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갈등에 반도체 또 유탄맞나...살얼음판 된 '글로벌 공급망'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22.02.1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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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러 갈등에 반도체 또 유탄맞나...살얼음판 된 '글로벌 공급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교전없이 미국 등 서방국가와 러시아간 긴장 상황만 이어지더라도 원부자재 공급체인 단절 등 직접적 피해뿐만 아니라 국제정세 경직화로 인한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다. 미중 갈등과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안보적 접근으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사업 리스크가 당분간 전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14일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및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 러시아, 우크라이나 교역규모는 각각 273억 달러, 9억 달러로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 0.8% 수준이다. 절대적으로는 큰 비중이 아니지만 특정 품목, 산업 관점에서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석유와 천연가스부터 반도체 재료인 네온과 팔라듐 등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이미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원재료 수급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반도체 공급을 끊는 제재 조치를 검토하면서 러시아가 이에 대한 반격으로 원재료 수출길을 막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네온과 팔라듐은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필수 재료로 분류된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네온 가운데 우크라이나산의 비중은 23%였다. 66.6%인 중국에 이어 2위다. 2020년엔 우크라이나 수입 비중이 52.5%로 가장 높았다. 러시아는 팔라듐 수출 세계 1위 국가다. 미국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반도체 업종 지수를 대표하는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지난 11일(현지시간) 기준 4.83% 하락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네온과 팔라듐 모두 재고 상황이 충분하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의존) 비중이 높은만큼 상황이 장기화되면 영향이 없을 수 없어 예의 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 제재 강도에 따라 수출 시장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이 과거 화웨이에 가했던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을 적용하면 미국산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더라도 러시아에 수출을 할 수 없다. 반도체는 스마트폰부터 TV, 가전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항공과 해운, 석유화학 업계 등은 유가 등 에너지 가격 급등을 우려하고 있다. 늘어난 원료비 지출 부담은 수익성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 상황이 장기화되면 소비자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글로벌 2대 석유 생산국인데다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유명 금융시장 전략가인 데이비드 로시는 CNBC에 출연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14만원)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1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년만 최고가인 93.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자동차 업계도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비중이 높지 않지만 사태가 악화되면 현지 진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정부의 지원을 주문했다.

러시아로부터 선박을 수주한 조선업계 역시 미국 금융 제재로 자금 결제가 중단되면 수주 프로젝트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현지에 진출한 대표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인 칼루가와 루자에 각각 가전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 자동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기업들은 현지 생산 제품이 인근 국가 판매용인만큼 직접적 피해 규모보단 국제 정세 악화로 인한 경기 냉각 등 연쇄적 파급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가 어느 수준이 될 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커 경영판단이 어렵다"며 "매출 조정 등 단기적 효과보단 전반적 소비 침체 등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현지 코트라 무역관은 "경제제재가 현실화되면 한국의 가전, 휴대폰, 자동차와 부품 수출이 위축될 수 있고 러시아로부터 원유·천연가스·석탄 영향이,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립톤·제논 등 광물 및 곡물류 공급에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수출기업들이 교전 발발 시 위험지역인 러시아, 벨라루스와 접경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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