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리플래닛이 진행한 첫번째 기부 프로젝트는, 조손 및 장애인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옷 선물이었다. 정갈한 포장에 손편지도 함께 담겼다. 약 600만원 상당의 의류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게 했다./사진=리플래닛 제공.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그럼 우리가 시작해볼까?" 그날 별이 너무 많아서인지, 두 사람은 그런 결심을 했다.
1. '공정한 기업'을 만들어서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한다(사업 운영비 제외하고).
2. 그 기업이 안정화 되면 '기부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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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부 플랫폼 '운영 비용(홍보, 운영, 진행비)'도 기업 이윤에서 전액 부담한다. 그럼 운영비를 제외하지 않고, 기부한 금액 100% 그대로 전할 수 있다.
우연히 '리플래닛'의 존재를 알게 됐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느라 저마다 안달인데, 그걸 100% 기부한다고? 절반은 의심했고 절반은 궁금했다. 호기심이 의심을 이겼다. 어쨌거나 이야기를 너무 듣고 싶었다. 언뜻 보기엔 비현실적이고 이상하지만, 제대로 한다면 따뜻하고 필요한 기업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아직은 '적자'이지만요
리플래닛 옷은 3~4년은 입도록 좋은 원단을 쓰고, 디자인도 유행을 타지 않게 기본에 충실하다. 5년 뒤에 봤을 때에도 유행이 바뀌어 못 입겠단 말이 안 나오도록 고민했다고. 좋은 취지로 만든 브랜드이니 환경쪽으로도 무해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단다. 엄 대표 본인이 옷을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입는다고. 리플래닛의 홈페이지 화면./사진=리플래닛 홈페이지
기자 :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하는 기업이라니요. 이미 시작하신 거지요?
대표 : 네, 아내와 둘이서만 초기 자본을 투입해 올해 1~2월 정도부터 시작했어요.
기자 : 반응은 좀 어떤가요(사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됐다).
대표 : 당연히 첫 시작이니 아직은 '적자'인데요. 홍보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요. 재구매율도 높고, 반품률도 낮고요. 모자 같은 건 반품률이 높다는데, 저희는 5~10% 정도로 낮아요. 저희가 원단 자체를 비싼 걸 쓰고, 봉제 가격도 비싸서 다른 옷보다 좀 비싼데요. 그런데도 회사 티셔츠, 모자 등 구매해주시고요.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게 추구하는 목표란다./사진=리플래닛
대표 : 제가 강매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기자 : 그쵸. 그럼 적자는 어떻게 메우고 계신 걸까요? 후원을 받고 계신 것도 아닌데요.
대표 : 맞아요, 후원은 받지 않아요. 공정한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고, 그걸 100%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니까요. 대신 수익처가 따로 있어요. 주변에 의류업 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안정화 되는 데에 2년은 잡아야 한다고요.
기자 : 그럼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어떤 방식으로 기부하시는 걸까요?
대표 : 전년도 수익 금액으로 다음연도에 기부하는 거지요. 예컨대, 올해 수익이 1억 원이 나면, 다음 해 그걸로 사회 환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고요. 회계사분들께 자문했는데, 그게 회계 처리상 가장 투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올해 벌써 네 차례 '섬세한 기부'… 옷 한 벌 고르려 400번 클릭한 아이
사이즈가 달라 옷을 고르지 못했던, 한 아이만을 위해 제작한 옷. 그리고 모자 선물. 홀로 상처 받지 말라고, 섬세한 기부다./사진=리플래닛
대표 : 적자이지만 감수하고 할 수 있는 건 하자, 생각했어요. 그래야 고객들에게 어떤 회사인지 알리고, 믿고 구매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한 달에 1~2개, 두 달에 1개, 이렇게 찾아서 하고 있어요. 올해 네 차례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5차 프로젝트는 준비 중이고요.
기자 : 어떤 기부 프로젝트를 하신 걸까요?
대표 : 첫 번째는 OO시에 있는 조손가정, 장애인 부모를 둔 청소년들에게 의류를 선물했어요(아이들이 혹시 상처받을 수 있다고, 지역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지자체 주무관에게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했더니, "물품 주시면 전달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본인이 좋아하는 걸 선택했으면 싶더라고요. 좀 번거롭더라도요. 그래서 홈페이지에서 갖고 싶은 옷 하나를 고르게 하고 모자는 모두에게 선물했지요.
지난 1~2월 리플래닛이 진행한 첫번째 프로젝트. 조손 및 장애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옷 선물을 했다./사진=리플래닛
대표 :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옷을 고르는데요. 사이트에서 클릭한 정보를 볼 수 있거든요. 어떤 아이는 옷 하나를 고르는데, 400번을 넘게 클릭한 거예요. 종류도 많지 않았는데요. 상의며 하의며 하나씩 다 고르게 할 걸,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미안하더라고요.
기자 : 그 하나를 잘 사고 싶어서 얼마나 많이 고민한 걸까요.
대표 : 다른 아이는 맞는 옷 치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집에 갔는데 계속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다른 친구들은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으면 속상하잖아요. 다음날 공장에 전화했더니 원단 남는 게 다행히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물해 줄 수 있었지요.
그러니 금전적으론 이득이 안 되지만 심적으론 위로가 많이 된단다. 리플래닛의 선물을 받은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저희가 하는 걸 지켜봐주지 않았거든요. 몽상가란 말까지 들었고요. 그런데 이렇게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니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힘든데…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요
응원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옷 선물을 한다. 홀로 어르신 등 환경이 열악하고 힘든 이들의 집을 무료로 고쳐주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회원들에게, 지난 3월 진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사진=리플래닛
기자 : 기부하는 분야도 참 다양하네요. 어디 기부할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대표 : 계속 찾아봐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업적인지 아닌지, 그런 게 번거롭고 고민이 많지요. 생각보다 재밌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에 가능했고요.
리플래닛의 인스펙터(감독관) 네 명.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감시하고 함께 성장토록 조언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사진=리플래닛
대표 : 맞아요. 저희가 공정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지켜봐 줄 네 분을 찾았지요. 깐깐하고, 공정함에 있어선 타협을 안 하는 분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가수 옥상달빛의 김윤주 님, 배우 박용우 님과 한예리 님, 발레리나 김주원 님이 도와주고 계세요(이들은 보수도 받지 않는단다). 두 달에 한 번씩은 뵙고 있고, 프로젝트 있을 때마다 얘기하고 우려 사항은 지적해주시고요. 다들 바쁘신데 너무 감사하죠.
좋은 일은 돈이 안 되기 쉽고, 그 과정 역시 험난할 걸 잘 알기에,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40분 동안 엄 대표에게 참 많이도 물어보았다. 기업이 이윤만 내는 것도 힘든데, 그걸 다 기부하고 기부할 곳까지 곰곰이 찾느라 더 힘든 사람. 걱정도 의심도 많아 현금은 무조건 제외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서 직접 전달한다는 사람.
지난달, 네 번째 기부 프로젝트로 리플래닛이 진행한 건 '플로깅(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것)'을 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인천 대표 플로깅챌린지 커뮤니티인 '프린지' 회원들./사진=리플래닛
기자 : 도대체 왜, 이 힘든 걸 하시는 걸까요. 나만 잘 먹고, 잘 살아도 상관없는 세상인데요.
대표 : 경쟁이 치열하고 매몰찬 사회잖아요. 조금씩 함께해주시고, 조금만 마음을 따뜻하게 가지면, 좀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려고 시작했어요.
그의 마지막 말이 창밖에 쏟아지던 빗소리처럼 청량하고 뭉클했다. 나홀로 챙기느라 눅눅하고 무거운 사회에 던지는, 시원한 파장 같은 물음 같아서.
"그러니, 이런 기업도 하나쯤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