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중 미국 대통령, 일본 총리와 3자 회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C) AFP=뉴스1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영업이익도 매년 수천억원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전의 자회사란 이유로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혔다는 점에서 한수원으로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원전업계에선 이번 조치가 향후 해외 원전 수주전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되면 수익성 제고 및 비용구조 분석을 통한 지출 효율화가 불가피하다. 한수원의 투자가 위축될 경우 원전 산업생태계 복원, 해외시장 개척 등 국정과제의 추진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한수원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각각 9조4691억원, 8044억원으로 집계됐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도 지난 5년간 꾸준히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지분법상 자회사의 영업실적은 모회사의 재무상태에 영향을 주지만 모회사의 영업손실은 자회사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전의 자회사인 이유만 들어 부실기업으로 지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회계전문가는 "자회사가 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모회사인 한전의 실적이 악화됐다면 그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해야 한다"며 "자회사까지 도매금으로 묶어 일괄적으로 부실기업으로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한전과 한수원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물가를 이유로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요구를 매번 반려하며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를 초래한 곳이 기재부라는 점에 비춰보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비판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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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체코를 포함한 동유럽 원전 수주전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체코 정부는 올 3월 두코바니 원전 부지에 신규원전 1기를 건설하는 공사를 발주했다. 한수원 역시 이 원전 수주전에 참여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의 EDF(프랑스 전력공사)와 경쟁 중이다. 공사금액이 최대 8조원에 달하는 이번 수주전에서 시공사의 재무상태는 가장 우선적인 평가요소 중 하나다. 대외적으로 '부실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도움이 될 리 없다.
더구나 정부가 한수원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한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에서 원전 세일즈를 펼치는 시점이었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피알라 체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체코 원전 수주 의지를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공기업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간기업과 무조건 동일한 잣대로 재무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해외사업을 하는 공기업에 대해선 개혁도 중요하지만 전략적인 판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수원은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 속에서도 한전 자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매년 수천억원대 흑자를 내는 기업었다"며 "원전 수주 시 지분참여 요구가 있다면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일으켜야 하는데 재무상태가 안 좋다는 평가가 있다면 결국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 수주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