환경 의류,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지구란 뜻이 담겼다. 모자, 티셔츠, 맨투맨, 셔츠, 팬츠 등을 판매하고 있다.

우연히 '리플래닛'의 존재를 알게 됐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느라 저마다 안달인데, 그걸 100% 기부한다고? 절반은 의심했고 절반은 궁금했다. 호기심이 의심을 이겼다. 어쨌거나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었다. 언뜻 보기엔 비현실적이고 이상하지만, 제대로 한다면 따뜻하고 필요한 기업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아직은 '적자'이지만요
리플래닛 옷은 3~4년은 입도록 좋은 원단을 쓰고, 디자인도 유행을 타지 않게 기본에 충실하다. 5년 뒤에 봤을 때에도 유행이 바뀌어 못 입겠단 말이 안 나오도록 고민했다고. 좋은 취지로 만든 브랜드이니 환경쪽으로도 무해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단다. 엄 대표 본인이 옷을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입는다고. 리플래닛의 홈페이지 화면./사진=리플래닛 홈페이지리플래닛 옷은 3~4년은 입도록 좋은 원단을 쓰고, 디자인도 유행을 타지 않게 기본에 충실하다. 5년 뒤에 봤을 때에도 유행이 바뀌어 못 입겠단 말이 안 나오도록 고민했다고. 좋은 취지로 만든 브랜드이니 환경쪽으로도 무해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단다. 엄 대표 본인이 옷을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입는다고. 리플래닛의 홈페이지 화면./사진=리플래닛 홈페이지
리플래닛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처음엔 고민해보겠다며 고사했다.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뒤에야 연락이 왔다.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말, 엄세윤 리플래닛 대표를 만나 그의 자세한 이야길 들었다.

기자 :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하는 기업이라니요. 이미 시작하신 거지요?

대표 : 네, 아내와 둘이서만 초기 자본을 투입해 올해 1~2월 정도부터 시작했어요.

기자 : 반응은 좀 어떤가요(사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됐다).

대표 : 당연히 첫 시작이니 아직은 '적자'인데요. 홍보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요. 재구매율도 높고, 반품률도 낮고요. 모자 같은 건 반품률이 높다는데, 저희는 5~10% 정도로 낮아요. 저희가 원단 자체를 비싼 걸 쓰고, 봉제 가격도 비싸서 다른 옷보다 좀 비싼데요. 그런데도 회사 티셔츠, 모자 등 구매해주시고요.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게 추구하는 목표란다./사진=리플래닛기업 이윤 100%를 기부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게 추구하는 목표란다./사진=리플래닛
기자 : 리플래닛의 좋은 뜻을 아시고요?

대표 : 제가 강매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기자 : 그쵸. 그럼 적자는 어떻게 메우고 계신 걸까요? 후원을 받고 계신 것도 아닌데요.

대표 : 맞아요, 후원은 받지 않아요. 공정한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고, 그걸 100%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니까요. 대신 수익처가 따로 있어요. 주변에 의류업 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안정화 되는 데에 2년은 잡아야 한다고요.

기자 : 그럼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어떤 방식으로 기부하시는 걸까요?

대표 : 전년도 수익 금액으로 다음연도에 기부하는 거지요. 예컨대, 올해 수익이 1억 원이 나면, 다음 해 그걸로 사회 환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고요. 회계사분들께 자문했는데, 그게 회계 처리상 가장 투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올해 벌써 네 차례 '섬세한 기부'… 옷 한 벌 고르려 400번 클릭한 아이
사이즈가 달라 옷을 고르지 못했던, 한 아이만을 위해 제작한 옷. 그리고 모자 선물. 홀로 상처 받지 말라고, 섬세한 기부다./사진=리플래닛사이즈가 달라 옷을 고르지 못했던, 한 아이만을 위해 제작한 옷. 그리고 모자 선물. 홀로 상처 받지 말라고, 섬세한 기부다./사진=리플래닛
기자 : 아직 수익이 안 났는데도… 기부 프로젝트는 벌써 시작하셨더라고요.

대표 : 적자이지만 감수하고 할 수 있는 건 하자, 생각했어요. 그래야 고객들에게 어떤 회사인지 알리고, 믿고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한 달에 1~2개, 두 달에 1개, 이렇게 찾아서 하고 있어요. 올해 네 차례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5차 프로젝트는 준비 중이고요.

기자 : 어떤 기부 프로젝트를 하신 걸까요?

대표 : 첫 번째는 OO시에 있는 조손가정, 장애인 부모를 둔 청소년들에게 의류를 선물했어요(아이들이 혹시 상처받을 수 있다고, 지역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지자체 주무관에게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했더니, "물품 주시면 전달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본인이 좋아하는 걸 선택했으면 싶더라고요. 좀 번거롭더라도요. 그래서 홈페이지에서 갖고 싶은 옷 하나를 고르게 하고 모자는 모두에게 선물했지요.

지난 1~2월 리플래닛이 진행한 첫번째 프로젝트. 조손 및 장애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옷 선물을 했다./사진=리플래닛 지난 1~2월 리플래닛이 진행한 첫번째 프로젝트. 조손 및 장애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옷 선물을 했다./사진=리플래닛
기자 : 섬세한 기부네요. 아이들이 좋아했겠어요.

대표 :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옷을 고르는데요. 사이트에서 클릭한 정보를 볼 수 있거든요. 어떤 아이는 옷 하나를 고르는데, 400번을 넘게 클릭한 거예요. 종류도 많지 않았는데요. 상의며 하의며 하나씩 다 고르게 할 걸,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미안하더라고요.

기자 : 그 하나를 잘 사고 싶어서 얼마나 많이 고민한 걸까요.

대표 : 다른 아이는 맞는 옷 치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집에 갔는데 계속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은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으면 속상하잖아요. 다음날 공장에 전화했더니 원단 남는 게 다행히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물해 줄 수 있었지요.

그러니 금전적으론 이득이 안 되지만 심적으론 위로가 많이 된단다. 리플래닛의 선물을 받은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저희가 하는 걸 지켜봐주지 않았거든요. 몽상가란 말까지 들었고요. 그런데 이렇게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니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힘든데…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요
응원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옷 선물을 한다. 홀로 어르신 등 환경이 열악하고 힘든 이들의 집을 무료로 고쳐주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회원들에게, 지난 3월 진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사진=리플래닛응원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옷 선물을 한다. 홀로 어르신 등 환경이 열악하고 힘든 이들의 집을 무료로 고쳐주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회원들에게, 지난 3월 진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사진=리플래닛
한 프로젝트마다 평균 300만 원씩, 그렇게 네 번 기부했다. 처음엔 도움 주고픈 이들에게 향했고, 이어 응원하고픈 이들에게도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힘든 이들의 집을, 무료로 고쳐주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카페 회원들에게 옷으로 응원 선물을 했다. 세 번째, 네 번째 프로젝트엔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선물했다.

기자 : 기부하는 분야도 참 다양하네요. 어디 기부할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대표 : 계속 찾아봐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업적인지 아닌지, 그런 게 번거롭고 고민이 많지요. 생각보다 재밌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에 가능했고요.
리플래닛의 인스펙터(감독관) 네 명.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감시하고 함께 성장토록 조언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사진=리플래닛리플래닛의 인스펙터(감독관) 네 명.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감시하고 함께 성장토록 조언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사진=리플래닛
기자 : '인스펙터(감독관)' 네 분도 그런 도움을 주시는 거고요.
대표 : 맞아요. 저희가 공정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지켜봐 줄 네 분을 찾았지요. 깐깐하고, 공정함에 있어선 타협을 안 하는 분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가수 옥상달빛의 김윤주 님, 배우 박용우 님과 한예리 님, 발레리나 김주원 님이 도와주고 계세요(이들은 보수도 받지 않는단다). 두 달에 한 번씩은 뵙고 있고, 프로젝트 있을 때마다 얘기하고 우려 사항은 지적해주시고요. 다들 바쁘신데 너무 감사하죠.

좋은 일은 돈이 안 되기 쉽고, 그 과정 역시 험난할 걸 잘 알기에,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40분 동안 엄 대표에게 참 많이도 물어보았다. 기업이 이윤만 내는 것도 힘든데, 그걸 다 기부하고 기부할 곳까지 곰곰이 찾느라 더 힘든 사람. 걱정도 의심도 많아 현금은 무조건 제외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서 직접 전달한다는 사람.
지난달, 네 번째 기부 프로젝트로 리플래닛이 진행한 건 '플로깅(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것)'을 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인천 대표 플로깅챌린지 커뮤니티인 '프린지' 회원들./사진=리플래닛 지난달, 네 번째 기부 프로젝트로 리플래닛이 진행한 건 '플로깅(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것)'을 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인천 대표 플로깅챌린지 커뮤니티인 '프린지' 회원들./사진=리플래닛
그러니 그 끝엔 이런 질문이 자연스레 나왔다. 물음이었으나, 사실은 그의 선의(善意)로 가득한 대답을 꼭 글로 담고 싶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리플래닛이 잘 되길 응원하고 있었으므로.

기자 : 도대체 왜, 이 힘든 걸 하시는 걸까요. 나만 잘 먹고, 잘 살아도 상관없는 세상인데요.
대표 : 경쟁이 치열하고 매몰찬 사회잖아요. 조금씩 함께해주시고, 조금만 마음을 따뜻하게 가지면, 좀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려고 시작했어요.

그의 마지막 말이 창밖에 쏟아지던 빗소리처럼 청량하고 뭉클했다. 나홀로 챙기느라 눅눅하고 무거운 사회에 던지는, 시원한 파장 같은 물음 같아서.

"그러니, 이런 기업도 하나쯤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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