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문제가 아니다, 경찰 시험 제도 바꿔야"…입모은 수험생들

머니투데이 박수현 기자 2021.11.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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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4시 50분쯤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의 한 빌라. 4층 주민 A씨(48)는 3층 주민의 집을 찾아가 층간 소음 문제로 소란을 피우다 50대 부부와 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흉기에 찔린 아내는 뇌사 상태에 빠졌으며 딸과 남편도 손·얼굴을 찔렸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했던 여성 경찰관은 흉기를 피해 도주했으며 1층에 있던 남성 경찰관은 현관문이 잠겼다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인천의 한 빌라에서 벌어진 살인 미수 사건 현장에서 가해자가 휘두르던 흉기를 피해 도주한 경찰관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경찰 시험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비 경찰관들은 인성·사명감을 평가하는 기준 역시 강화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여경 문제가 아닌 무책임한 경찰관의 문제"…입 모은 경찰 수험생들
층간소음으로 흉기를 휘둘러 일가족 3명을 다치게 한 A씨(48)가 지난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17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층간소음으로 흉기를 휘둘러 일가족 3명을 다치게 한 A씨(48)가 지난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17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서 유가족들은 당시 1층에 머무르던 남성 경찰관이 남편이 가해자를 제압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으며, 현장에 있던 여성 경찰관은 아내가 흉기에 찔리자마자 현장을 벗어났다고 밝혔다. 또 피해 가족들이 경찰 대응을 문제삼자 소속 경찰서의 다른 경찰관들이 피해 가족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논란이 일자 인천경찰청은 해당 경찰관 2명을 직위해제하고 인천 논현경찰서의 소극적인 사건 대응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전에도 4차례나 가해자의 살해 협박·성희롱에 대한 신고가 접수됐으며, 경찰이 이를 묵인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나오면서 비판이 거세졌다. 해당 경찰관들의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은 게시 하루 만에 10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치안을 보호하는 경찰은 다른 공무원보다 엄격한 인성·책임감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나 정치 논리에 휩쓸리다 단순한 공무원 시험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여성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낮은 체력기준은 변별력을 약화하고 임용 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월 2차 순경시험을 치른 여성 수험생 이모씨(26)는 "여성의 경우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 10개 이상만 하면 과락을 면하는데 이건 60대 노인도 가능한 수준"이라며 "체력에 자신 있는 여성 수험생도 많은데 지금은 필기시험으로 합격자를 정하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수험생들은 남성·여성 채용 비율의 문제보다는 선발 과정에서 경찰로서의 자긍심을 평가하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는 12월 면접을 앞둔 수험생 노모씨(33)는 "영어 몇 문제 더 맞추고 달리기 조금 빠르게 뛴다고 해서 우수한 경찰이 될 거라고 믿는 수험생은 하나도 없다"라며 "시험 과정에서 경찰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장서도 '체력기준 더 낮아지면 불안'…"현직 경찰관들도 교육 강화해야"

일선 경찰관들은 오는 2023년부터 선발시 남녀동일기준·P/F제(합격 및 불합격만으로 구분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체력기준이 하향평준화되며 비슷한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A순경(31)은 "현장 출동 보직이 아니어도 경찰관이 기본적으로 격무가 많아 체력이 필수"라며 "안 그래도 낮은 기준을 더 낮추면 내근·외근 구분없이 모든 경찰들이 반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필기시험은 2011년 법령개정시 65%에서 50%로 비중을 줄였고 체력시험은 10%에서 25%로 강화됐다"며 개정 전보다 오히려 체력 기준이 강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남녀동일하게 P/F로 체력기준이 바뀌면 사실상 체력시험의 변별력이 낮아져 필기 비중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구조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와 같은 경찰의 부실대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선발 과정뿐만 아니라 현직 경찰관의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험보다 선발 후 교육이 훨씬 중요하다"며 "이번 사건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다. 피해자가 명백하게 공격받는 상황에는 현장을 떠나지 않고 위기에 대응하는 교육이 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범죄자를 진압할 때 테이저건을 사용하면 체력과 관계없이 진압이 가능하다. 이런 대응을 주저없이 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며 "경찰이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했을 때 과잉진압이라며 비판하지 않는 사회적인 공감대도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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