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놀이패, 검찰[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1.10.15 04:51
글자크기
정권 말로 갈수록 정부 기관들은 한가해지는 게 보통이다. 어차피 얼마 지나 새 정권이 들어서면 백지에서 다시 시작할 게 뻔한데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데 의욕적일 수 없다. 관료들이 차기 정부에서 책임져야 할 수도 있는 일을 맡지 않으려 한다. 청와대도 그런 공무원 사회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행정은 '관리' 차원에 그친다.

예외가 있으니 검찰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반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정권 초반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 때에 비길만한 '큰 장'이 섰다. 여야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 사건이 검찰에 몰렸다. 연일 검찰이 진행하는 수사 뉴스가 신문 지면과 포털에 도배된다. 검찰개혁, 검·경 수사권조정으로 검찰의 역할이 축소돼 검찰에서 당분간 얘기 될만한 수사는 없을 것이라던 예측이 무색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당 대선 후보의 이름이 거론되는 대장동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하여,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검찰과 경찰의 협력을 강조했지만, 경찰은 각종 영장 단계에서 검찰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주도권은 검찰이 쥘 수밖에 없다. 핵심인물에 대한 수사는 모두 검찰 몫이다. 경찰이 맡았던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원 수령을 둘러싼 의혹 수사도 검찰이 가져온다.

문 대통령의 지시대로 국민이 납득할만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것이 혼란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BBK 주가조작 수사 등 과거 정권 말 벌어진 정치권 수사 전례를 생각하면, 검찰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게 지나친 음모론자나 비관론자의 태도라고 볼 수만은 없다. 만약 검찰이 이상적인 조직이었다면 검찰개혁을 외치며 검찰의 힘을 빼려 했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검찰은 '대세'가 어느 쪽인지 판단이 빠른 집단이다. 후보들에게 치명적인 카드를 들고 차기 정권과 '딜'을 하는 유혹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검찰이 의도를 갖고 만들어낸 꽃놀이패('이기면 큰 이익을 얻고 져도 부담이 가벼운 패'라는 바둑 용어)가 아니다. 인지수사가 아니라 고소·고발로 시작된 수사들이다.

대장동 의혹은 국민의 힘, 이재명 후보 캠프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잇따라 고발에 나서 초대형 전담수사팀이 꾸려졌다. 윤석열 예비후보와 관련해서는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검찰이 관련자들을 구속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최강욱 열린우리당 의원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다. 윤 후보의 측근인 윤대진 검사장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혐의 수사는 주광덕 전 의원의 고발이 계기였다. 시민단체들도 고발전에 가세했지만 이들이 각각 어느 정치진영에 기울어져 있는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해관계에 따른 고소·고발은 그 자체로 정치행위다. 하지만 그 결과로 중요한 결정권을 갖는 것은 검찰이다. 결정권을 가진 이가 갑(甲)이다. 고소·고발을 하는 이나 당하는 이나 모두 불확실성에 놓이게 되고 그만큼 리스크를 진다. 고발의 대상이 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런 인물이 유력 대선 주자가 되는 정치 지형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치권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하는 것이다. 지난 몇년간 검찰개혁이 극심한 진통을 겪으면서 추진됐지만 허무할 정도로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정치개혁 없이 이뤄진 검찰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 정치검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정치검찰을 만드는 것은 정치다.

TOP