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배우의 블루스

머니투데이 송정렬 디지털뉴스부장 겸 콘텐츠총괄 2022.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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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열의 Echo]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화제다.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마니아층을 거느린 노희경 작가가 풀어내는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고 달고 쓰고 떫은' 삶의 이야기들에 공감하며 웃고 우는 이가 많다."역시 노희경"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최근 시청률을 훨씬 웃도는 사회적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다. 한 출연배우 때문이다. 이병헌 신민아 김우빈 한지민 등 드라마에 출연 중인 쟁쟁한 인기스타도, 고두심 김혜자 등 대배우도 아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영옥(한지민 분)의 쌍둥이 언니 영희로 등장하는 무명배우 정은혜다. 극 중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 영희 역을 맡아 열연한 정은혜는 실제 다운증후군 장애인이다. 장애인 배우가 TV드라마에 주·조연급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다운증후군 처음 보는데 놀랄 수 있죠.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서도 배운 적 없어요." 영희를 처음 보고 놀란 영옥의 남자친구 정준(김우빈 분)의 말이다.

국내 발달장애인 수는 24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등록장애인 수는 지난해 기준 264만명에 달한다. 대략 전 국민의 4% 수준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TV에 등장하는 장애인 배우뿐 아니라 주변의 장애인들을 대할 때 우리는 놀라거나 당황한다. '장애인 언니 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짊어져야 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영희. 과연 드라마에서 영희의 사랑은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이 사건의 비극적인 결과가 오롯이 피고인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할 만한 성격이 아니라는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2019년 3월 법원은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살해한 엄마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이같이 판시했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장애인 가족의 비극은 지속된다. 지난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 치료를 받는 6세 아들과 40대 엄마가 함께 몸을 던져 숨졌다. 또 인천에서도 60대 여성이 30여년 돌본 중증장애인 딸을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발달장애 자녀 살인, 혹인 살인미수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만 최소 8건이 발생했다.


이 비극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당연히 장애인 가족의 '독박 돌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부 정책과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 사회적 논란을 빚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만 봐도 그렇다. 이 시위는 2001년 2월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시작됐다. 횟수로 벌써 21년째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당연한 권리며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그러나 일각에선 '1역사 1동선'(지하철 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연결된 통로)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4%에 달한다며 장애인들이 생떼를 쓴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장애인들이 '비문명적인 불법시위'로 시민들의 불편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치는 맞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지하철 승강기와 리프트는 수시로 고장 난다. 환승할 때는 '승강기 찾아 삼만리'를 각오해야 한다.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의 불안과 아픈 자식을 끌어안고 몸을 던지는 어미의 슬픔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공감하는가. 장애인의 문제가 그들이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지점부터다.

배우 정은혜의 등장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낡은 인식에 작지만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더 많은 영희가 TV, 영화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더는 그들을 보며 결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장애인 배우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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