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한달에 1000만원 버는데...왜 매일 출근해요?"

머니투데이 박수현 기자 2022.05.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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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디지털 노마드 랜드③ 직장인보다 '긱 워커' 선택한 2030세대

편집자주 일자리가 아니라 일손이 부족하다. 택시 등 이른바 저소득 기피 업종의 구인난은 날로 심해진다. 반면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 플랫폼 관련 노동자는 넘쳐난다. 정해진 직장없이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며 돈을 버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의 출현과 함께 '긱 이코노미'(임시직 경제)는 어느새 현실이 됐다. 이른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의 인력난을 해결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2020년 4월6일 서울 마포구 배민라이더스 중부지사에 배달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이기범 기자 leekb@2020년 4월6일 서울 마포구 배민라이더스 중부지사에 배달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서울 강남구에 사는 입시 컨설턴트 A씨(26)는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1000만원을 벌었다. 일주일에 120시간을 일한 결과다. A씨는 "직업 특성상 시기별로 근로 시간과 소득이 크게 달라진다"며 "소득이 일정하진 않지만 적성에 맞고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데다 시간당 수입도 괜찮은 편이라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A씨는 대학 졸업 후 취업 대신 '긱 워커'(Gig Worker·초단기 근로자)의 길을 선택했다. A씨는 "공기업이나 IT(정보기술) 기업 취업도 고려했지만 건강이 안 좋아 주 5일 일하기가 힘들었다"며 "대학생 때 과외와 학원강사 일을 하던 경험을 살려 스스로 근무시간을 정할 수 있는 입시 컨설팅을 하게 됐다"고 했다.



초단기 근로자가 늘고 있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퇴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MZ세대가 사회의 중요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평생 직장'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직장 외에 다른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28일 아르바이트 채용 플랫폼 알바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근무기간별 아르바이트 공고를 분석한 결과 1일 이하 아르바이트 건수는 2020년 1분기(1월~3월) 2만6724건, 2021년 1분기 4만5822건, 2022년 1분기 8만3583건으로 집계됐다. 불과 3년 만에 초단기 아르바이트 비중이 82.4% 상승했다.



초단기 근로는 남는 시간에 하는 '부업'을 넘어 '직업'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초단기 아르바이트 플랫폼 '긱몬'이 MZ세대 구직자 11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4%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프리랜서 근무 의향은 여성 구직자(65.7%)와 남성 구직자(64.9%)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단기 근로를 선택한 이들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일반 직장인 못지 않은 수입을 거둔다고 했다. 경기 성남에 거주하는 B씨(36)는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2시간씩 배달 일을 한다"며 "근무시간을 원할 때 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아버지가 췌장암 투병 중이시고 어머니도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가볼 수 있는 일을 해야했다"고 했다.

이어 "합기도 사범, 떡볶이 식당, 택배 등 다양한 일을 하다가 돈을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배달 일을 시작했다"며 "처음 석 달은 적응기라 월 300만~400만원을 벌었지만 이제는 월 500만원을 번다. 사고로 다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영업을 할 수가 없어서 수입이 0이 되지만 대체로 고소득과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420만8000원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일반직 9급 공무원 1호봉 봉급은 168만6500원, 일반직 7급 1호봉은 192만9500원이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초단기 근로를 하더라도 공무원 봉급이나 직장인 평균 월급보다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초단기 근로자들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이 '평생직장'이 되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A씨는 "워라밸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 5일 일하는 정규직으로 취업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당분간은 계속할 계획이다. 하지만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만큼 10년 뒤에도 같은 업종에 종사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B씨도 "앞으로 최소 4~5년 정도 아버지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배달 일을 하고 싶다"며 "아버지 건강이 좋아지면 배달 일을 그만두고 오랜 시간 꿈이었던 나만의 치킨집을 운영하고 싶다. 물론 돈은 지금보다 못 벌겠지만 언젠가는 요식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환경의 변화와 단기 근로를 선호하는 MZ세대 노동자들의 성향으로 초단기 근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뉴노멀이 될 수 있는 초단기 근로시장의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술 환경의 변화와 장기 근무보다 단기 근로를 선호하는 노동자의 선호가 만나면서 초단기 근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경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며 대기업이 신규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단순노동직이 AI(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근본적인 경제환경의 변화도 단기 노동 시장 확대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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