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입찰에 이 회사 '갑툭튀'…건설사·조합이 만든 '들러리' 논란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배규민 기자 2022.03.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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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월계 동신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서울 노원구 월계 동신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최근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공사 입찰에서 '들러리' 논란이 나온 배경에는 경쟁을 피하는 업계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경쟁에 뛰어 들게 되면 홍보비용 등에 수백억원 규모의 지출이 생긴다. 이 때문에 경쟁 없이 수의계약을 맺는 사업장이 많아지고 있으나, 수의계약에 비판적인 조합이 생기면서 명목상 경쟁구도를 만드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쟁 붙으면 최소 100억…"출혈경쟁 안 한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공사를 결정한 서울 월계동신 재건축 사업장에서 HDC현대산업개발 (17,690원 ▼100 -0.56%)코오롱글로벌 (8,270원 ▼60 -0.72%)이 경쟁했으나, 실질적인 경쟁이었는지를 놓고 논란이다. 월계동신 재건축의 경우 HDC현산이 오래 전부터 공을 들여온 곳이어서 코오롱글로벌이 갑자기 수주전에 등장한 점이 의심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코오롱글로벌은 포스코건설이 단독입찰했던 노량진3구역 재개발에도 2차 입찰에 갑자기 등장하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에서 1000가구가 넘는 대형 사업의 경우 보통 2~3년 전부터 사전작업을 시작하는데, 이럴 경우 다른 경쟁사들이 경쟁에 참여하기 부담스러워한다"며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하면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 이미 불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이 없으면 2차례 유찰된 뒤 수의계약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조합에서도 경쟁 없는 수의계약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도급 순위가 낮은 업체를 들러리로 세우는 경우가 나타나는 이유"라고 했다.

업계는 소위 '들러리' 논란이 나온 배경으로 경쟁을 기피하는 업계 분위기를 지목한다. 일단 수주 경쟁에 돌입하면 홍보비용 등 최소 100억원 이상을 써야 한다. 이같은 비용은 건설사 부채로 잡히거나, 결국 공사비 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없는 경우 사업 추진비가 보통 매출의 0.5% 정도인데, 경쟁하면 무조건 두배가 돼 2%가 된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면 4%가 되니 출혈경쟁을 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용문제뿐 아니라 리스크를 피하려는 목적도 있다"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리한 공약을 던지기도 하는데 조합이 똑똑해져서 공사비를 올리기도 힘들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시공사 계약해지까지 이어질 수 있어 이같은 리스크를 아예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대단지임에도 경쟁없이 수의계약으로 시공사가 선정되는 사례들이 잇따른다. GS건설은 올해 서울 용산구 한강맨션 재건축 사업(1441가구)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현대건설도 지난해 마천4구역 재개발(1372가구) 시공권을 경쟁사 없이 수주했다.


중소형 업체들에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무조건 비판 어려워"
중소·중견 건설사가 '들러리'로 나서는 데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은 이미 시공능력 상위 5위 대형 건설사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조합은 상위권 브랜드, 더 나아가 하이엔드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 짙어졌다. 체구가 작은 건설사는 대형 건설사와 아예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다른 정비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중소형 업체들의 정비사업 수주 환경이 좋지 않으니 들러리를 서주고, 나중에 다른 사업은 확보하는 방향으로 생존전략을 짜는 것"이라며 "대형사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중소형사도 살아남을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다만 "무조건 들러리로 판단하기도 어렵다"며 "2년 전 신반포15차 재건축 수주전에 호반건설이 출사표를 던지며 이름을 알렸던 것처럼, 자신의 능력과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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