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나, 내궁 자가의 똑부러지는 정치 묘수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2.06.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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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심' 강한나,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붉은 단심' 강한나,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전하는 다르게 사셔야 합니다. 해서 제가 전하를 견제하려 합니다."

KBS2 '붉은단심'의 내궁 유정(강한나)은 결코 만만치 않은 여자다. 부녀자의 훈육을 하려 하면 논어로 토론을 하자며 눈을 반짝이고, 부모를 잃은 후엔 직접 죽림현을 이끌어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을 먹여살린다. 아이 시절 유정에게 그의 아버지는 "너는 어찌 여인으로 태어났느냐"고 말했을 정도로 타고난 기질이 남달랐다. 유정은 여자이기보다 존엄한 인간으로 서 있길 원했고, 남자들의 정치 싸움 속 바둑판의 알이 되길 거부했다. 지존인 왕을 상대로 "견제"라는 단어를 들이미는 강단은 그간 사극 속 치정 싸움만 하던 여성 캐릭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를 사랑한 왕 이태(이준)와 그에게 보살핌을 받던 죽림현의 백성들은 유정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책임감이 강하고,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으며, 노비와도 언니 동생하는 여자. 그래서 보호받기보다 먼저 누군가를 지켜주고 변화시키려 하는 여자. 유정은 강한나가 그동안 연기해온 캐릭터들의 연장선에 있는 역할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관습마저 초월한 자립적인 인물이다. 그를 주목할 만한 신인 연기자로 끌어올렸던 영화 '순수의 시대'의 가희는 자신의 삶을 망가트린 이를 끝까지 쫓아가 복수에 성공한 인물이었고, 직전에 출연한 드라마 '스타트업'의 인재는 백조처럼 우아한 외관과 달리 물 아래에서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발을 휘저으며 젊은날의 성공을 쟁취한 인물이었다.



'붉은 단심' 강한나,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붉은 단심' 강한나,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
여자 캐릭터가 외로워도 슬퍼도 씩씩함을 무기로 시련을 헤쳐나가는 게 성장물의 법칙이라면, 강한나의 경우에는 크러시라는 옵션이 따라붙는다. 똑부러지는 말투, 단정하면서도 이지적인 외모, 상대를 제압하는 강질의 눈빛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그는 여러 얼굴들에서 단단하게 쌓아올린 자립심을 조선시대까지 가져가며 풍속을 뛰어넘는 배우가 됐다.



'붉은 단심'에서 강한나는 지성과 지략을 무기로 싸우고 사랑한다. '순수의 시대'부터 강한나가 연기했던 다분히 주체적인 캐릭터들 중에서도 유정은 눈에 띄게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동시에 아득한 괴로움까지 품고 있다. 유정은 가문이 풍비박산난 원인 제공자가 이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으로 바르게 일으켜 세우려 한다. 감정에 사사로이 휘둘리지 않으며, 내궁이라는 높은 자리에 마땅한 대의를 위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랑하는 남자와, 보살핌 받아야할 백성들을 지킨다. 삭여내는 괴로움마저 유약해 보이지 않게 고뇌의 얼굴로 밀어낸다.

고통을 알지 못해서 무던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낼 만큼 강한, 이런 강한나가 지닌 생명력은 자칫 뻔한 남자판 정치 사극이 될 수 있는 '붉은 단심'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이름처럼 강한, 강한나의 필모그래피는 시대가 원하는 자립적인 여성 캐릭터의 가장 큰 얼굴이 됐다. 보호란 단어를 저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만만치 않은 내궁 자가 강한나. 반드시 뜻하는 바를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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