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7000원은 내도 3800원 못내…말 다리 잡아챈 KBS, 수신료 발목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22.01.29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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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논란…수신료에 '불똥'

서울 여의도 KBS 본사. 2021.06.30.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여의도 KBS 본사. 2021.06.30. /사진제공=뉴시스


KBS가 6년 만의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으로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정통 대하 역사 드라마' 제작이 최근 국회에 제출된 KBS 수신료 인상안의 명분 중 하나였는데, 야심차게 내놓은 태종 이방원이 연초 10%대 시청률로 인기몰이를 하다 최근 '동물학대'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어서다. 덩달아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여론도 싸늘해지고 있다.

KBS "수신료 2500→3800원 인상해야"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KBS의 수신료 조정안은 지금의 월 2500원보다 52% 많은 380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국회의 승인 절차만 남았지만, 오는 3월 대선에 따른 새 정부 출범과 6월 지방선거 등 빠듯한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국회 논의가 속도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굳이 정치일정이 아니더라도, 여론에 민감한 국회로서 KBS 수신료 인상안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수신료 조정안을 제출한 방통위조차 국회 통과 가능성을 낙관하진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작년 마지막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참석자들은 KBS의 자구 노력이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한상혁 방통위원장도 "수신료를 현실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모든 위원들이 공감하는 것 같지만 시행시기, 방법은 의견차가 있는 것 같다"며 "수신료 인상은 국민과 직결되는 문제인만큼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논의의 전제조건인 '여론'도 싸늘하다. 최근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논란이 비판 여론을 부채질했다. KBS는 2016년 '장영실' 이후 5년만에 선보인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을 계기로, 올해를 대하사극 부활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 혀왔다. 대하사극을 방송 공영성의 상징으로 삼아 시청자들의 지지를 유도하고, 동시에 수신료 인상 논리에도 힘을 싣겠다는 포석으로 보였다. 실제로 오는 2026년까지 대하사극 제작에 23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 7회, 이성계가 낙마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제작진이 말의 다리에 줄을 묶어 넘어뜨린 사실이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공개되며 큰 비난을 받았다. 사고의 여파로 말은 1주일 뒤 죽었고, 말에 탔던 스턴트맨도 부상을 당했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는 태종 이방원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태종 이방원 방송 중지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랐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이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별관 앞에서 '드라마 태종 이방원 말 사고 논란'과 관련 추가 고발 2차 기자회견을 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01.26./사진제공=뉴시스한국동물보호연합이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별관 앞에서 '드라마 태종 이방원 말 사고 논란'과 관련 추가 고발 2차 기자회견을 한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01.26./사진제공=뉴시스
3800원 수신료 안 내도, 1만7000원 넷플은 본다
지상파 TV를 보지 않는데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는 지갑을 쉽게 여는 시청패턴의 변화는 여론의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민생경제가 어려운 탓에 여론이 '준조세' 성격의 KBS 수신료 인상을 반기지 않는 반면 수신료보다 몇 배나 비싼 OTT에는 너그럽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OTT 넷플릭스는 4인 가족이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프리미엄' 요금제는 1만7000원이다. KBS가 수신료가 계획대로 인상된다 해도, 그보다 4.5배나 비싼 금액이다.


그럼에도 값비싼 OTT에는 이용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린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1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유료로 OTT를 이용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만 13세 이상 남녀 6834명)의 34.8%에 달했다. 특히 증가속도가 놀랍다. OTT 유료 이용자는 전년(14.4%) 대비 1년 새 무려 20.4%포인트(p) 늘었다. 월 1만원 안팎을 내고 OTT 보는 사람이 100명 중 15명에서 35명까지 1년 만에 급증한 것으로, TV 시청자의 저변이 그만큼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현실화 필요…고개 숙이는 KBS
민심 이반을 부르는 사건·사고에 더해 KBS의 필요성 자체에 회의적 시선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수신료 인상안의 국회 통과는 첩첩산중이다. 그럼에도 국가 재난방송과 지역방송의 거점 역할, 여러 소수자를 위한 방송의 포용성 확대 등 공영방송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 기반이 수신료인 만큼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맞서고 있다.

동물학대 사고에 대해서도 KBS는 연거푸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KBS는 지난 20일과 24일 두 차례나 사과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김의철 사장이 직접 지난 26일 이사회에서 '태종 이방원'은 방송 5주 만에 전국 기준 평균 시청률 10%를 넘어서면서 시청자 호평과 함께 수신료 가치를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난해 11월 촬영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며 "회사 측은 최선을 다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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