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보도블럭 깨는 소리[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11.2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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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 종로 인근에서 연신 보도블럭 깨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연말이 다가왔나 싶다.

예년 같으면 예산 낭비의 대명사로 불리던 '연말 보도블럭 교체'는 그간 많은 비난 속에 지자체들이 조례 제정 등을 통해 개선했다. 10년 미만 보도블럭 교체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불가피할 경우 보도공사 실명제를 도입하되 12~2월 사이에는 공사를 금지하는 등의 노력으로 예산낭비를 줄이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말 남은 예산소진용으로 추정되는 보도블럭 교체는 그 시기만 당겨 10월과 11월에 진행되고 있다.

어디 보도블럭 뿐이랴.



일례로 최근 교육부가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확보를 통해 6조원이 넘는 지방 교육 재정교부금을 전국 시도교육청에 한꺼번에 내려보내자 일선 학교에선 불만이 크다. 내년 2월 회계연도까지 사용하라는 촉박한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하지 못한 학생들이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기자재를 또 다시 바꿔야 하는 '학교식 보도블럭 공사'를 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 세금이 정책당국자 자신들의 개인 돈이라면 이렇게 쓸까 싶다.



세금은 법에 의해 공정하게 거둬들이고 공정하게 써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플랭클린은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세금이 갖는 엄정한 성격을 얘기한 것이다.

내년 예산을 따내기 위한 수단이나 누군가의 선심성 이벤트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재료로 세금정책이 쓰이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위정자들이 세금을 선심용으로 쓰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남쪽 지방 수메르의 라가시 왕조의 지배자가 세금을 줄여줬다는 기록이 B.C. 2500년경 점토판에 쐐기글자로 기록돼 있다. 그 뒤 18세기 나폴레옹이 이집트 전쟁에서 발견한 로제타석(Rosetta Stone)에는 기원전 196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 왕이 신관들의 세금을 감면해준 데 대한 칭송의 글이 새겨져 있다.

세금이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래서 세금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신중히 다뤄야 한다.

우리 헌법에는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국민개세주의와 제59조 '조세의 종류와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법정주의 등 세금과 관련한 두가지 조문이 담겨 있다.

이런 원칙이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역사 속 혼란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왕권이 강했던 시기 백성들로부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면서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그 후 사회적 합의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의 시민혁명도 모두 세금에 대한 국민적 저항에서 출발했다. 진주민란이나 동학혁명 등도 그 뿌리는 과도한 세금과 불공정한 과세제도에서 출발했다.

코로나 피해 지원이든, 종합부동산세를 줄이든 공정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세금 집행자가 누구든 특정인에 의한 시혜가 아닌 법의 시혜를 국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세원칙을 허무는 무리한 포퓰리즘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제해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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