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1300원 턱밑인데 장사해 손해봤다"...왜?

머니투데이 유효송 기자, 박미주 기자, 김도현 기자 2022.05.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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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환율 1300원 시대?①

편집자주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보고 있다. 현실화된다면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이젠 환율이 오른다고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오른 물가에 기름을 부을 뿐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불러온 환율 상승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환율이 1300원 턱밑인데 장사해 손해봤다"...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은 줄어든다. 자연스레 무역수지는 좋아진다."

고등학교 시절 배운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았지만 수출엔 별 도움이 안 된다.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 중국의 위안화도 약세이기 때문이다.

수입도 줄어들긴 커녕 오히려 급증했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뛰어오른 결과다. 여기에 환율까지 오르면서 물가는 더욱 불안해진다. 득보다 해가 되는 원/달러 환율 1300원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1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37억 달러(약 4조72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4월 전체 무역수지 적자가 26억6000만 달러였는데, 이달엔 불과 열흘 사이 그보다 큰 적자가 난 셈이다.

이달 들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8.7%(35억8000만 달러) 늘어났음에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이 34.7%(50억9000만 달러) 급증한 때문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는 오히려 악화된 셈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280원을 넘어서며 장중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후 전 거래일보다 1.1원 내린 1275.3원에 마감했다. 종가기준으로 연저점이었던 지난 1월14일 1187.3원 이후 7% 넘게 뛰었다.

지난 1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스1지난 1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스1
통상 원화 대비 달러화 가치인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건 수출 기업에는 호재라고 알려져 있다. 달러화로 표시되는 우리나라 수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내려가는 효과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가격경쟁력이 생겨 수출 물량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반대로 환율이 내리는 건 수출에는 악재로 통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 내릴 때 총수출은 0.5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 수출 제품들이 가격보다 기술과 품질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고 있는데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공장이 늘어나는 등 글로벌 공급망도 예전보다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 역시 달러화 대비 떨어지면서 원화 가치 하락의 효과를 갉아먹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130엔을 돌파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 외환교역(거래)센터에 따르면 위안/달러 환율도 1년 6개월 만에 6.7위안대로 올라섰다.

환율이 오를 경우 원자재 비용이 커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통관 기준으로 원자재 수입액은 1년 전 같은 달 대비 52.3% 급증했다. 특히 가스와 석탄의 수입액 증가율은 각 164%, 106%에 달했다.

한 배터리 관련 수출 기업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액이 늘어날 수 있지만, 해외에서 들어오는 원자잿값 지출이 커지면서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며 "본사는 한국에 있지만 미국 공장은 달러로, 중국 공장은 위안화로 값을 치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주류수입업체 관계자는 "해외에 물건을 주문한 뒤 대금을 지급할 때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 결제할 때 부담이 커진다"며 "제품 가격을 올리긴 어려운데 비싸게 물건을 들여오다보니 수익성이 악화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도 "가뜩이나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환율 상승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기준금리를 0.5%p 인상한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갖고 “0.75%p 수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C) AFP=뉴스1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기준금리를 0.5%p 인상한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갖고 “0.75%p 수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C) AFP=뉴스1
문제는 달러화 강세 기조가 당분간 더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 격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빠르게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연준이 다음 달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환율 상승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규제 완화 등을 통해 해외 자본 유치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화 뿐 아니라 엔화와 위안화도 모두 약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에 고환율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 상황"이라며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늘리려면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만 등 여러 나라처럼 불필요한 기업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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