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팝스타' 꿈꾸는 홍석천…"바보같지만, 세상은 아직 살만해"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02.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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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 아카이브]5-④ 방송인 홍석천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찐터뷰 아카이브'는 인터뷰 전문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방송인 홍석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방송인 홍석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방송인 홍석천과는 '바디프로필 찍는 사람들'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난달 25일 서울 목동 SBS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12월 50대(1971년생)의 나이로 바디프로필을 찍어 놀라움을 줬던 바 있다.

커밍아웃을 한 후 20년 동안 유쾌한 태도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온 자존감 높은 사람. 그런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 바디프로필을 찍는 과정이 개인의 자존감에 주는 영향력을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바디프로필'에만 국한시키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바디프로필 관련 내용을 먼저 쓴 후 '방송인 홍석천 편'을 따로 구성해 지난 11~12일 세 차례에 걸쳐 '찐터뷰' 기사로 냈다.

그는 생존 본능을 갖고 특정 목표를 반드시 이뤄낸다는 근성으로 무장한 사람이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잃지 않고 있는 사람이었다. '돈'만큼 '가치'를 중하게 여기고, 어떻게하면 멋지게 나이를 들어갈까를 고민하고 있는 어른이기도 했다.



'자존감 넘치는 어른' 홍석천과의 인터뷰 전문을 다음처럼 소개한다.

- 평소에 워낙 운동을 열심히 한 이미지다.
▷"아니다. 운동은 10년 전에나 했었다. 내가 헬스장을 간 게 8~9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 몸 관리를 계속 해온 게 아닌가.
▷"이미지만 그렇다. 점점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던 중이었다. 나는 절대 살이 안 찔거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40대가 되면서 뱃살이 나오더라. 한번 나오니 기하급수적이더라."


- 의외의 답이다.
▷"나는 계획을 10년 단위로 세우는 경향이 있다. 40대 들어왔을 때 10년 동안 뭘 할까, 50대 들어오면 또 10년 동안 뭘 할까. 이런 스타일이다. 큰 계획을 10년 단위로 좀 잘라놓는다. 거기서 또 5년, 1년, 이런 식으로 계획을 잘라놓는다. 내가 40대 딱 넘어왔을 때 운동을 해야겠다 해서, 빡세게 했다. 누구에게 운동을 배운 건 아니었다. 나 혼자 열심히 헬스장 다니며 운동을 했다. 한번 몸을 만들어 놓으니 유지가 되더라. 그래서 바쁘게 일만 했다."

- 그럼 바디프로필을 찍게 된 계기는.
▷"2019~2020년 쯤에, 50대가 됐을 때,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툭 터졌다. 거리두기 때문에 운동하러 못가지 않았나. 홈 트레이닝이라도 해야되나 생각했는데, 그건 한계가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그 사이에 야식에 빠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살이 9kg 정도가 찐 거 같다."

- 방송에는 그렇게 안 보이던데.
▷"아니다. 아니다. 으하하. 그게 티가 나더라. 주변 분들로부터 '너 살쪘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나는 매일 내 모습을 보니까 살이 찐지 몰랐다. 어느날 샤워를 하다가 거울을 딱 봤는데, 팔다리가 가늘고 배가 나왔더라."

- 그거 딱 내 몸인데.
▷"그걸 'ET 몸'이라고 하잖나. 마른 비만. 그래서 '내가 뭐하는 짓이지? 관리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복부 지방이 끼니까 그동안 입었던 옷들이 안 맞더라. 옷 치수가 2~3개가 올라가니 너무 짜증나더라.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제대로 몸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화두가 '건강'으로 많이 움직이더라. 그래서 내 50대의 목표를, 아이템을 '건강'으로 잡았다."

- 그럼 20대, 30대, 40대의 키워드는 뭐였나.
▷"20대는 '데뷔'였고, 30대는 '재기'였다. 내가 서른살에 커밍아웃을 했다. 내 커리어나 명성이나, 모든 걸 잃었었다. 방송도 다 잘렸다. 복귀하는 게 목표였다. 40대의 목표는 '돈'이었다. 하하하."

- 인생의 목표가 데뷔, 재기, 돈, 건강 순으로 진행된 것인가.
▷"결국은 어른들 말이 맞는 거 같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홍석천의 바디프로필홍석천의 바디프로필
- 바디프로필은 김계란씨(구독자 360만명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 운영)와 협업을 했다.
▷"내가 유튜브 '홍석천TV'에 홈 트레이닝 코너를 하나 만들었다. 헬스트레이너 분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어려워졌다. 이 친구들과 할 수 있는 것,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생각했다. 홈 트레이닝 시장이 커지니까, 나와 협업을 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템을 만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김계란씨와 연결이 됐다. 방송을 한번 같이 찍었는데 그게 너무 대박이 났다. 조회수가 너무 높았다. 같이 하면 재미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프로틴스101'이라는 연예인·셀럽들 몇 명의 몸 바꾸기 프로젝트를 했다."

- '프로틴스101'은 목표가 처음부터 '바디프로필 찍기'였나.
▷"그렇다. 101일 동안 추진하는 거여서, '101'였다. 지난해 9월쯤부터 해서 12월 말에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 바디프로필을 찍는 것과, 그냥 운동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같다.
▷"그렇다. 다르다. 일단 내 나이가 장벽이었다. 그리고 너무 바빴다. 드라마 스케줄과 겹쳤다. '내가 가능할까?' 이런 생각도 했는데, 기왕에 마음 잡은 거 밤새서라도 하자 해서 도전을 하게 됐다. 다행인 게 촬영장 스튜디오를 김계란씨가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 수시로 들어가 운동할 수 있게 만든 곳이었다. 거기서 새벽 1~2시에도 운동을 하고 아침 6시에도 운동을 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했다."

- 바디프로필을 준비할 때 하루에 몇 시간씩 운동을 했나.
▷"2시간 반에서 3시간 씩 했다. 거기에 식단관리를 더해서 한다. 식단이 너무 힘들었다."

- 식단이 어려웠던 이유는.
▷"체지방을 쫙 빼야 했다. 기존에 먹고 있던 찌개류, 분식류, 밀가루류를 줄였다. 밥도 반 공기, 3분의1 공기, 그러다가 4분의1 공기까지 줄였다. 촬영 3~4일 전에는 아예 밥을 먹으면 안 됐다. 물하고 닭가슴살 조금하고 고구마·생선 조금, 이런 식으로 준비했다. 식단만 관리해도 복부의 살이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아 그게 그렇게 되나.
▷"식단조절만 해도 4~5kg은 빠질 거다. 먹는 걸 좀 줄이면 된다. 찌개 보다는 구이 쪽으로 먹으면 된다. 소고기 구이도 좋다. 돼지고기는 삼겹살 말고 그냥 살코기만 먹는 게 좋다. 나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채식을 한다."

- 바디프로필 찍을 때 식단과 지금의 차이는.
▷"먹고 싶은 것을 좀 먹는다. 일단 이미 양이 좀 줄었다. 먹는 양이 줄어든 것이다. 내가 과하게 먹으면 다시 살이 찔 것이라는 걸 안다. 내가 정말 어렵게 몸을 만들었다. 정말 미친놈 처럼 만들었다."

-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이제 50대이지 않나. 바디프로필 찍은 다른 친구들은 20대였다. 20대들은 운동을 조금만 해도 살이 쫙쫙 빠지고 근육도 생기더라.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너무 어렵게 몸을 만들었으니, 다시 돌아가는 게 너무 억울하다. 바디프로필 찍기 위해 운동을 할 때 몸무게 78kg으로 시작했다. 목표는 10kg을 빼는 것이었다. 바디프로필 찍던 날 66kg였다. 지금은 68kg쯤 된다. 이제 목표는 70kg을 안 넘기게 유지하는 것이다."

- 라이프 스타일은 어떻게 바뀌었나.
▷"너무 많이 바뀌었다. 몸이 가벼워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다. 계단에 오를 때도 완전히 다르다. 그 전에는 계단으로 2층을 올라가는 것에도 헥헥거렸다. 그런데 뱃살을 빼고 몸을 만드니까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도 아무렇지가 않다. 지금은 헬스장을 가진 않는다. 집에서 스쿼트, 윗몸일으키기 이런 것들을 조금씩 한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조금씩만 운동을 해도 잡히는 느낌이 있다."

- 얘기를 듣다 보니 여러가지로 의외다.
▷"이전에 가게를 할 때는 너무 일중독이었다. 40대에는 '노는 게 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프도 안 치다가 요즘들어서야 시작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게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남은 시간을 방송에 재투자했다. 그 와중에 몸 만드는 시간 2~3시간을 투자한 것이었다."

- 바디프로필을 찍는 과정이 자존감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자존감이 살짝 낮아진 것을 느꼈다. 끝까지 이태원 가게 하나를 정리 안 하고 갖고 있었었다. 나는 '쟤 망했어' 이런 얘기 듣는 게 제일 싫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이태원 클럽이 문제가 됐었지 않나. 한 달에 3000만~4000만원씩 손해가 났었는데도 그걸 잡고 싶었다. 그건 자존감 때문이다. 그걸 지키고 싶었다."

- 그 가게를 2020년 9월 정리한 이후 자존감이 떨어진 것인가.
▷"그걸 마지막에 놓고 나왔을 때 내가 얼마나 무너졌겠나. 그래서 한동안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나를 좀 놓고 있었다. 심해지면 공황장애까지 갔을 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좀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렇게까진 안 갔다. 대신 내 자존감을 다시 찾아야겠다 생각해서 선택한 첫 번째가 '몸'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바디프로필'은 목표였다. 그게 없으면 내가 게을러 지거나 포기할 수 있느니 아예 약속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계란씨와 약속을 했다. '바디프로필을 2021년 12월 말에 죽어도 찍겠다'고. 나는 목표를 두고 해야 잘 하는 타입이다. 그 과정에서 낮아진 자존감을 또 찾았다."
방송인 홍석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방송인 홍석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바디프로필을 찍는 과정에서 자존감 향상이 몸으로 느껴졌나.
▷"그렇다. 사진 찍는 작가의 '너무 좋다'는 그 표정이 있었다. 작가의 반응이 '우와' 이거였다. 주변 사람이 '우와 우와' 하더라. 이래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이런 벗는 사진을 올리는구나 생각했다. 으하하하.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노력에 대한 피드백을 얻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 바디프로필 이후 목표가 있다면.
▷"나는 원래 수영장을 좋아한다. 물을 좋아한다. 해외 여행을 가도 호텔 수영장, 바닷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내가 수영장을 안 가게 되더라. 양양 서피비치가 너무 핫하다고 하는데, 나는 안 갔다. 뱃살을 보여주기 싫었다."

- 이제 가는 건가.
▷"아 그럼요. 거리두기 상황을 봐서 이제 갈 것이다. 가서 바닷가에서 바디프로필 화보도 찍어보고 싶다."

- 추가촬영 계획이 있나.
▷"바디프로필을 스튜디오 안에서 추우니까 그냥 찍었다. 이제 봄, 여름이 오면 야외에서 찍으려고 한다. 사진찍는 분들에게 굉장히 연락이 많이 온다."

- 사업가 다운 면모도 보인다.
▷"이 '건강' 카테고리를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도 있다. 기왕에 바디프로필로 증명했으면 비즈니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 카테고리 비즈니스를 온·오프라인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50대의 화두 '건강'은 비즈니스와 연결된다."

- 50대에 바디프로필을 찍은 것도 대단한데, 사업까지.
▷"마켓이라는 게 있다. 머리를 써보자. 20대 아이돌들은 몸이 다 좋지 않나. 40대에는 김종국이 있다. 김종국은 내가 못이긴다. 그런데 50대는 무주공산이다. 이 마켓은 내가 먹을 수 있다."

- 언젠가 방송에서는 엔데믹이 오면 몸은 이미 만들었으니 해외 게이클럽 투어를 다닐 거라고 했더라. 그냥 던진 게 아닌거 같다.
▷"하하하. 그건 좀 펀(fun)한 의도다. 나는 절대 그냥 던지는 게 없다. 던져놓고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올해 새 프로젝트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엔데믹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치료제 나온 후 생각한 것이다. 오미크론 유행 상황이 조금 지나면 각국이 빗장을 풀기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생각이 거기까지 갔나.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콘텐츠를 준비할 수 있을까. 내가 어릴때부터 꿈이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노래를 잘 못하지만, 좀 재밌게 할 수는 있다. 그래서 노래를 한번 해볼까 한다. 춤은 내가 잘춘다. 우리가 매주 클럽가서 놀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걸 코로나19 때문에 2년 동안 못했다. 응축된 에너지가 있다. 이걸 어딘가 풀어야 한다. 오케이. 그럼 프로젝트를 던져보자.

- 노래를 낸다고?
▷"노래를 하나 만들고 있다. 제목이 '게이팝스타'다. 지금 가이드가 나와있다. 이걸 내 스타일로 바꾸려고 다시 만들고 있다. 앨범도 만들 거다. MZ세대 트렌드를 입히기 위해 앨범 자켓에 NFT(대체불가토큰)를 넣을 것이다. 앨범은 노래와 춤을 연습해 오는 5월쯤에 낼 것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 낼 거다. 되게 재밌을 거다."

- 아까 사업을 정리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졌었다고 했다.
▷"전국 백화점 매장까지 하면 매장이 제일 많을 때가 12~13개쯤 됐던 거 같다. 가게를 정리했더니 사람들이 괜찮다고 위로하더라. 그런데 당연히 안 괜찮다. 이태원에 가기도 싫었다. 보기도 싫더라. 우울해지더라. 내가 강철 마인드라 해도 너무 당연한 거다.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이 어마무시했다."
자신의 과거 이태원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은 홍석천/사진=인스타그램자신의 과거 이태원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은 홍석천/사진=인스타그램
-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거꾸로, 나한테 한 번 쉬어보라는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못쉬고 달려왔다. 너무 사업을 확장하다보니까 스트레스가 어마무시했다. 가게를 12~13개 갖고 있으면 뭐하나. 가게가 많으면 많을 수록 스트레스만 늘었다. 그걸 한번도 풀지를 못했다. 과부하가 왔다. 몸에 병이 났다."

- 몸이 안 좋았나.
▷"2018년쯤에 죽을뻔했다. 패혈증이 왔다. 결국에는 병원에 실려갔다.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까지 했다. 의사가 '홍 사장님 하루만 늦었어도 죽을 확률이 90%였어요'라고 하더라. 왜 미련맞게 그렇게 살았을까. 그래서 가게를 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거나, 골치가 아프면 정리하자고 했다. 이태원 가게 하나 남겨놓고 그 사업에 집중해보려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것이다."

- 가게를 정리하고 좀 쉬었나.
▷"더 바빴다. 방송이 더 잘 되더라. 그리고 온라인 시장이 커지겠다 싶어서 시작한 '홍마담 샵'(온라인 몰)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처음보다 그 규모가 10배 커졌다. 되게 바빠졌다. 이제 내 올해 계획은 이태원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 인스타그램에 이태원으로의 귀환을 쓴 걸 봤다.
▷"이제 황태자가 귀환해야겠다('이태원 황태자'는 그의 별명이다). 이태원을 다시 살려야겠다. 이태원에 내 공간이 하나 있다. 40평 정도 된다. 식당을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굳이 이 어려운 시기에'라고 하더라. 거기에 오미크론도 터졌다. 식당을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 그럼 무엇을 만드나.
▷"세상이 코로나19로 너무 바뀌었는데, 외식업은 안 바뀌었다. 창업하려는 사람들은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 똑같이 창업한다. 그래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제로 '이태원 마켓'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온라인에 이걸 팔고, 오프라인에는 팝업으로 상품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다.

-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예컨대 지방에서 특산물을 홍보하고 싶으면, 그분들은 채널이 필요하다. 돈을 너무 많이 써서 광고하잖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태원에 있는 내 공간에 한 달이든 세 달이든 팝업을 해드릴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이 여기에서 그 특산물을 체험하고, 매출은 온라인으로 올릴 수 있다."

- 오픈 키친 같은 거도 있는 건가.
▷그런 거도 있다. 그런 게 진정 자영업자들을 도와주는 일이라 본다. 한 20대 창업자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잘 하는 메뉴가 있을 거 아닌가. 그럼 나와 유튜브를 찍고, 스토리를 설명하고, 브랜딩을 만들어줄 수 있다. 창업자가 무슨 상품을 만들면, 내가 온라인으로 팔 수 있다. 내 밑에 있던 직원 하나가 지금 조그만 카레 가게를 열었다. 이 녀석이 밀키트를 만들었다. 너무 맛있더라. 그래서 2월 말에 '이태원 마켓'을 오픈할 때 그거부터 팔 것이다.

- 이태원 얘기할 때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하다. 아까는 이태원이 싫어졌었다 하지 않았나.
▷"애증이 있는 거다. 완전히 싫어진 게 아니다. 미운 거다. 나의 30~40대, 20년을 거기서 보냈지 않나. 하하하. 행복한 기억들이 있다. 내 제2의 고향이다."

- 이태원이 홍석천에게 왜 그렇게까지 각별한가.
▷"내가 한양대 다닐 때 큰누나 집에 얹혀 살았다. 졸업하고 나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이태원에서 좀 놀던 기억이 있었다. 싼 곳이 어디냐 물었더니 보광동 아니면 경리단길이라 하더라."

- 그땐 경리단길 집값이 쌌나보다.
▷"그랬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2만원 반지하방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돈 좀 벌어서 2층으로, 1층으로 갔다. 20대 후반에는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떴다. 28세에 버티고개에 있는 27평 짜리 아파트를 샀다."

- 그런 게 다 추억이구나.
▷"추억이다. 이태원은 나같은 사람을 받아주는 동네였다. 내가 느끼기에 유일하게 숨 쉴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돈 벌려면 이태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약간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나는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다. 많이 벌 능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치가 있어야 한다. 다른 곳에 가게를 하나 멋있게 만드는 게 무슨 의미인가. 나에게는 이태원이 굉장히 큰 의미다. 나를 품어주고 나를 살려준 동네가 이태원이다. 내가 여기를 배신하고 딴 곳에 가서 돈을 벌고 잘나가고, 이게 안 된다.
홍석천이 이태원 가게 문을 닫았을 때 인근 상인이 남긴 현수막. '"누가 뭐래도 영원한 이태원의 전설"/사진=인스타그램홍석천이 이태원 가게 문을 닫았을 때 인근 상인이 남긴 현수막. '"누가 뭐래도 영원한 이태원의 전설"/사진=인스타그램
- 이제 좀 이해가 간다.
▷"되게 묘한 구석이 있지 않나. 내가 시골촌놈(충남 청양 출신)이라. 약간의 의리가 있다."

- 보통 자존감 넘치는 삶이 아닌거 같다.
▷"내 인생은 시골 촌놈, 흙수저의 성공 도전기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결실이 없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촌놈이 성공하겠다고 19세 때 올라왔다. 얼마나 별의 별일들이 다 있었겠나. 거기서 견뎌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나는 정말 절박했다."

- 절박함 하나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데.
▷내가 되게 긍정적인 건 맞다. 은근히 통이 크다. 쪼잔한 면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휴지통 같은 기능이 있다. 기억을 잘 못한다. 예전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을 못한다. 나한테 안 좋은 기억, 안 좋은 일들, 안 좋은 사람들…스스로 기억에서 지우기를 했나보다. 돈을 빌려갔다가 떼어먹은 애가 몇 년만에 와서 '형 미안했어요' 그러면, 얘가 나한테 얼마나 큰 실망감을 줬는지는 기억이 안 나더라. 그럼 그 사과를 받아준다. 희한하다."

- 지난해 11월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나는 석천이 형 만큼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싸워본 적이 있었나"라는 정형돈의 말에 오열을 했었다.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났다. '왜 내가' 혹은 '내가 안 해도 되는데'와 같은 내적 싸움과 갈등이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면 처음에는 다 답을 해줬다. 그거 하느라 내가 잠을 못자고 불면증까지 왔다. 내가 아직까지도 바보같은 순수함이 있나보다. 세상은 살만하다는. 그런데 내 생활이 망가지는게 문제였다.

- 그 문제는 해결을 했나.
▷"카테고리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돈 달라는 사람은 스킵한다. 대신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어린 친구들, 성 정체성 때문에 죽겠다는 어린 친구들. 이런 친구들까지 내가 답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이게 보통 힘든 게 아니긴 하다."

- 그럴 거 같다.
▷"나는 또 직접 만나기도 한다. 당사자도 만나고. 주변 사람들도 만난다. 어머님·아버님이 먼저 연락할 때도 있었다. 아이 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밥먹으로 가자'고 한 후 나에게 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나를 보면 놀라서 도망가려고 한다. 그럼 그걸 잡고 얘기하자고 한다. 그리고 사는 얘길 그냥 한다. 그럼 너무 고마운 일들이 벌어진다. 자식을 이해 못하는 부모님들이 '홍석천씨 덕에 우리 아이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고 하더라. 아이들은 그 누구에게도 얘기 못하고, 죽고 싶었는데, 부모님 생각이 확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 눈물의 이유가 생각보다 더 멋있다.
▷"공포스러운 내일이, 이야기를 하는 오늘이 되더라. 그러니까 너무 좋더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도 몰라주겠지라 생각했다. 알아줘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랬었다. 그런데 정형돈이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얘길 할 때 한 번에 무너지더라. 그 눈물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내가 힘들고 죽고 싶을 때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이 동생들은 나라는 사람이 있으니까 연락을 주는 거 아닌가. 내가 이걸 뿌리치고, 힘들다고 하는 게 안 됐다."
지난해 11월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눈물을 흘린 홍석천/사진=채널A지난해 11월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눈물을 흘린 홍석천/사진=채널A
- 다시 바디프로필로 돌아가보자. 주변 50대들에게 추천할 수 있나.
▷"너무 추천이다. 욕심을 내지 않으면 된다. 2030세대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 내 인생에 한번쯤의 정말 멋진 몸, 내 노력의 결과물이면 된다. 식스팩 필요없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50대를 넘어가면 우울해진다. 불안함이 커진다. 신체적 에너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한 걸음 나가는 도전을 못한다. 그런데 시간을 2~3개월이라도 들여서, 도전을 해서, 작은 결실을 만들면 '나도 할 수 있네'라 생각하게 된다. 이게 되게 중요한 거다. 멋지게 나이가 먹어가는 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 어려운 주제다.
▷"너무 어렵지."

- 그래도 멋지게 나이를 먹고 계신 거 같다.
▷"나 괜찮죠?"

- 꼰대가 되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을 요즘 기성세대가 많이 하는 거 같다.
▷"그런데 그 얘기는 또 다르다.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40대 넘어가면 '나는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도, 사실 꼰대가 된다. 나도 꼰대다. 꼰대인데, MZ세대와 소통이 잘 되는 꼰대면 되는거 같다."

- 꼰대가 아닌 걸 부정하면 그게 꼰대라고 그러더라.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다 꼰대라는데 나만 꼰대가 아니라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꼰대라는 단어가 좋은 의미가 아니어서 잘 안 쓰려고 한다. 멋진 어른, 이야기가 통하는 어른이 되면 만족한다."

- 맞는 말이다.
▷"가끔은 거꾸로도 얘기한다. MZ세대라면 뭔가 놀라운 상상력, 비전, 창의력, 이런 걸로 도전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냥 뭣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너무 많다. 사회에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그 지혜로움을 꼰대들에게 뺏어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MZ세대가 가져야 할 슬기로움이다. 그게 아니고 '내가 MZ세대'야 이것만 말한다? 정신차려. 너네도 금방 30대 40대 넘어 꼰대가 된다."

- 시간은 정말 금방 가는 거 같다.
▷"MZ세대면 뭔가 MZ세대 다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움도 없이, 실업급여를 얼마를 받고, 놀고, 그러면서 성공할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언제 일을 하나. 나는 혼도 내주고, 얘기도 들어주고, 내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있는 사람을 갖다 붙여서 '얘들아 이게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로움이야'라고 해주고 싶다. 그런 길을 터주고 싶다."

- 50대에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자기 최면이 있어야 한다. '나 아직 괜찮아. 다시 출발해도 돼. 아직 바닥까지 안 내려갔어' 같이 희망이 있다는 자기 최면. 그렇다고 자기 최면만 하면 안 된다. 준비를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나는 그 실행의 방법 중 하나로 바디프로필을 도전했다. 이태원에 귀환하는 것도 다시 도전을 해본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이태원에 다시 돌아갈거야'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실패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도전을 해보는 거다.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겠지."

- 들어보니 바디프로필이 인생의 분기점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맞다. 정신을 차렸을 때 시작한 거니까. 30대와 40대, 20년을 거의 미친놈처럼 워커홀릭으로 살았다. 내가 열심히 일을 안 하면 보수적인 나라에서 인정도 못받고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해외로 도망가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절실함이 있었다. 그래서 일만했다. 내 스스로 즐긴 적이 없었다."

- '사회적 존재 홍석천'이 아닌 '인간 홍석천'을 위한 프로젝트를 50대 들어 처음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 그 전까지 나를 위해 프로젝트를 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이런 게 없었다. 내가 나에게 너무 인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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