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주주만 배불린다?…공모주 흥행 변수 된 '구주매출'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21.11.0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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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주주만 배불린다?…공모주 흥행 변수 된 '구주매출'


최근 공모주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특히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공모 자금이 회사에 유입되기보다 기존 주주로 돌아간다는 점이 투자심리를 냉각시키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높은 구주매출이 반드시 IPO 성적 부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만큼 업종, 구주매출 주주 등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해상외항 화물 운송업체 에스엠상선은 당초 이달 상장 예정이었으나 수요예측 부진으로 코스닥 상장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에스엠상선은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잔여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명품 핸드백 ODM(연구개발생산)업체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이하 시몬느)도 상장을 철회했다. 역시 수요예측 부진이 이유다. 두 기업은 기업가치 1조~2조원대로 점쳐졌던 대어였던 만큼 시장에 미치는 타격도 컸다.



전혀 다른 업종인 두 기업의 공통점은 높은 구주매출 비중이다. 시몬느는 공모물량의 80%를, 에스엠상선은 50%를 구주매출로 책정했다.

시몬느의 경우에는 재무적 투자자(FI)인 블랙스톤PE(사모펀드)의 물량, 에스엠상선은 기존 최대주주인 삼라마이다스와 삼라, 티케이케미칼 (1,527원 ▼6 -0.39%) 등 최대주주 관계회사들의 물량이었다.

구주매출 비중이 높았던 또다른 새내기 기업들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구주매출 비중이 90%를 넘었던 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는 희망밴드 하단 미만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일반청약 경쟁률도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현 주가는 공모가(2만5000원)를 밑도는 상황이다.


구주매출 비중이 50%였던 롯데렌탈 (26,800원 ▼100 -0.37%)은 상장 석 달 만에 공모가(5만9000원) 대비 30% 넘게 빠졌다. 롯데렌탈은 상장일 이후 단 한 번도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코스닥 상장사 아이패밀리에스씨 (26,200원 ▼400 -1.50%)는 최대주주인 김태욱 대표 등의 지분을 포함해 공모주식 중 16.2%를 구주로 내놓기로 했으나 수요예측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구주매출을 취소했다.

투자자들에게 구주 매출이 달가운 요소는 아니다. 회사에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신주발행에 비해 구주매출은 기존 주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는 신규 자금으로 인한 추가 투자로 인한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라며 "구주매출은 기존 투자자들의 수익 보장이 우선인 만큼 시장에서 선호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주매출이 반드시 IPO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상장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 (62,800원 ▲1,100 +1.78%)는 구주매출 비중이 60%에 달했지만, 상장 이후 양호한 수익률을 거뒀다. 매출주식의 소유자가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 (106,700원 ▼800 -0.74%)으로 경영권 및 주가 안정화 등 측면에서 당장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 일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상장한 차량용 외장 부품 업체 명신산업 (14,570원 ▲100 +0.69%)도 비슷하다. 구주매출 비중이 66.7%에 달했지만 현재 공모가(6500원) 대비 4배 높은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수요예측과 청약 경쟁률도 1000대 1을 넘을 정도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주요 고객사 가운데 테슬라 등 글로벌 전기차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큰 관심을 받은 덕분이다.

구주매출이 초기 투자자 및 창업자를 위한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마련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미국 IPO 시장에서는 창업자들의 구주매출이 흔한 편이다. '기존 주주 배불리기'보다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지난 3월 쿠팡의 NYSE(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당시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120만주를 구주매출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와 에어비앤비의 최고경영자인 브라이언 체스키도 각각 기업공개 과정에서 3000만주와 63만주를 구주매출로 내놓은 바 있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업종별 편차가 커지면서 시장의 관심이 많은 업종은 구주매출이 있더라도 소화될 수 있는 상황인데 비해 그렇지 못한 업종은 소외되는 상황"이라며 "최근 부진한 기업들은 애초에 비선호 업종인 데다 구주매출까지 껴 있어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받은 듯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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