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게으름 경제'의 위기, 게으른 정책으론 안된다

머니투데이 이정훈 한국외식경영학회 상임이사 2022.04.28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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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배달비 부담에 대한 '네 탓'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높아진 배달비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증가하는 가운데, 음식점주, 배달 플랫폼 기업, 배달 대행업체는 모두 경영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며 배달비 인상의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배달비 문제로 촉발된 각 업체의 불만은 집단행동과 법정소송으로 번질 조짐을 보인다.

소비자들은 배달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관련 기업들이 모두 손해가 늘어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배달비가 비싸면 직접 사다 먹고,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으면 팔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라며 이들의 다툼을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배달 서비스를 둘러싼 문제는 이미 외식물가의 인상과 전체 소비자의 부담 확대를 야기하고 있다.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3사는 배달비와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모든 메뉴의 가격을 인상했고, 대표 배달 플랫폼은 자사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 음식점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클릭당 과금 방식(cost per click, CPC)의 광고를 시작하였다. 결국, 다양한 메뉴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유통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과 음식점주의 이익 모두를 증진시키겠다는 배달 서비스의 혁신은 공급자, 중개자, 소비자 모두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 결과로 나타났다.

외식산업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내 외식산업은 영세한 음식점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공급과잉의 시장으로, 배달 플랫폼 내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입점 업체의 광고비와 수수료 부담이 증가하며 수익성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를 보전하기 위한 가격의 인상은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주문과 동시에 생산(조리)이 시작되며, 생산 즉시 개별 배송되어야 하는 음식배달은 규모(volume)와 밀도(density)의 경제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특성을 갖는다. 공산품의 경우 대량주문을 통해 생산효율을 높이고 배송의 밀도가 높아지면 배송시간과 노동력이 절감될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은 이러한 효과를 설계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는다. 오히려 플랫폼 기업간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으로 배달수요가 폭증하자 배달기사 공급이 부족해지며 배달비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외식 배달에 관련한 이슈는 외식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규제나 자율적 상생 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왔다. 하지만 혁신산업의 성장과 소상공인의 보호라는 상반된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며, 정부와 산업계 모두 이러한 논의를 미뤘다. 외식 배달과 관련한 외식물가의 인상, 기업간의 분쟁, 소비자의 불만에 대한 뉴스가 아쉬움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는 승자독식을 목표한 배달 플랫폼 내, 외부의 과열된 마케팅 경쟁을 통제하고 시장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또 프로세스 개선과 혁신적 기술이 마련되지 않은 채 서로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배달 플랫폼 생태계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서는 참여기업간의 공정한 거래관계와 가치배분의 기준이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편익을 증대해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던 '게으름 경제(lazy economic)'의 위기를 '게으른 대책' 으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이정훈 한국외식경영학회 상임이사이정훈 한국외식경영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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