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기자가 직접 먹어본 여러 채식 음식./사진=구단비 기자
가장 처음 떠오른 건 채식이었습니다. 제가 식음료를 출입하기에 체험기로 쓰기도 좋고 여러 대체육, 비건 제품들도 먹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일주일 정도 어설프게 채식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5일 저녁부터 11일 저녁까지, 집밥부터 친구 결혼식 뷔페, 가족 외식, 취재원 만남, 친구 모임 등에서 열심히 실천해봤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육즙이 느껴졌던 베지가든 '숯불향 떡갈비', 매콤한 맛과 간편한 조리로 늦은 저녁 배고픈 위장을 책임져준 베지가든 '짜장떡볶이'. 가족한테 말 안 하고 먹였더니 비건 제품인지 눈치채지 못했다./사진=구단비 기자
점심으론 취재원과 만나 해물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평소였다면 차돌 쌀국수를 먹었을 텐데 의식하기 시작하니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채식이라고 하면 막연히 어렵게 느껴지곤 하지만 생각보다 채식의 종류가 많습니다. 완전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비건'이라고 부르고 유제품을 먹으면 '락토', 계란을 먹으면 '오보', 계란과 유제품, 해산물을 먹으면 '페스코', 가금류까지 먹으면 '폴로' 채식주의자로 분류됩니다.
공짜 스테이크를 거절했다…"저는 채식하고 있어서요"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유 대신 코코넛이 들어간 풀무원다논의 식물성 액티비아, 건면 채식라면인 풀무원 정면, 결혼식 뷔페에서 먹은 페스코 식단 음식들, 광장시장에서 먹은 모둠회. 뷔페에서 한 접시만 먹진 않았지만 사진 분량상 한 장만 담았다./사진=구단비 기자
무의식적으로 먹는 라면에도 정말 많은 고기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대다수 소고기육수를 사용해 맛을 내고 있었고 플레이크에는 어묵들이 들어가곤 합니다. 비건라면 플레이크에는 말린 마늘, 파, 버섯 등이 들어있어 일반 라면보다 더 개운한 맛이 났고 식후 더부룩함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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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친구 결혼식에 갔습니다. 점심도 비건으로 먹으려 했는데 뷔페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생선까지는 먹기로 스스로 타협을 했습니다. 스테이크를 한 접시씩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곳이었는데 "저는 괜찮다"고 거절했습니다. 친한 친구들 앞이었기 때문에 크게 눈치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만약 회식이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였다면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자리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회를 먹어서 마음이 조금 편했습니다. 만약 삼겹살을 먹자고 했다면 저는 용기 있게 "난 채식 중이라서 다른 메뉴를 먹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카레에서 고기 덜어내고…라떼엔 우유 대신 두유, 귀리 우유 넣는 '쉬운 채식'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기 건더기를 덜어낸 '비덩주의' 카레밥, 광장시장 빈대떡, 콩고기로 만든 베지가든 탕수육, 롯데푸드의 제로미트 베지너겟과 냉장고 속 굴러다니던 문어. 다소 괴이한 플레이팅의 베지너겟과 문어는 저희 아버지의 솜씨이기 때문./사진=구단비 기자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매일두유와 수제쿠키, 저스트에그 액상형을 넣은 농심 야채라면, 짬뽕, 귀리 우유를 넣은 토피넛 라테. 수제쿠키의 성분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버터, 마시멜로, 계란 등이 함유된 것으로 보인다./사진=구단비 기자
방금 앞에서 계란을 먹고 죄책감을 느꼈다더니 왜 라면에 계란을 넣었냐고요? 저스트에그는 계란이지만 식물성으로 만들어져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계란맛과 순두부맛이 동시에 느껴졌고 포만감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야채라면이 일반 라면만큼 간이 있고 짭짤해서 조화로웠고요. 저녁은 외식했습니다. 중국집에서 채식할 수 있을 것 같아 짬뽕을 시켰는데 고기 건더기가 보였습니다. 하나씩 덜어내고 먹었는데 '다음엔 만들 때 빼달라고 말해봐야지'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날 라떼도 우유 대신 귀리 우유를 넣어서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녹두로 만든 계란 맛이 나는 '저스트에그'…풍성해진 비건 음식 라인업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매일두유, 저스트에그와 대체육 햄을 넣은 샌드위치, 순두부 정식, 수플레 팬케이크. 샌드위치에 사용된 모닝빵은 아쉽게도 비건빵이 아니었다./사진=구단비 기자
점심은 순두부 정식을 먹었습니다. 대부분 다 채식 반찬이었는데 보쌈고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함께 간 일행에게 고기를 양보하고 다른 밑반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쉬울 법도 한데 채식을 통해서 고기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식탐이 꽤 있는 편인데 좋은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또다시 디저트. 계란을 듬뿍 넣은 수플레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아 또 비건은 물 건너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귀찜, 조리 중인 저스트에그 액상형, 저스트에그와 대체육, 비건 김치, 볶은 야채 등을 넣은 일명 '냉털' 비빔밥./사진=구단비 기자
일주일간의 채식이 풍요로웠던 이유는 풀무원을 비롯한 농심, 오뚜기, SPC그룹, 신세계푸드 등 여러 식음료 업계의 비건 음식 출시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식물성 대체육부터 유제품, 계란을 대신할 수 있는 제품들을 접해 매일 하루 한 끼 고기를 먹었던 저도 큰 불만 없이 채식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비건 음식들이 더욱 보편화됐으면 좋겠습니다.
MZ세대 95.6% "환경 위해 식습관을 바꾼다"…오늘, 함께 하시겠어요?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어 샐러드, 새우튀김, 짬뽕. 일부 고기가 들어간 메뉴는 고기를 빼내는 '비덩주의'로 식사를 진행했다./사진=구단비 기자
다만 이날 저녁은 친구들과 치킨집을 갔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어색했는데 '폴로' 채식주의자가 있다는 생각에 덜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용감하게 '난 채식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감자튀김을 시켰어야 했는데 '이정도는 먹어도 되겠지'라고 타협해버린 걸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육식전시'(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고기 사진을 올리는 것)를 하지 않기 위해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느슨한 채식주의자도 세상을 바꿉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2000년 31.9㎏에서 2019년 54.6㎏으로 71.2%나 급증했습니다. 연간 약 4% 증가하는 육류 소비량으로 인해 2030년에는 298만톤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소 한 마리가 1년에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평균 70~120㎏인 점을 생각하면 하루 한 번이라도 고기를 지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가치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많은 이들이 채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900명 중 95.6%는 "환경을 위해 식습관을 바꾼다"고 응답했습니다. 완전 채식인 비건은 아니더라도 유제품, 계란, 고기 섭취를 줄이고 대체육을 먹는 등 대안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죠.
어설픈 채식 일주일 동안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살이 빠지거나 피부가 좋아지거나 몸이 건강해졌다거나 하는 변화는 없었지만 식사 후 더부룩함과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당장 비건으로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것, 유제품과 계란 섭취를 줄이는 것, 고기 건더기를 덜어내는 것 등의 작은 실천은 동참하려 합니다. 또 무엇보다 채식주의자를 향한 비판 대신 응원을 보내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불편함을 감수하고 신념을 지켜가고 있는 이들 덕분이기 때문이죠. 주말이 다가옵니다. 하루쯤은 고기 없는 식탁을 즐겨보는 건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