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로 옛 추억 떠올릴 때…해외에선 오겜으로 사회문제 진단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1.10.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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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메시지로 각국 사회 부조리 투영…말레이시아에선 청소년 자살 원인, 한국 드라마에 전가하기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사진제공=넷플릭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식지 않는 가운데 한국과 해외의 오징어게임을 소비하는 방식이 사뭇 달라 눈길이 쏠린다. 어린시절을 수놓은 추억의 놀이를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본 국내 시청자들이 그리운 과거를 떠올리며 달고나를 만드는 반면, 해외에선 뿌리 깊은 사회 부조리를 오징어게임과 연관지어 바라보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오징어게임은 공개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 최고 인기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 순위 집계 플랫폼 '플릭스 패트롤' 조사 결과 오징어게임은 24일(미국시간) 기준 전 세계 톱10 TV프로그램(쇼) 부문에서 782포인트로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32일째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장기집권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오징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뉴시스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오징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오징어게임의 흥행은 유독 길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비슷한 파급효과를 내고 있다. 신선한 소재와 전개방식 등이 흥미를 끌 뿐 아니라 빈부격차를 만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나 휴머니즘 등 작품 속 내포된 메시지가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란 평가다.

오징어게임이 익숙한 국내에선 옛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몬이 2040세대 성인남녀 9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절반(46.2%) 가량이 '오징어 게임을 보고 달고나를 만들어봤다'고 답했다. 달고나를 직접 만들어보며 잊었던 어린시절의 향수를 떠올린 것이다. 응답자 93.1%는 '친구들과 추억의 게임을 하며 놀았던 시절이 그립다'고 답했다.



"오징어게임, 아메리칸드림 깨진 미국 현실 보여줘"
UAE 한국문화원에서 진행한 오징어게임 이벤트.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UAE 한국문화원에서 진행한 오징어게임 이벤트.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반면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선 오징어게임을 통해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진단하는 등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단순히 드라마 폭력성을 우려해 다가오는 '핼러윈데이'에 학생들에게 분장 금지령을 내리는 것 뿐 아니라, 오징어게임 인기 이유를 분석하며 사회문제를 투영하는 시도도 눈에 띈다.

미국 CNN은 최근 칼럼을 통해 오징어게임이 아메리칸드림이란 이상이 깨진 미국의 현실을 보여주며 인기를 얻었다고 진단했다. 기고자인 미국 하워드대 학생 에어리얼 로는 오징어게임이 재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며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분석하면서 "게임 참가자들의 삶이 우리(미국인)과 유사하고, 이를 깨달았을 때 여러 측면에서 우리(미국)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임을 이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매일 자체적인 오징어게임을 하고 있다"며 드라마 주인공 성기훈의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에도 치료를 포기한 장면을 두고 "많은 미국인에게 이것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닌 실생활"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의 빚, 외로움, 빈곤과 '어차피 잃은 것 없다'는 생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는 절박함에 공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징어게임이 청소년 자살 조장한다고?
스페인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가 보도한 스페인 장례박람회에 나온 오징어게임 핑크리본 관의 모습.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스페인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가 보도한 스페인 장례박람회에 나온 오징어게임 핑크리본 관의 모습.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페인에선 오징어게임 번역을 두고 통번역가 생존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하 진흥원)에 따르면 스페인통번역가협회는 오징어게임 첫 회부터 기계 시스템을 통한 스페인어 번역이 한국의 존댓말을 정확히 번역하지 못하고, 놀이에 사용되는 단어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넷플릭스의 시스템이 통번역 질을 떨어뜨리고 통번역가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정누리 진흥원 스페인 통신원은 "넷플릭스의 스페인어 엉터리 번역은 이전부터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스페인어 통번역가협회가 공식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오징어게임)이 처음"이라며 "드라마에 나오는 핑크리본관을 찾는 상조 고객들이 늘어나는 등 오징어게임 신드롬이 학교, 요식, 패션 등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오징어게임으로 대표되는 한국 콘텐츠에 사회 문제의 책임을 전가해 한류 팬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국회에서 한 의원이 말레이시아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 모든 이야기에 자살에 대한 줄거리가 있다"며 "한국 드라마가 청소년 자살을 조장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누리꾼들은 한국 콘텐츠 인기에 편승해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한국 드라마가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반론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서 "나는 한국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고 했고, 다른 누리꾼도 "'도깨비'의 공유와 이동욱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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