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빠져죽자던" 대한민국 첫 쇳물, 포스코 1고로의 퇴장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2021.12.21 05:05
글자크기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 /사진=포스코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 /사진=포스코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인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가 이달 말 퇴장한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 생산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1고로의 퇴장을 계기로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철강업계의 체질 개선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20일 포스코에 따르면 포항제철소 1고로는 오는 29일 쇳물 생산을 중단(종풍)한다. 1고로는 한국 산업사의 기념비적인 설비다. 1973년 6월 9일부터 50년 가까이 쉼 없이 쇳물을 뽑아내 '한강의 기적'의 토대를 닦았다. 철강업계는 1고로가 처음으로 쇳물을 생산한 이 날을 '철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치르고 있다.



1고로는 종풍 후 기념관으로 재탄생해 민간에 개방된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달 경북 포항시 환호공원 '스페이스 워크' 제막식에서 "종풍 예정인 1고로가 기념관으로 탈바꿈하면 Park1538(포스코 기념관), 스페이스 워크 등과 더불어 포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

1고로는 1970년 4월 착공해 1973년 3월 준공했다. 준공 후 화입 등 쇳물이 생산되기까지 또 3개월이 소요됐다. 대일청구권 자금 8000억원 중 1200억원이 포항제철소 조성과 1고로 건립에 사용됐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 규모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자금조달부터 1고로 착·준공, 쇳물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박 명예회장은 1969년 포항시 대잠동에 영빈관(현·영일대호텔)을 짓고 이곳에서 숙식하면서 제철보국의 꿈을 키웠다. 직원들에게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립 실패는 죄 짓는 일"이라며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고 할 정도로 절실했다. 1고로의 성공을 계기로 포항제철소에만 3기의 고로가 신설됐으며 전남 광양(5기), 충남 당진(현대제철·3기) 등 전국에 고로 12기가 마련됐다.

포스코는 이중 총 9기의 고로를 보유하고, 연간 4000만톤 이상의 조강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5위 철강사로 거듭났다. 1고로가 퇴역해도 포스코의 생산량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1고로 종풍으로 연간 100만톤 규모의 생산량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타 고로 증산 등이 병행돼 실제 조강생산량 감소량은 소폭에 그칠 것"이라 말했다.

/그래픽=포스코/그래픽=포스코
1세대 고로의 퇴역은 우리 철강업계가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시점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업계는 탄소배출이 많은 고로 신설 없이 기존 고로의 수명을 연장해 전환기에 대응하고,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새로운 친환경 생산환경을 수립해 궁극적으로 수소환원제철 도입을 통한 탄소중립 청사진을 실현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이란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공법이다.


포스코는 현재 수소환원제철에 근접한 파이넥스 기술을 보유했다. 파이넥스 공법은 철광석·유연탄 등을 가루 형태로 사용해 환경오염물질을 대폭 감축하는 기술이다. 기존 용광로 대비 황산화물(SOx)·질산화물(NOx)·비산먼지 배출량이 각각 40%, 15%, 70%에 불과하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기술력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화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지난해까지 광양제철소 고로 개보수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원료비를 절감시킨 스마트·친환경 고로로 재탄생시킨 데 이어 오는 2025~2030년 사이에는 포항 파이넥스 설비의 개수작업을 예고했다. 또, 2027년까지 포항·광양에 각각 1기씩의 전기로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탄소배출을 낮추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은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당진제철소 소재 3기의 고로의 보수작업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를 통해 설비 효율의 제고와 친환경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통상 수명이 15~20년 수준인 고로가 반세기 가까이 유지될 수 있던 배경에는 뛰어난 기술력이 수반됐기에 가능했다"면서 "1고로 수명 연장 역시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저탄소·친환경 시대로의 대전환에 발맞춰 생산량·경제성 등을 고려한 종풍"이라고 시사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