붱철 조교, 펭수 잇는 EBS 간판 스타 되나?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12.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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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딩동댕 대학' 방송 화면 캡처사진출처='딩동댕 대학' 방송 화면 캡처


210㎝ 키의 크리에이터 펭귄, ‘펭수’의 등장은 대한민국 방송가의 많은 것을 바꿨다. 2019년 마침 유행이 된 ‘부캐릭터 열풍’과 함께, 이전에는 그냥 수많은 탈을 쓴 동물 캐릭터 중 하나였을 펭수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고, 독자적인 캐릭터를 갖는 하나의 인격체가 됐다.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펭수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은 바람직하지 않다. 펭수는 그냥 펭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형을 이용한 부캐릭터 창조에 노하우가 생긴 EBS는 지난 3월 또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같은 조류다. 이번에는 부엉이다. EBS의 유튜브 채널 ‘딩동댕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는 ‘붱철’이다. 소리소문 없이 입지를 넓힌 붱철 캐릭터는 펭수에 이은 또 다른 EBS 출신 ‘조류스타’의 계보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



‘딩동댕대학교’는 EBS의 전통적인 유아 프로그램 ‘딩동댕유치원’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예전에도 딩동댕유치원에 다녔던 유아들이 이제 대학생 이상의 나이가 됐을 것을 가정하고 다양한 교양강좌를 방송하고 있다. 크게 ‘교양강좌’와 ‘연애톡강’으로 나뉜다. 조교로 활약 중인 붱철은 교양강좌의 멤버로 코끼리인 ‘낄희’ 교수의 밑에서 대학원생으로 일하고 있다.

EBS가 보여주는 펭수와 붱철의 전략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은 것은 둘 다 인형을 대표해 부캐릭터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둘은 단순히 ‘딩동댕 유치원’에서 나오는 다른 인형 캐릭터들과 다르다.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닐 경우에는 화를 내면서 단호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착한 캐릭터로만 한정돼야 하는 기존 유아 인형 캐릭터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EBS를 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사진출처='딩동댕 대학' 방송 화면 캡처사진출처='딩동댕 대학' 방송 화면 캡처
하지만 펭수는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를 하는 형태의 캐릭터지만 붱철은 이른바 ‘인형사’로 불리는 스태프가 손을 이용해 움직이는 형태다. 그리고 캐릭터성이 강한 펭수와 달리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붱철이 진행하는 ‘얼어죽을 붱철쇼’는 누리꾼의 사연을 받아 붱철이 나름의 해법을 내주는 모습이다. 이 사연들은 단순히 학생들의 사연이라고 하기에는 나이대가 높다. 단순히 같은 대학원생들의 넋두리부터 직장인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의 사연까지 소개된다. 붱철은 이러한 사연을 듣고 공감도 하고 재치를 바탕으로 해법을 내놓으며 웃음을 준다.

그리고 아직 연기자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드러내려고 생각지도 않는 펭수에 비해 붱철 캐릭터는 KBS 공채 개그맨 이재율이 목소리 연기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펭수의 연기자를 둘러싼 지나친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적당한 신분공개를 통해 캐릭터와 만나는 문턱을 낮췄다. 게다가 펭수와는 사장과 연습생의 관계에만 머물렀던 김명중 EBS 사장이 사실은 붱철의 삼촌이었다는 설정이 더해져 긴장감도 높였다.


이 모든 세계관의 구성은 펭수를 만들었던 제작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펭수의 실질적인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을 했던 이슬예나, 박재영PD가 ‘딩동댕대학교’ 창설에 큰 몫을 했다. 실제 박재영PD는 펭수와의 인연으로 최근 화제가 된 붱철과 펭수의 합동방송을 주도하기도 했다. 기존 EBS 콘텐츠가 경직됐고 고루하다는 선입견을 하나씩 깨나가며 새 지평을 열고 있는 두 사람은 ‘병맛’ 코드에다 아동전문가 오은영 박사를 출연시켜 높은 경지의 해결능력도 보강했다. 벌써 팬들은 ‘딩대’에 열광하며 다음 학기, 다음 강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출처='딩동댕 대학' 방송 화면 캡처사진출처='딩동댕 대학' 방송 화면 캡처
물론 붱철은 펭수에 비해 캐릭터성은 다소 약해 펭수처럼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지만 특유의 공감코드를 바탕으로 타깃이 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교감을 만들어낸다. “계속 이와 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제작진의 바람처럼 EBS의 세계관 확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훨씬 세세하게 대중들을 파고들고 있다.

이렇게 인형 캐릭터 하나로 넓혀가는 서사와 세계관은 미래의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육방송이라서 반드시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일단 유쾌하고 재치있는 코드로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이후에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최근 EBS가 7년 만에 부활시킨 청소년 드라마 ‘하트가 빛나는 순간’ 등의 콘텐츠에도 드러난다. 콘텐츠에 있어서는 여러가지로 유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펭수가 붱철과의 합방을 결정했다는 자체가 붱철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게다가 붱철은 입담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펭수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둘은 함께 조류스타가 되자며 날개를 걸고 약속했다. 비록 그 타깃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유연함과 공감 능력 그리고 캐릭터성으로 ‘딩동댕대학교’의 붱철조교는 오늘도 많은 ‘어른이들’의 성장을 책임지고 있다. 교육은 꼭 유아나 학생에게만 해야 할까. 이렇게 EBS 캐릭터가 어른에게도 해줘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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