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 전 처음으로 '임신중절'이 허용됐다 [데이:트]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2022.05.08 09:05
글자크기

미국 '로 대 웨이드' 판결과 여성 임신중절권 ①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임신중절 합법화 판결을 내리면서, 사설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상징하는 옷걸이와 이에 작별을 고하는 벽화가 그려졌다 /AFPBBNews=뉴스1아르헨티나 대법원이 임신중절 합법화 판결을 내리면서, 사설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상징하는 옷걸이와 이에 작별을 고하는 벽화가 그려졌다 /AFPBBNews=뉴스1


102년 전 처음으로 '임신중절'이 허용됐다 [데이:트]
무슨 일이 있었죠?
미 연방대법원이 다음달 중대한 판결을 합니다. 1973년 여성의 생식 자기결정권, '임신중절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죠. '로 대 웨이드'는 임신 6개월 내 여성이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에요. 며칠 전 이 사안과 관련한 대법관 9명 중 5명의 입장을 담은 다수의견 초안이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었어요. 법안이 뒤집힐 가능성이 제기됐거든요.

지난해 9월 미국 법무부는 텍사스주 오스틴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어요. 텍사스주의 임신중절 금지법이 '공연히 헌법을 무시했다'는 이유에섭니다. 텍사스주는 성폭행, 근친상간 등의 경우에도 임신 6주가 지나면 임신을 중단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을 발효했어요. 조 바이든 행정부는 텍사스주의 이 법이 50년 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과 그 이후 쌓아온 판례를 뒤집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구성상 보수 성향으로 기운 것으로 평가돼요. 49년 전 연방대법원이 인정한 임신중절권이 부정될 수 있단 전망이 나오는 이유예요. 법이 뒤집히면 미국 각 주가 자체적으로 만들거나 발효한 임신중절 관련 규칙이 합법이 됩니다. 텍사스와 미시시피, 플로리다주 등 보수 성향의 20개 주가 임신중절을 금지할 걸로 보여요.

임신중절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려합니다. 이 역사적인 판결이 뒤집히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는 거죠. 미국뿐만 아니라 폴란드, 엘살바도르 등 일부 국가에서 임신중절권을 다시 제한하거나 기존의 제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요. 한편에선 한국처럼 여성의 결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국가도 있죠. 이번주와 다음주 [데이:트]에서는 각국의 임신중절권 논의와 상황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들여다 보면
국가별 가임 여성의 임신중절권 인정 현황/사진=Center of Reproductive Right국가별 가임 여성의 임신중절권 인정 현황/사진=Center of Reproductive Right
여성의 재생산권과 국가의 개입 간 논쟁, 20세기부터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해요. '여성의 요구에 따른' 임신중절을 가능케 한 최초의 근대 국가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입니다. 블라디미르 레닌 정권은 1920년 국립 병원에서의 임신중절을 합법화했죠.

논리는 이렇습니다. '임신중절을 금지한다고 해서 중단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여성들이 사설에서 수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거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 임신중절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간주했습니다. 모든 아이를 국가가 맡아 키울 수 있게 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사라질 무언가로 상정한 거죠.

이후 다른 국가들도 다양한 사유와 기준을 달아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제한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강간 등 성범죄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 태아의 치명적인 기형 등이 법률적인 임신중절 사유로 명시됐어요.


2021년 기준 전 세계 가임 여성의 36%인 6억100만 명은 본인의 요구에 따라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선 대체로 임신 12주 내 여성의 자율적인 임신중단은 불법이 아니예요. 현재 미국과 캐나다, 중국, 지난해부터 한국 등이 여기에 속해요. 중단 가능한 주 수를 늘리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어요.

다른 가임 여성 3억8600만 명은 사회·경제적으로 처한 상황에 따라 임신중절이 허용됩니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인도와 일본 등이 있습니다.

2억2500만 명은 본인의 건강을 위한 치료 때문에 임신 유지가 불가능할 때만, 3억6000만 명은 사망 위험이 클 때만 임신을 중단할 수 있어요.

전 세계 가임 여성 1억 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임신 중단이 불가능한 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강간을 당하거나 근친상간, 본인 생명이 크게 위협받을 경우, 태아가 심각한 기형일 경우에도 법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길이 막힌 거죠.

102년 전 처음으로 '임신중절'이 허용됐다 [데이:트]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권리는 국제 및 지역 인권 조약과 국가 차원의 헌법으로 보호되는 기본 인권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공식적으로만 연평균 2만3000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 사망하고, 수만 명이 심각한 건강 합병증을 앓는 걸로 나타났어요. 임신중절권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임신중절은 여성과 소녀의 건강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라고 주장해요.

그래서요?
지난해 9월 폴란드에서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가 태아 심장이 멈출 때까지 수술을 거부해 목숨을 잃은 여성을 기리고 임신중절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BBNews=뉴스1지난해 9월 폴란드에서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가 태아 심장이 멈출 때까지 수술을 거부해 목숨을 잃은 여성을 기리고 임신중절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BBNews=뉴스1
지난해 9월 멕시코 대법원은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한 법이 위헌이라고 했어요. 임신 초기 여성의 자율에 따른 임신중절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 멕시코 31개주 중 많은 주가 관련 법안을 완화했죠.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아 여성의 생식 자기결정권보다 태아를 우선 보호하려는 경향이 짙었어요. 그러나 최근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우루과이, 쿠바, 가이아나 등이 최근 임신중절을 합법화하는 중대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한국에선 지난해부터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어요. 1950년대부터 유지돼왔던 처벌 조항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임신중절을 재정의하고 임신중지 지원책을 논의하는 작업이 남았습니다. 임신중절이 가능한 주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여성권익단체와 종교단체 등 각기 다른 주장에 대한 수렴 과정이 필요하죠.

사설 불법 임신중절을 상징하는 옷걸이와 '이것은 수술 도구가 아니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임신중절권 옹호자 /AFPBBNews=뉴스1사설 불법 임신중절을 상징하는 옷걸이와 '이것은 수술 도구가 아니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임신중절권 옹호자 /AFPBBNews=뉴스1
미국 연방대법원이 다음 달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 미국 내 가임 여성들의 상당 수가 임신을 중단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해져요. 텍사스주는 지난해 9월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순간부터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이 발효됐습니다. 근친상간, 강간에 의한 임신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법이 발효된 후부터 텍사스주에서는 매달 평균 1400명이 임신중절을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유럽에서는 폴란드의 법이 가장 폐쇄적이에요. 산모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때, 성범죄에 의한 임신일 때가 아니면 임신중절은 '살인'으로 규정돼요. 2020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태아가 기형이라는 이유로 임신을 중단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판단하면서 규제가 더 강화됐죠. 지난해 9월엔 한 임신부가 임신 22주 상태에서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가 태아의 심장이 멈출 때까지 수술을 거부해 목숨을 잃어 전국적인 시위가 일었어요.

재생산권리센터(Center of Reproductive Right)는 임신중절 비율은 미국에서 줄어들고 있어요. 지난 2017년 기준 미국 내 가임 여성의 임신중절 비율은 1973년 임신중절권을 인정한 이후 가장 낮았는데, 이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피임약 사용 증가, 약물을 통한 자가 낙태 증가 등이 이유로 꼽힙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임신중절 금지가 보건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음주엔 이와 관련한 자료와 국가별 법 상황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