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은 사람' 시청률로 평가할 수 없는 무게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1.10.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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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JTBC사진제공=JTBC


사람은 곧잘 망각한다. 망각하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사람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열은 가진 자가 하나를 가진 자의 그 하나마저 빼앗아 버린다. 그렇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각자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본인의 모습을 완성한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어둡고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사람도 있고, 이 모두가 결핍된 사람도 있다.

JTBC 수목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속 정희주(고현정)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배곯았던 과거를 끔찍해하며 스스로를 망각 속에 빠뜨리고, 한 남자와 불륜에 빠져 두 가정을 파탄냈다가 가난에 싫증을 느껴 도망을 칠 정도로 이기적이다. 시어머니의 일관된 멸시로 마음이 들끓어도 겉으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런 의뭉스러운 사람이다. 오랜만에 드라마에서 불완전한 여주의 혼란을 지켜봤다. 희주의 모습이 보여주듯 '너를 닮은 사람'은 참 무거운 드라마다. 미스터리물을 표방하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디테일한 감정 묘사가 더 눈에 띄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희주가 낚시터에 시신을 유기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희주의 나지막한 내레이션도 함께다.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서도 지옥인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지옥은 사랑하는 이가 나 대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러니 아직 지옥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믿음. 아직 최악은 아니라는, 괜찮을 거라는 거짓말을 믿는 것." 다시 희주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으로 돌아간다. 희주는 성공한 화가이자, 재벌가 며느리다. 자식은 사춘기 딸 리사(김수안)와 유치원생 아들 호수(김동하)가 있다. 전시회 준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던 희주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리사가 다쳤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미술선생님의 폭행으로. 한달음에 병원에 달려가니 리사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사진제공=JTBC사진제공=JTBC


희주는 미술선생님을 만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하지만 미술선생님의 뻔뻔한 태도에 희주는 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결국 그의 뺨을 때렸다. 희주는 미술선생님으로부터 폭행에 대한 고소를 당했다. 시어머니는 희주를 나무라고, 남편 현성(최원영)은 하필 출장 중이다. 그런데 집으로 미술선생님이 찾아왔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은 채 자신에게 "언니"라 부른다. 미술선생님의 정체는 구해원(신현빈), 자신에게 미술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자 그가 불륜을 저질렀던 남자의 연인이었다.

과거 희주와 해원은 사이가 좋았다. 희주는 해원이 결혼한다고 하자 직접 옷도 골라 사주고, 스튜디오 촬영까지 준비해줄 정도로 각별했다. 하지만 해원이 할아버지의 병중으로 희주의 수업을 연인인 우재(김재영)에게 맡긴 사이, 두 사람은 은밀한 사랑을 키워갔다. 결국 두 사람은 모든 걸 버린 채 먼 타국에서 아이까지 낳아 키웠다. 허나 가진 것 없이 시작한 타국 땅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가난을 끔찍하게 여겼던 희주는 결국 우재의 음식에 몰래 수면제를 탄 채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서 도망을 쳤다. 희주는 현성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아이도 현성의 아들로 키웠다. 그렇게 희주는 아무 일 없던 듯 제자리로 돌아가 살아갔다.

평온하다 착각할 때즘, 해원이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의 딸을 폭행한 가해자로. 해원은 딸만이 아니라 자신의 동생과 남편 모두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희주는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일상을 지키려 노력했다. 마침 자신의 전시회장 맞은 편에 신인작가가 전시를 한단다. 파티에 초대 받아 갔더니 우재가 서있다. 놀란 희주는 남의 눈을 피해 우재를 다그쳤지만, 우재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진제공=JTBC사진제공=JTBC
'너를 닮은 사람'은 5화 동안 이 미스터리의 시작과, 다양한 인물들의 어두운 얼굴들을 보여준다. 숨막히는 인물 간의 심리전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함께 지하까지 끌어당긴다. 분명 이들이 보여주는 이기(利己)는 몸서리쳐지게 소름 돋지만, 생존을 위한 발버둥처럼도 느껴져 애석하다. 특히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배우들이 보여주는 각 인물들의 고도의 심리가 살에 직접 와닿는 기분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이 중에서도 고현정은 과거 '봄날'의 정은을 연기하며 보여줬던 바이브로, 인간의 깊숙한 내면의 굴레를 미간과 입꼬리 등의 디테일한 쓰임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지독하게도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흥미로운 대상으로 바꿔놓으며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 같은 연출과 영상미, 그리고 치밀하게 밀고당기는 대사까지. '라이프'에서 한 단계 더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 임현욱 감독과, '그냥 사랑하는 사이' '비밀'로 인간의 감정을 밑바닥까지 흝어내는 유보라 작가의 말맛이 묻어나는 필력. 그리고 주연들뿐 아니라 김보연, 신동욱, 장혜진, 홍서준, 김수안 등 배경으로서 제 역할을 모두 묵직하게 잘해낸다. 무엇보다 고현정, 신현빈, 최원영 이들 셋의 보증된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너를 닮은 사람'에 큰 무게감을 실어준다. 시청률로는 평가할 수 없는, 무게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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