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건희 1주기와 이재용의 승어부[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10.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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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스1) 조태형 기자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소재 삼성가 선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2020.10.28/뉴스1   (수원=뉴스1) 조태형 기자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소재 삼성가 선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2020.10.28/뉴스1


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오전 9시경 한 취재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손이 떨렸다.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다."

그 취재원의 이 한마디는 그와 나만이 알 수 있는 수신호와도 같았다.



그 곳은 2014년 5월 10일 저녁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려졌던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6년여 동안 치료를 받던 곳이다. 일요일 아침 그 병원에 가봐야 할 일은 달리 없었다. 생명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부활을 꿈꿨던 재계의 영웅이 영면했다는 이유 외에는.

이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2014년 그날 밤 그 병원 응급실에 혼자 급히 찾아갔던 기억이 6년여 전의 기억으로 가물가물할 이날 아침에 날아든 비보를 확인하기 위해 아직 아무도 없는 텅빈 빈소를 찾았던 것이 벌써 1년 전이다.



거인 이건희가 이끈 삼성의 33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제 그의 영광만 흔적으로 남았다. 그 영광의 흔적이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이건희 시대의 성공방정식이 지금도 그대로 들어맞을 수는 없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 빨리.

패스트팔로어로서의 선단식 경영이 빛을 발하던 이건희 시대를 지나 퍼스트무버로서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찾기 위한 각계 전투식 생존전략을 펴야 하는 것이 이재용의 시대다.

선두에 선 반도체의 성공 DNA를 TV와 휴대폰 등으로 확장하고 다른 계열사로 전파해 기업을 키워나가던 때와는 달리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경우의 수를 찾아야 하는 시기다.


혈맹도 우방도 없다. 전세계는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삼성에 대한 압박을 서슴지 않는다. 아프리카 빈국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선진국의 백신도 선의가 아닌 댓가를 지불해야만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건희 회장 때는 그래도 열심히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배우고 이를 체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선두에 선 삼성에게는 앞길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없다. 가르침을 배울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없다.

이 회장의 영결식장에서 고인의 고교동창이 읽었던 추도사 승어부(勝於父: 아버지를 뛰어넘는다는 뜻)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부회장은 올초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 최후변론에서 "생각해보면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혜택 받았다. 국민들께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이 있다. 꼭 되돌려 드리겠다"며 자신의 승어부 방법을 얘기했었다.

그는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신사업을 발굴 확장하는 것을 넘어 촘촘한 준법 시스템을 갖추고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지도록 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 삼성을 만들겠다. 이것이 기업인 이재용의 일관된 꿈이며, 저 나름의 승어부다"고 말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이 부회장도 잘 알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삐긋하면 낭떠러지다.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집단지성을 한데 모아 앞으로만 나가길 빈다. 우리 사회도 그가 승어부 약속을 지키도록 길을 터주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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