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권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대표(사진)는 25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최근 자본시장에서 외면받는 국내 바이오사들이 부활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구 대표는 2011년부터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에서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투자를 이끌어온 국내 대표 바이오 투자 대가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1999년 설립돼 현재 1조2000억원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국내 대표 벤처캐피탈(VC)이다.
최근 국내 바이오의 IPO(기업공개)는 어느 때보다 어렵다. 구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신약개발 회사들의 상장이 어려워졌다"며 "헬릭스미스, 신라젠, 티슈진 등 과거 기업가치가 수조원에 이르렀던 기업들이 연이어 임상에 실패하면서 불신이 누적된 영향 같다"고 분석했다.
공모시장을 통한 IPO나 주식시장을 통한 증자가 막히면 바이오는 '자금 부족→임상 실패' 악순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구 대표는 "미국 임상은 한국 및 미국 기업 모두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대부분 충분한 실탄을 공급받지 못해 (임상) 실패 확률이 높았다"고 짚었다.
구 대표는 특히 국내 자본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바이오 자금 조달 방편으로 IPO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다. 그래서 IPO가 막히면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은 M&A(인수합병)보다 IPO를 통해 자금회수가 이뤄진다"며 "최근 신규 투자유치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마다 생존을 위해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기술성평가에서 탈락한 모기업의 경우 '기술성평가에서도 탈락했는데 상장이 되겠냐'는 불신이 퍼지면서 직전 기업가치의 약 3분의1 가격으로 겨우겨우 증자를 했다"며 "회사 문을 닫을 순 없어 생존자금만 일단 확보한 건데 장기적으론 회사에 매우 좋지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과거 바이오가 공모시장과 주식시장에서 잘 나가던 때가 비정상적 과열 상태였던 건 아닐까. 구 대표는 "일부분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연간 500~600개 정도 기업이 창업을 하는데 이중 상장하는 곳은 30여곳 정도"라며 "기술성평가, 거래소 심사 등 과정에서 기업들이 충분히 걸러진다"고 말했다.
이어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씨젠 등도 이익이 나지 않을때 기술성평가를 받아 상장했고 현재 큰 성과를 냈다"며 ""넉넉한 자금이 계속 투하되다 보면 시장에서 임상이 잘 진행되지 않아 실패하는 기업은 자연스레 퇴출될 것이고, 투자자들이 스스로 충분히 판단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구 대표는 바이오 스스로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공모시장 위축은 바이오섹터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구 대표는 "사모시장에서 자금 조달은 지속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목표보다 기업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해도 공모하는 게 좋다"며 "공모시장에 들어가면 자금 유입이 보다 쉬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보유 파이프라인이 성장 가능성 있다, 이를 통해 더 좋은 성과로 보답하겠다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 나서야 한다" 고 덧붙였다.
바이오가 자본시장에서 부활하려면 산업 자체가 살아나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인정받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특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글로벌 제약·바이오와 협업을 강화해 기반을 다지는 게 좋다.
구 대표는 "미국에서 얼마나 좋은 임상 성과를 내느냐가 바이오 벤처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단초"라며 "성장 과정에서 미국의 좋은 인력들을 초기부터 확보해 신뢰를 쌓거나 현지 의료진, 오피니언 리더 등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약의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구 대표는 현재 국내 바이오의 역량이 미국 시장에서 어깨를 견줄만큼 뛰어나다 평가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내 바이오가 많아졌다"며 "쉽지 않겠지만 미국 제약사나 바이오텍들과 협력하고 미국 현지에서 자금 수혈이나 지분 공유를 추진하는 등 활동을 전개해 미국에서 승부를 봐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디앤디파마텍, 오름테라퓨틱스, 지피씨알 등이 미국 의대 교수들과 협업하거나 현지 법인을 세우고 글로벌 제약사 출신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며 이 같은 접근을 시도한 기업이라 설명했다.
미국 진출은 국내 바이오 산업에 장기적 이득이 크다. 구 대표는 "바이오 산업은 크게 연구와 개발로 나뉜다"며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역량은 최고지만 임상을 다인종 대상으로 진행하는 게 낫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험 역량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국내 바이오 산업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건 아니다"라며 "디앤디파마텍, 오름테라퓨틱스, 지피씨알처럼 이점이 있는 시장에서 사업화해 회사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