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돈잔치…찬밥신세 자초? "이래서 K바이오 못 믿어"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박미리 기자, 정기종 기자 2022.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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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찬밥신세 바이오, 부활의 조건(상)

편집자주 자본시장이 바이오를 외면하고 있다. 현장에선 "이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바이오가 철저하게 저평가 받은 적은 없었다"는 토로가 나온다. 막대한 연구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바이오는 자본시장과 떨어져 혼자 설 수 없다. 생존을 위해 지속적인 자금 수혈이 필수적이다. 자본시장과 동행하지 못하면 바이오 생태계는 무너진다. 바이오가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이유와 배경, 그로 인한 영향,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짚는다.

돈줄 끊긴 바이오 생태계…"이러다 다 죽어" 곡소리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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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벤처 A사는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 자금이 필요하다. IPO(기업공개)를 위해 기술성평가를 시도했지만 탈락했다. 기술성평가조차 떨어지니 사내에 과연 상장이 되겠냔 불안이 퍼졌다. 주요 인력이 이탈하는 등 회사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직전 밸류에이션보다 확 낮은 가격으로 겨우 증자를 했다. 임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운영 자금으로 쓸 정도 규모다. 후속 연구는 꿈도 못 꾼다.

#바이오 벤처 B사는 주요 기술 개발 과정에서 의미있는 연구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제 연구 고도화와 세계 시장 진출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공모시장의 바이오 투자 수요를 고려하면 IPO에 나서기 겁난다. 그래도 언제까지 미룰 수 없는 일. 고심 끝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속마음은 편치 않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상장할 수 있을까. 지난해 장외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 평가받은 기업가치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으로라도 상장만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IPO 과정에서 장외에서 평가받은 수준보다 기업가치를 확 높이는 전례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꽉 막힌 바이오 IPO…바이오 생태계 돈이 안들어온다

바이오 IPO가 꽉 막혔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바이오 IPO가 어렵다. 그만큼 공모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제대로 된 바이오 상장은 5개도 안 될 것"이란 토로까지 나온다. 그만큼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이오 IPO의 벽이 높다.



실제 올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은 애드바이오텍, 바이오에프디엔씨, 노을이다. 세 회사 모두 엄밀히 말해 정통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는 아니다. 올해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도 6개에 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이다. 그마저 올해 예심 청구 바이오에 대해 "상장 못할 걸 알면서 기존 투자자에 보여주려는 목적의 상장예비심사 청구도 꽤 될 것"이란 자조섞인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 어느 정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이오 벤처라도 올해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기조차 버겁다. 상장심사를 철회하는 기업도 속출했다. 장외에서 2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디앤디파마텍은 두 번째 도전에도 상장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해도 시장의 시선이 차갑다. 기술이전 4건으로 2조원 이상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한 보로노이도 지난 3월 공모시장 저평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차례 상장을 철회했다.


IPO가 막히니 바이오 산업 성장 생태계에 구멍이 뚫렸다. 신약 개발은 제조업은 아니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분야다.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과정은 임상 비용 등을 포함해 수천억원, 많게는 1조원 이상 든다. 돈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 없고, 연구를 못하면 회사의 존립 의미를 잃는다.

IPO는 바이오가 연구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창구다. 상장 전 벤처캐피탈(VC)의 투자로 초기 단계 일부 자금을 충당할 수 있지만 규모에서 한계는 명확하다. 수백억원 이상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모으기 위해선 IPO가 필요하다. 그래서 바이오가 창업하고 연구하고 투자를 유치하고 임상 시험 등을 통해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IPO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현장에선 곡소리…상장 못하고 투자 막히고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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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가 막히니 바이오 업계 현장에선 곡소리가 난다.

위에 언급한 A기업처럼 임상 비용은커녕 운영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바이오 벤처가 적지 않다. IPO를 해야 할 때 못하면 기존 투자자의 등쌀에 시달릴 뿐 아니라 돈을 못 구해 연구를 진척할 수 없다. 임상 시험에 들어갈 시점에 돈이 없다면 CRO(임상수탁기관)나 규제기관 일정을 맞추지 못해 1년 이상 연구가 지연될 수 있다. 연구가 늦어지는 동안 회사에 마음이 떠난 핵심 연구진이 이탈할 경우 존폐의 기로에 서야 한다.

IPO를 준비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 대표이사는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더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바이오는 계속 투자를 받아야 하고 엔젤투자부터 시작해 시리즈A~C, 프리IPO, IPO 이렇게 단계를 밟으면서 기업은 성장하고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이 구축돼야 한다"며 "지금 바이오 IPO가 막히면서 회사 운영 자체에 애를 먹는 기업이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이 가로막힌 바이오가 많다 보니 벤처에 돈을 대는 벤처캐피탈도 바이오 투자에 손을 떼고 있다. 이미 투자한 바이오 벤처가 상장을 못해 엑시트(투자금회수)를 못하고 자금이 묶인다. 이렇다보니 벤처캐피탈도 이제 바이오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상장도 못하고 증자도 못하는 바이오 벤처는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바이오 창업 열기도 식을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오랜 기간 바이오에 투자한 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요즘 바이오 신규 투자는 거의 어렵다 보면 된다"며 "상장은커녕 투자를 못 받으니 운영자금이 모자라 직원을 내보내는 바이오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 투자 생태계가 망가지면서 많은 벤처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며 "회사 문을 닫지 못해 생존만 하는 바이오 벤처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시장, 눈높이 맞춰야 산다

대표적인 성장 산업인 바이오에 대한 지속된 저평가는 업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 상장 요건으로 약 17년간 100개 가까운 바이오 벤처가 코스닥에 입성했지만 눈에 띄는 신약 개발 성과는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상장 바이오 중 이해할 수 없는 경영 행태로 거래정지된 종목도 있다. 온갖 연구 성과를 홍보하다 돌연 임상 실패 소식을 알리며 투자자 피해를 초래한 기업도 있다. 시장 일각에서 "K바이오는 믿을 게 못 된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2020~2021년 바이오가 한창 잘 나갈 때 책정한 기업가치를 여전히 고수하는 기업도 문제다. 이미 주식시장에서 바이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이에 따라 공모시장에서 바이오에 대한 눈높이를 대폭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비상장일 때 평가받은 기업가치보다 무조건 높은 밸류에이션을 요구한다면 IPO는 요원하다. 바이오 기업과 공모시장 간 눈높이 '미스매치'(부조화)를 극복해야 한다.

국내 IB(투자은행) 전문가는 "기업의 역량도 문제지만 최근 바이오 IPO가 어려운 큰 이유 중 하나가 밸류에이션에 대해 시장과 눈높이가 크다"며 "예전 잘 나갈 때 몸값만 생각해선 IPO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 IPO가 살아나려면 기업과 시장 간 밸류에이션 눈높이를 맞추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은 이미 설정된 기업가치가 있어 마음대로 밸류에이션을 낮출 수 없다 하소연한다.

한 비상장 바이오 기업 임원은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IPO가 아니면 답이 없다"며 "그런데 지금은 IPO도 어렵고 그렇다고 장외에서 증자를 통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들 밸류에이션이 문제라고 하는데 이미 장외에서 투자 받은 기업가치 기준이 있어 그보다 한참 낮은 가격으론 상장할 수 없다"며 "빨리 공모시장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생존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가 주변에도 많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표적 바이오 투자 전문가인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몇 년 전 바이오가 호황일 때 벤처캐피탈은 서로 투자하려 했고, 많은 바이오 기업이 장밋빛 미래를 바탕으로 높은 몸값으로 돈을 끌어모았다"며 "이제 국내외 시장이 모두 어려운 상황인 만큼 그때 기업가치는 빨리 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시장 환경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는데도 높은 공모가를 고집한다면 회사 경영진의 상황 판단 능력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며 "자본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 경영자의 유연한 사고 전환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특례상장 98곳, 신약개발 0건…바이오 추락·불신,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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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업계에선 통상적으로 신약 개발에 연구와 임상시험 등을 포함해 약 10년의 기간, 1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본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바이오 벤처가 성장하기 위해선 IPO(기업공개)를 통한 자금조달이 필수적이다. 우리 자본시장이 제도적으로 기술특례 상장을 도입한 이유도 여기 있다. 기술특례 상장은 아직 눈에 띄는 수익창출원이 없더라도 연구 경쟁력과 미래 가치를 기반으로 증시에 입성할 수 있는 제도다. IPO 과정에서 공모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상장 이후에도 보다 원활하게 증자를 통한 추가적인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 상장 전 자금을 댄 투자자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수단이기도 하다.

■기술특례상장, 바이오 성장 마중물…투자자 피해도

한국거래소가 2005년 기술특례를 도입한 뒤 지금까지 이를 활용해 상장한 기업은 150개다. 이중 바이오가 98개다. 바이오가 절반을 훌쩍 넘는 65.3%를 차지한다. 기술특례에 대해 "바이오를 위한 상장 제도"란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기술특례 상장은 우리 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수많은 바이오가 기술특례로 IPO 길이 열리면서 자금을 조달했고 연구를 진척했다. 또 비상장 바이오에 자금을 댄 투자자는 IPO로 자금을 회수하고 차익으로 바이오에 재투자했다.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면서 꽤 오랜 기간 바이오가 IPO 시장에서 대표 주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여러 바이오가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바이오에 많은 자금이 몰리며 다양한 기술이 빛을 보고 실제 임상시험에 돌입하기도 했다. 기술특례 상장의 밝은 면이다.

반면 어두운 면도 있다. 17년간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중 실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신약 개발 성과를 낸 기업은 없다. 코아스템 (11,870원 ▲170 +1.45%)의 루게릭병 치료제 '뉴로나타-알'의 국내 조건부 허가, 에이비엘바이오 (24,950원 ▲150 +0.60%)레고켐바이오 (68,200원 ▲400 +0.59%)의 글로벌 기술이전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띈다. 만족할 만한 성과로 보기 어렵다.

신약 개발 성과는 전무한 반면 투자자를 울린 종목도 여럿 있다. 특례 상장 바이오 중 인트로메딕, 디엑스앤브이엑스(옛 엠지메드), 큐리언트, 신라젠은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기업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다. 바이오를 제외한 특례 상장 기업 중 상장폐지되거나 거래정지인 곳은 없다.

상장 바이오의 주가도 엉망이다. 지난해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 11개 중 공모가 이상 가격을 유지하는 기업은 한 군데도 없다. 대부분 주가가 반토막났다. 바이오 특례 상장 기업 중 상장 당시 약속한 흑자전환을 실현한 기업도 손에 꼽는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바이오 종목 특성상 주식시장에서 여러 개인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 일부 기업은 "주가로 장난을 친다"는 의구심을 받기도 했다.

■바이오 신뢰 추락은 성과 부족 때문…높은 몸값 고집해선 안돼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K바이오에 대한 시장 신뢰는 추락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국내 바이오의 철저한 저평가는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바이오 업계 전반적으로 견실한 연구개발 성과를 확보하거나 기술 역량을 쌓는 데 소홀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바이오가 회복하려면 스스로 어떤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때다.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란 핑계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투자 업계의 바이오 한탕주의도 되돌아봐야 한다. 바이오가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때 여러 벤처캐피탈(VC)이 바이오를 단기 '먹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창업 초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할 때 수십억원 수준이던 기업가치가 2~3년새 시리즈B~C,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를 거치며 수천억원으로 뛴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초기 투자에 참여한 벤처캐피탈은 스스로 피투자기업의 가치를 뻥튀기하며 편하게 수십배, 수백배 차익을 남겼다. 이때 책정된 바이오 벤처의 높은 몸값은 지금 바이오 IPO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오 투자 전문가인 김재준 미래에셋벤처투자 상무는 "20년 가까이 특레상장 제도을 운영했지만 우리 바이오 기업 중 신약으로 승인을 받거나 실적을 제대로 내는 회사는 찾기 힘들다"며 "거기다 일부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되는 등 K바이오 투자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말했다.

IPO를 앞둔 한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의 대표이사는 "지난 몇 년간 바이오가 잘 나갈 때 우후죽순으로 생긴 많은 벤처가 모두 고평가를 받으며 돈잔치를 벌인 측면이 있다"며 "장외에서 몸값을 높인 바이오 벤처가 IPO를 못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축적됐고 지금 IPO를 못하면 존립 자체가 위험한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많은 바이오가 연구에 실패한 사례가 있지만 그렇다고 IPO 시장이 경색돼 바이오의 상장 자체를 막는다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시장에서 냉철한 시선으로 옥석을 가려 역량을 갖춘 견실한 바이오가 제때 IPO를 통해 성장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치료제 만든다더니…주가 급락에 개미들 패닉 '불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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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에서 바이오를 보는 싸늘한 시선의 바탕엔 업계의 안일함이 자리잡고 있다. 신약 개발은 성공 확률이 낮아 실패를 양분으로 발전하는 특성이 있지만, 이와 별개로 불투명한 정보 공개나 불확실한 연구에 대한 과도한 홍보 등 업계의 부실한 대처가 시장을 설득할 동력을 잃게 했단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바이오에 대한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업계가 성숙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한다더니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국내 바이오의 부정적 단면을 고스란히 노출한 사례로 남을 수 있다. 코로나19 국내 유입 이후 최근까지 주식시장에서 바이오 업종의 기업가치는 특히 변동폭이 컸다. 2020년부터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수십개 기업이 뛰어들었고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급격히 치솟았다. 하지만 성과는 초라하다. 20개 이상의 치료제, 10개 이상의 백신 후보가 임상시험계획을 승인 받았지만 현재까지 허가 품목은 셀트리온의 치료제 '렉키로나주'가 유일하다.

국산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후보 대부분이 아직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중도 포기하는 기업도 속출하면서 짧은 시간 달아 올랐던 기대감이 급격히 식었다. 해당 기업의 주가는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배 오른 뒤 지금은 고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대감에 투자한 여러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봤다.

특히 신풍제약 (13,360원 ▼120 -0.89%)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이벤트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극명히 보여줬다. 2020년 초 6000원대였던 신풍제약 주가는 '피라맥스'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같은 해 9월 21만원을 넘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임상 지연 등으로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아직 개발이 진행 중임에도 주가가 3만원 아래에 머물고 있다. 이런 롤러코스터가 없다.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가더라도 지금 개발 중인 토종 백신과 치료제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외산 백신과 치료제가 이미 시장을 선점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앞서 신라젠·헬릭스미스 사례도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지난 2월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신라젠 거래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2022.2.8/뉴스1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지난 2월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신라젠 거래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2022.2.8/뉴스1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직전에도 바이오 업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2019년은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며 '바이오 거품론'이 고개를 든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 사례는 신라젠 (4,515원 ▼10 -0.22%)헬릭스미스 (4,520원 ▼175 -3.73%)다.

신라젠은 간암 치료제 '펙사벡' 개발 성공 기대감을 바탕으로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2016년 12월 1만3500원으로 상장한 신라젠의 주가는 2017년 11월 15만원을 넘었다. 하지만 2019년 8월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의 임상 중단 권고와 함께 급락했다. 2019년 6월까지 6만원 수준이던 주가는 10월 들어 8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2020년 5월 결국 거래정지 됐다. 신라젠에 자금이 묶인 개인주주는 16만5600명에 달한다.

헬릭스미스는 2019년 9월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신약으로 개발하던 '엔젠시스'의 임상 3상이 약물 혼용 사태로 정확한 약효 확인이 불가능해지면서 17만원 수준이던 주가가 일주일만에 6만원대로 떨어졌다.

같은 해 3월에는 코오롱티슈진 (11,200원 ▼130 -1.15%)이 개발해 2017년 국내 판매허가를 획득한 '인보사'가 허가 과정에서 제출한 서류와 실제 구성 성분이 다른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국내 판매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신라젠, 헬릭스미스, 코오롱티슈진 모두 문제가 된 파이프라인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지만 기대를 한몸에 받던 시기에 비해 주가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누적된 실망감은 IPO(기업공개) 시장은 물론 주식시장에서 바이오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내 증시에서 바이오 업종을 대표하는 지표라 할 수 있는 KRX 헬스케어 지수의 경우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 붐이 반영된 2020년 12월 5600을 넘어섰지만, 줄곧 하향세를 보이다 지난 24일 2900선까지 하락했다.

■업계 자성 목소리 "시장 접근법 바꿔야…제도 지원도 필요"

올해 들어 국내 증시 바이오 기업의 주가는 처참한 수준이다. 많은 바이오 투자자가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바이오 업계는 최근 침체된 분위기를 돌아보며 자성의 시간을 갖고 있다. 장기간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산업 구조상 자본시장과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투명한 연구 과정 공개나 기술 공유 노력이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지금의 자본시장 저평가를 계기로 시장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조차 임상 3상 단계에서 60%가량이 실패할 만큼 신약 개발은 어려운 과제"라며 "어떻게 보면 일반적일 수 있는 실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데 그동안 국내 바이오의 경우 이 부분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상이 실패할 경우 '지표의 어떤 부분이 부족했지만, 이런 부분은 만족한 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완해 재도전하겠다'고 밝혀야 하는데 오히려 숨기는 데 급급해 신뢰를 잃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냉정히 돌아봤을 때 그동안 업계가 시장에 정확한 시그널(신호)을 주지 못한 셈"이라며 "최근의 얼어붙은 분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각 사별 본질을 탄탄히 다져나가면서 보다 솔직하게 시장과 호흡할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업계 자체적 노력을 뒷받침할 규제 측면의 지원사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자본시장의 신뢰를 잃을 만한 선례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다른 산업과 달리 실패를 동력으로 삼아 발전하는 바이오 특성을 고려해야 한단 주장이다. 일부 실패 사례만으로 바이오 전체를 평가해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IPO를 준비 중인 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제약·바이오의 경우 낮은 신약 개발 가능성에 기대를 걸지만, 성공할 경우 그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만큼 시장과 기업 모두의 인내심이 필요한 업종"이라며 "실패에 따른 투자 리스크는 분명하지만 최근 수년간의 경험으로 시장 역시 이를 학습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기술이전 등 성공 사례도 존재하는 만큼 규제 당국도 이 부분을 감안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현 제도 아래서 바이오 기업이 상장하려면 거래소의 평가가 중요하고, 거래소 역시 상장 이후 결과에 따른 책임론에 부담이 클수 밖에 없다"며 "결국 책임은 시장이 지는 만큼 거래소가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시장의 자정 능력을 좀 믿어주는 대신, 제도권 안에 올려 놓은 뒤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식의 고민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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