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경제안보보다 예타가 우선이라는 기재부

머니투데이 이정혁 기자 2021.12.15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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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석유보다 중요하다."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장관이 최근 중도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CNAS(신미국안보센터) 대담에서 강조한 말이다. 중국과 기술전쟁이 가열되는 상황인 만큼 반도체 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반도체 업계에 최소 220억달러(약 26조원)를 지원하는 '칩스 포 아메리카'를 초당적으로 제정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는 자국 기업이 아닌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2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을 약속한 것만 봐도 반도체 산업에 얼마나 무게 중심을 두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구 반도체특별법)이 상정되지 못했다. 대선 국면에서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여야 의원이 모처럼 합의한 법안인데다 우리나라가 미·중 기술전쟁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들다.

집권 여당 대표 명의로 발의한 특별법이지만 기획재정부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제2의 반도체 도약을 일구는 것이 절실"(11월18일), "(특별법) 주무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로 확실히했다"(10월5일) 등의 발언으로 연내 국회 통과를 기정사실화했지만 막상 법안 심사가 시작되자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등을 문제 삼아 결국 무산시켰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한 번도 추진해보지 않은 정책이기 때문에 향후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경우 책임지지 않겠다는 보신주의와 함께 부처 기득권은 어떤 식으로든 사수해야한다는 논리가 녹아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달 임시국회 내 특별법이 통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기재부안대로 수정된 탓에 '안 하느니만 못한 특별법'이 될 공산이 크다. 여러 바뀐 조항이 EUV(극자외선) 등 초미세공정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구도가 기업간 경쟁에서 국가간 대결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경제안보보다 예타를 앞세운 '기득권 지키기'가 우선인지 기재부에 묻고 싶다.
[기자수첩]경제안보보다 예타가 우선이라는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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